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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나라의 주민A Jul 25. 2022

언어의 지평선 너머로

22. 07. 25

  세계가 불타고 있어. 주홍빛 지평선이 안녕이라고 말하고 있어. 우리도 타오르는 인사로 으레 그렇듯 떠남을 고할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상처를 남길 필요는 없을 텐데. 이별이 주홍빛 너울 된다면 마지막 모습이 슬픔이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우리가 헤어지기 위해선 마지막의 말로 입술을 적셔야 해. 언어의 회랑 어디에도 타올라 안녕을 전하는 석양의 말은 새겨져 있지 않거든. 우리에겐 언어가 부족해. 이별을 담을 언어를 우린 아직 찾지 못했어.     


  대지가 신음하고 있어. 균열과 함께 땅들은 거칠게 갈라질 거야. 그들은 골짜기에 바다를 붓겠지만 그곳에도 아름다운 지느러미들은 살아갈 거야. 우리도 서로의 골에 파도를 놓을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미움도 증오도 하얗게 부서질 텐데. 가끔은 먼 뱃고동 소리로 안부를 전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우리는 저주의 독으로 찢어진 상처를 괴롭게 해. 언어의 서재 어디에도 넘실거리며 갈라지는 땅의 말은 꽂혀 있지 않거든. 우리에겐 언어가 부족해. 미워하는 마음을 담을 언어를 우린 아직 찾지 못했어.     


  가을이 물들어 오고 있어. 태양이 부풀린 구름은 물러나고 파랗게 하늘이 열릴 거야. 여름이 수놓은 잎들은 떨어지겠지만 산은 새롭게 불타오를 거야. 우리도 부정의 말을 단풍으로 물들일 수 있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다툼 없이 자리 내줄 수 있을 텐데. 보내는 길에 바스락 소리 놓을 수 있다면 밀쳐냄이 섭섭하지만은 않을 텐데. 그러나 우리는 성급한 손으로 서로의 가지를 꺾으려 해. 언어의 숲 어디에도 낙엽으로 보내는 길 장식하는 가을의 말은 자라나 있지 않거든. 우리에겐 언어가 부족해. 부정의 말을 대신할 언어를 우린 아직 찾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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