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 그리고 숲 Nov 28. 2019

그녀의 일기장

프롤로그

1992년 1월 2일 / 엄마의 일기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온 탓인지 채림이에게 조금 완고하고 엄한 것 같아. 남들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아기니까” “크면 다 알아서 해”라는 둥 말하곤 해. 하지만 엄마는 남들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싫더라. 때로는 엄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채림이가 안쓰럽고 딱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대로 잘 따라주는 편이라 엄마가 한결 수월하단다.

하기야 채림이는 벌써 남에게 칭찬을 듣고 있어. 저 아이는 먹고 난 과자 봉지나 과일 껍질을 꼭 쓰레기통에 버리고 인사도 참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엄마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면 채림이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무섭고 엄했던지, 식사할 때는 소리도 없이 먹어야 했고 집에서는 발뒤꿈치를 들고 걸어야 할 정도였어. 그래도 엄마는 막내인지라 많은 편리와 보호 아래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단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외할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하시고 엄마가 국민학교 6학년 때 돌아가시고 말았어.

자꾸만 슬퍼지고 눈물이 나오려 하니 오늘은 그만 쓸게.




2009년 12월 29일 / 딸의 일기

10, 20, 30… 숫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살아야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나 많은데…

지난 열아홉, 스무 살을 맞이하던 때에는 시작되는 20대를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게, 매일의 추억들로 꽉 채워가며 보내야 될 것 같은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그렇게 시간의 빚쟁이로 지내다 보니 도리어 별다른 추억거리 없이 흘려보냈던 것 같아.

조금 성숙해가는 것뿐이지 나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사고를 가지고 싶다. 스물둘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이제야 조금씩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은데 그 시절 나는 왜 그리 조급했을까?

자유롭고 행복하게, 그러면서도 미련은 담지 않은 채 자유 그 자체의 삶을 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