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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22. 2022

기억은 무엇으로 남겨지는가

22. 07. 22

  오뎅 국물은 공짜야. 세상 물정 모르던 꼬마가 엄마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때 꼬마는 마법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교실에 우유를 나를 때도, 놀이터에 모래를 만질 때도 자꾸만 떠오르고 마는 겁니다. 감칠맛 나는 연갈색의, 목을 탁 치는 칼칼함을 가진 그 환상적인 국물의 맛이. 종이컵에 마법의 스프를 담아주며 ‘오뎅 국물은 공짜야’라고 말하던 포장마차 아저씨의 놀라운 가르침이. 꼬마는 엄마의 손을 잡고 포장마차로 향했습니다. 엄마가 국물을 따르고 있는 꼬마를 대신해 오뎅을 사려 하자 꼬마가 그것을 말리며 말했죠. ‘오뎅 국물은 공짜래’ 민망해진 엄마는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때 포장마차 아저씨가 했던 말이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저씨의 미소만큼은 잊을 수가 없어요. 동전 소리 나지 않는 소탈한 웃음, 세월의 조류를 따라 멋들어지게 휘어진 주름들. 저는 그런 사람이 기억에 남습니다.     


  꼬마가 조금 더 커서 대학물이라는 걸 맛보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캠퍼스의 귀퉁이에서 미화 노동자들의 권리를 외치던 괴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유행과 거리두기를 한 복장, 거친 목소리, 날 것 그대로의 표정. 그들은 편하기보단 불편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전 그들이 좋았습니다. 서툰 정의지만 부끄럼 없이 외칠 수 있는 당당함이 자랑스러웠고, 금세 끓는 지점까지 오를 수 있는 그들 눈물의 온도가 사랑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돈을 버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사람을 는 법을 배웠고. 손익을 따지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손익을 따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웠습니다. 스펙을 쌓지는 못했지만 꿈을 쌓을 수 있었고, 입 대신 열 지갑은 없어도 이런 사람들이 진짜 선배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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