무심한 듯 다정하게

by 맑음의 바다



Giant Springs State Park,
Montana



햇살이 쨍하다. 스프링(Spring, 샘)은 새로운 물을 계속 뿜어내고 있었다. 미주리강을 바로 앞에 두고. 한없이 흘러가는 강과 끝없이 솟아나는 샘물이 한 공간에 있었다.


물이 맑게 빛났다. 태양은 한껏 내리쬐며 물속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또 다른 숲 속이었다. 초록 생명체들이 살랑살랑 춤을 추며 물의 흐름에 따라 흔들거렸다.


이렇게 눈부신 투명함을 마주할 때 나는 심호흡이 필요했다. 태양빛이 뜨거운 줄 모르고 앉아서 계속 바라보았다. 나는 물속 하늘거리는 초록 풀이었다가, 그들을 헤치고 흘러가는 샘물이었다가, 저 바닥까지 환히 들여다보는 빛줄기였다.





끊임없이 새롭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샘은 땅을 뚫고 물을 내보낼 때가 좋을까. 내보내기 전에 품고 있을 때가 좋을까. 아니면 내보내고 다시 새로운 물을 만들어 낼 때가 좋을까. 샘물은 지하를 벗어나 솟아날 때가 즐거울까. 땅 속에서 나갈 준비를 할 때가 즐거울까. 아니면 나와서 다른 물과 섞이며 어울릴 때가 즐거울까.






취업 준비로 매일 도서관에 가던 날들이 있었다. 자연스레 내 마음에 드는 자리가 생겼다. 출입문 근처지만 구석이라서 조용하고 아늑했다. 그 자리에만 앉아도 기분이 좋았다. 나의 고요는, 어느 날 깨지기 시작했다. 내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온 사람이었다. 책을 거칠게 넘겼고, 한숨을 크게 쉬었고, 슬리퍼를 끌고 다녔다. 그 사람도 매일 같은 자리였다. 집중할 수가 없었고, 소중한 내 자리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엄마한테 하소연했더니, 평소처럼 단순하게 말했다. “그럼 신경 안 쓰면 되지.”라고. 그 말이 참 답답하게 들렸다. 나로선 이미 너무 애쓰고 있다고 느끼던 참이었으니까.


이어 플러그를 꽂아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집에 굴러다니던 ‘엠씨스퀘어’를 들고 가 들어봐도, 침묵을 깨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사람의 소리는 다 들렸다. 자리를 바꿔봤지만 내 자리의 아늑함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방법이 없어진 나는, 어렵지만 엄마의 말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 소음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장애물이 보이는 건 목표에서 눈을 돌려서 그런 것이라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어디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어디에 고여 있던 물이었을까.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겨보니, 나는 새로워져 있었다. 그 소음의 주인공은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자 나타난 천사였을까. 엄마가 쉽게 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투명한 샘물 같은 진실이었다. 인생을 관통하며 흐르는 지혜의 강물이었다.








스프링은 아주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매일같이 흘러가는 강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샘물과 강물은 서로 처음 보자마자 헤어져야 했을 것이다. 언제 다시 볼 지 기약 없지만, 서로의 갈 길을 응원해주지 않았을까. 무심한 듯 다정하게.


그 부드러운 마음씨로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샘솟듯이 날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고. 무엇이든 강물처럼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고. 둘은 결국, 다른 듯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곳에 갇혀있지 말라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투정 부리고 싶어졌다. 나도 안다고. 그게 인간세계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고. 그들은 다시 말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난 무력해졌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났다. 예전에 나를 일깨워준 도서관의 천사도 생각났고, 지혜의 강물처럼 흘러든 엄마의 말도 떠올랐다. 그래 그럼, 이 못난 생각부터 흘려보내볼게. 정말이지, 그들은 그곳에서 참 잘 어울렸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금
새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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