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드 큐레이터 서윤 May 11. 2024

게을러지고만 싶을 때 아주 간단하게 해결하는 한 끼

-잠자고 있던 야채들의 변주곡 알배추 전

글 몸살을 앓듯 글쓰기의 권태기를 혹독하게 겪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조차 미루기를 반복했다.

허기가 느껴질 때면 후루룩 라면 한 그릇으로 때우기도 하고, 무언가 끊임없이 입 안에서 알 수 없는 욕구가 올라올 때면 냉장고를 뒤지다가 결국엔 커다란 양푼에 언제 만들었는지 모를 반찬들을 한데 모아 매운 고추장 두어 스푼과 참기름을 넣고 비빔밥을 해 먹곤 했다. 아마도 아들의 독립에 허기진 마음에 이유도 있을 것이다.     

부엌을 멀리하고 글쓰기를 멀리하며 가장 그리웠던 것은 음식을 만들 때마다 나의 청각을 즐겁게 해 주던 여러 가지 많은 소리들이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토각토각, 사각사각 도마에 부딪혀 나는 칼질의 소리들,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을 꺼내 음식들을 담아내 상차림을 할 때마다 거기에 가끔씩 뒤섞여 떠오르는 시끌벅적하던 아이들과의 소소한 밥상 추억들이다.     

핸드폰을 보다 우연하게 잊고 지냈던 음식들의 제목만 봐도 나는 그때의 행복한 부엌으로 되돌아가며 추억이 봇물처럼 밀려들었다. 그건 그저 음식, 식사, 하루 한 두 번, 가족이 모여 앉는 식탁에 대한 추억만이 아니라 당연히 나의 아이들과 가족들, 어릴 때 ‘내 강아지’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졌던 그 시절 할머니와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매일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음식은 우리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함께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 속에서 누리는 기쁨이 끝없이 만들어졌다. 누군가를 위해 끼니를 만들어 채워주는 행위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영혼의 위안을 받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뽀드득뽀드득 주방 설거지가 끝나면 환해진 주방을 사랑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을 즐겼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행위가 어쩌면 나를 위로하고 성장시켰던 시간들이었음을 잠시 잊고 지냈다.


축축 늘어진 주말 , 주방으로 들어가 프라이팬을 꺼냈다.

갑자기 정성 들여 요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아토피를 심하게 겪었던 큰 딸을 위해 음식 재료부터 까다롭게 고르고, 재료 본연의 맛을 놓치지 않고 매일 반복된 맛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재료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요리들을 찾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 보던 시간들, 서른을 앞두고 독립한 아들의 끼니 걱정을 하며 심란해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차라리 무엇이라도 만들어 아들에게 다녀오자 싶어 또 나는 나를 위한 음식이 아니라 아들을 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주방에 다시 선다.   


연두 빛 여린 애호박을 반 개 채 썰고, 양파 반 개, 딱딱한 당근 채, 손바닥보다 작은 속잎만 남은 알배추 한 줌을 채쳐 준비한다.  섞어놓은 야채에 소금을 솔솔 뿌려 거친 숨을 잠재우고 메밀가루  3스푼, 감자 전분 가루 1스푼을 넣어 보슬보슬 가루들이 야채들과 어우러지게 손으로 뒤섞어 준다. 거기에 적당히 물을 넣어가며 반죽을 하고, 청양고추 두 개와 반 토막 남아있는 홍고추를 다져서 팬에 뒤집기 전 상태의  촉촉한 배추 전 위에 양껏 뿌려 밑이 잘라 붙지 않게 흔들흔들 춤추게 하다가 휘리릭 뒤집어 준다. 여러 색깔과 맛들이 더해져 고소한 풍미를 느낄 때쯤 아리하고 알싸하게 칼칼한 맛을 느끼고 싶었다.      

손은 왜 이리 큰지 한 장으로 시작해 알배추 전 석 장을 만들어 먹고도 반죽이 남았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저녁까지는 남아있는 배추 전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다니. 배추 전을 먹은 것이 아니라 추억 한 끼로 배를 채웠는지 뱃 속도, 마음도 넉넉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글 읽다가, 울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