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자

2016년 12월 29일

by 풀 그리고 숲

평소 무모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제발 좀 정착하라고, 안주하는 잔잔한 삶을 살아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오늘을 살면 되는 건데. 나는 자꾸 내일을, 미래를 살려고 한다. 그러니 숨도 막히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아 괴로운 날들도 있다. 그나마 과거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위안한다.


어렸을 적 나는 낙천적이다 못해 걱정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숙제를 안 하고도 걱정 없이 참 잘 잤다.

잠들기 위해 이불속에 누워 눈을 껌뻑이는 초등학생 나에게 엄마는 말했다.


오늘 숙제 안 한 것 같은데, 걱정도 안 돼? 잠이 오니?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엄마,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요. 오늘 숙제를 안 하고 자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되잖아요.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 내 좌우명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였다.

엄마는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중학생이 됐을 때까지 종종 이 이야기를 꺼내며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나 걱정 없이 낙천적인 아이였는데,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서 많이 변했다. 후회란 인생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그 후회가 너무 싫은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몸부림을 치고 있더라.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마음이,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후회가 남을 거라면, 생각을 보태서 한 행동보다 본능적으로 한 행동 때문에 일어난 결과가 한결 받아들이기 쉬울 것 같아서.


영화 ‘이프 온리’의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속 데이시(케이트 블란쳇)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이안과 벤자민이 그 사고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감정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 자책은 끝이 없다. 그렇더라. 어떻게 살아도 후회는 꼭 따라온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 세상에 후회만큼 가슴이 아픈 단어는 없기에, 나는 그 후회를 아쉬움으로 순화해 말했었다.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없기를’이라는 문장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다. 모든 게 소중하고, 또 모든 경험이 값지다.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며 영화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 겨울 지경이다. 그 눈물에 눈이 멀 지경이다.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처럼,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특별하다. -그러니 누구든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내가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자연은, 사람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의 감정과 지나간 감정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조금은 서툴고 거칠지 몰라도 지금 당장 더 많이 표현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굉장히 짧은 편이다. 재고 따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나름의 이유도 있다. 고민이 너무 길어지면 본질이 흐려진다고 생각하기 때문.


하고 싶은 것들 모두 하고 싶다. 주저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물론 본능이 이끄는 대로 좋아하고 싫어하고, 또 시작하고 멈추는 것을 계속하다 보니 과거 미성숙한 내 판단과 결정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아쉬움, 딱 그 정도다. 어차피 돌아가도 난 그렇게 살 테니까.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 거니까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탓할 이유도 없다.


매 순간이 감동이다 보니 가끔은 넘치는 감정에 한강을 찾는 일도 잦고, 또 마음이 앞서 무리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싶다. 후회가 아닌 반성….

내게 하고 싶은 말. 오늘을 살자. 불안해하지 말자.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하지만 노력해야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더 잘해나가고 싶다.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 배려와 감사를 아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류의 욕심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느덧 올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얼른 마지막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가 보고 싶다.




이 글을 작성했던 2016년 12월 29일 남자친구이던 그는, 2020년 11월 1일 나의 남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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