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lands National Park,
South Dakota
새하얀 구름이 진파랑 하늘 위에 춤을 추는 날이었다. 오전 11시. 해는 어느새 머리맡에 와있었다. 뜨겁고 건조했다. 한국에선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습기 없는 여름 열기는 낯선 만큼 좋기도 했다.
어떤 곳으로 통하는 문일까 상상하며 도어 트레일(Door Trail)을 걸었다. 모래가 생각보다 많이 미끄러워서, 나와 남편은 딸아이가 걱정되었다. 붙잡아 주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그녀는 우리의 손길을 한사코 거부했다. 7살 아이는 다부지게 말했다. 자신은 ‘전문가’라서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며. 오늘 처음 와본 곳에서, 모든 게 처음인 이곳에서 말이다.
트레일 안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걷는 사람의 몫이었다. 정해진 길이 없었다. 나의 딸은 모래 바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거워했다. 그녀에게 이런 탐험정신이 있었는지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다. 사각거리며 기묘한 바위가 가득한 황무지 같은 이곳을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처럼.
입구가 아득히 멀어지는데도, 그녀는 탐험을 계속 이어 나갔다. 강렬하게 뜨거운 햇빛만이, 마침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 있었다. 모자 아래,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가 되었다. 지금의 나와 남편이 가지지 못했으나 그녀는 가지고 있는, 이런 종류의 용기와 대담함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노는 게 제일 좋은 뽀로로 같았던 나의 꼬마 시절.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다가 해 질 녘이 되면 집에 들어갔다. 어느 날 나는 의문이 생겼다. ‘왜 집에 가야 돼? 아직 더 놀 수 있는데?’ 그전까지 나는 집 밖에서 밤이 어떻게 찾아오는지 몰랐다.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을까.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날 덮쳤을 때, 나는 무서워졌다. 그제야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더듬거리며 집을 찾아갔다. 멀리서 본 우리 집 불빛이 반가운 것도 잠시, 유독 우리 집만 침묵에 휩싸인 듯했다. 마치 숨죽인 채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내가 들어가자, 모두가 놀라는 듯 놀라지 않았다. 내가 문을 열기 전에 비상상황이었을 우리 가족은, 나를 보는 순간 일상으로 돌아갔다. 평소처럼 식탁에 수저를 놓고 밥과 반찬을 놓고 저녁을 먹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 일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동생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날 저녁밥은 나에게 믿음이었다. 그 이후로 난, 해지기 전에 꼬박꼬박 들어갔다. 나의 무모하리만치 대담한 모험은 가족이라는 믿음 속에서 안전했다.
돌이켜 보니 알게 되었다. 나의 딸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세상에의 탐구를 멈춘 적이 없었다. 온갖 시행착오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그녀는 항상 자신만의 최선의 방법을 찾아왔다.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다리에 힘주고 일어설 때, 웅얼웅얼거리다가 단어를 내뱉을 때, 그게 무엇이 되었든. 조심스러웠지만 과감할 때가 있었고, 포기할 법 한 순간에도 끈기를 내밀었다. 그녀의 용기 앞에는, 뜨거운 눈빛으로 열심히 손뼉 치며 응원하는 나와 남편이 있었다.
오늘도 딸아이는 끊임없는 시도와 소소한 실패를 마주할 때마다, 변수를 받아들이고 선택지를 조정하고 계획을 다듬어 나갔다. 유연한 판단으로 실패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으면서. 나와 남편의 믿음과 격려가 그녀를 뜨겁게 감싸 안았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서
언제까지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크고 작은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결국 자신을 단단하게 키워주는 건
누군가가 보내주는 따뜻한 격려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딸에게 무한한 응원을 보내줄 수 있는 건,
나 또한 그 믿음 어린 사랑을
오랫동안 받아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