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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낭만적으로 보내는 법'이 내게 남긴 질문들

2025. 7. 13 기록

by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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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우 무더웠고, 심지어 추석 연휴까지도 폭염 경보가 이어졌습니다. 언제부터 기후 위기를 실감했느냐는 질문을 누군가 제게 던진다면 아마도 저는 그날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아요. 추석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도 안될 정도로 더워서 전철을 기다리느라 고작 10여 분 정도 지하철 역사 내에 서있었는데도 땀으로 등이 젖어버렸거든요.


과거에 당연하게 여겼던 사소한 일상이 미래에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다면, 우리는 그런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뻔한 질문도 아니고, 현명한 답을 찾기란 더더욱 어려운 질문이지만 저는 일단 이런 대안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냥 지금 주변에 있는 것들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는 대안이요.


고온다습한 여름을 아무 불편 없이 마음 놓고 즐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더위 때문에 안전을 위협받기도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여름을 긍정하기가 매우 망설여지고 마음이 매우 무거워지기만 합니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것들이 엉망진창처럼 보이고, 앞으로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질 것만 같고, 혼자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주어진 것들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런 하루를 조금씩 쌓아가다보면 이전에는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다른 시야를 가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래가 완벽한 유토피아를 보장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하루치의 즐거움, 하루치의 보상, 하루치의 뿌듯함, 하루치의 긍정 정도는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시야 말이에요.


그래서 지난 한 주 동안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여름을 낭만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눈여겨보았습니다. 힘겨운 계절 속에서도 하루를 무사히 견뎌내고, 이 계절을 조금이나마 미화할 수 있는 작은 힌트를 여러분도 발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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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things you can do this summer (alone)
Anna Engelschall


Anna는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홈트레이닝 영상을 둘러보다가 알게되었습니다. 운동 영상만 올리는 피트니스 채널, 그리고 건강하고 균형잡힌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채널 두 가지를 운영 중인데요. '건강'의 정의를 외적인 모습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으로도 확장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저는 Anna가 올리는 모든 영상을 좋아합니다.



위 영상에서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혼자서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대체로 산책하기, 외국어 공부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새로운 기술 배우기, 플리마켓에서 새로운 스타일 시도해보기, 여름에 먹기 좋은 간단한 레시피 익히기, 연말까지의 목표 재점검하기, 대청소하기 등등 일상 속에서 가볍게 실천할 수 있으면서도 기분전환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소개하고 있어요.



사진: Unsplash의 Anna Tukhfatullina

영상에서 소개된 수많은 활동 중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활동은 '아이스크림 먹기'였습니다.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가게, 혹은 한 번도 가본적 없는 가게에서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사고 야외에 앉아서 먹거나 길을 걸어가면서 먹어보라는 제안을 피트니스 영상을 주로 올리는 유튜버로부터 들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을 이유는 없고,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아이스크림이든 다른 음식이든 뭐든 제발 거르지는 말라는 당부에서 Anna의 진심이 무척이나 잘 느껴졌습니다. 극단적인 식단 조절, 완벽한 몸매에 대한 집착은 덜고 구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잘 돌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이스크림을 먹어라'라는 짧은 문장 안에 함축적으로 표현된 것 같아서요.



Anna가 올린 또다른 영상에서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고, 균형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일상 생활에서든 식단에서든 말이에요. 식단의 80% 정도는 건강한 재료로 채워넣되 나머지 20%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자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라고 Anna는 당부합니다. 친구들과 피자를 먹어도 좋고,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좋으니 건강만큼이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라면서요.


그래서 오늘은 저도 정말 오랜만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먹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동안 저는 삶의 어떤 부분에서 균형을 점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어요. 여러분도 현재의 생활 습관 중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찾아보고 싶은 부분이 있나요?




[영상이 내게 남긴 질문]

내 생활 습관에서 균형이 필요한 지점은 무엇일까?

:운동의 힘겨움과 즐거움 사이의 균형을 잘 잡아서 운동을 장기적인 습관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고작 몇 주 정도의 노력으로 대단한 결과를 바라면 안된다는 걸 기억해야 하고, 체중은 항상 줄어들기만 할 수는 없다는 점도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여야만 할 것이다. 운동을 통해 기대되는 결과에 집중하는 대신 무엇을 할 때 운동이 재밌게 느껴지는지를 파고든다면 균형이 좀 맞춰지지 않을까?




dimitri-iakymuk-p4cBB0R5IcA-unsplash.jpg?type=w966 사진: Unsplash의Dimitri Iakymuk



이탈리아 교사가 내준 여름방학 숙제 15개


1. 가끔 아침에 혼자 해변을 산책하라.


2. 올해 우리가 함께 익혔던 새로운 단어들을 사용해 보라. (철학, 아가페, 무의식, 향수, 존재론적인, 허무주의, 유아론, 해석학, 인문학, 부조리주의)


3. 최대한 책을 많이 읽어라. 하지만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지는 마라.


4. 네게 부정적인, 혹은 공허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 상황, 사람들을 피하라.


5. 슬프거나 겁이 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6. 부끄러움 없이 춤을 추어라.


7. 최소한 한 번은 해가 뜨는 것을 보아라.


8. 스포츠 활동을 많이 해라.


9. 너를 황홀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에게 최대한 진심으로 정중하게 말해라.


10. 우리 수업에서 필기했던 것을 다시 훑어보라.


11. 햇빛처럼 행복하고 바다처럼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라.


12. 욕하지 마라.


13. 언어 능력을 기르고 꿈꾸는 능력을 늘리기 위해 가슴 아픈 대화가 나오는 영화를 보아라(가능하다면 영어로).


14. 빛나는 햇빛 속이나 뜨거운 여름 밤에 네 삶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꿈꾸어 보아라.


15. 착하게 살아라.




저는 여름이 다가오기 직전인 4~5월쯤이 되면 오래 전에 본 이 숙제가 종종 떠오르곤 합니다. 아무래도 이러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활동을 하기에 한국의 여름은 너무 고되기 때문에 오히려 야외 활동을 하기 딱 좋은 시기인 봄날에 이 숙제를 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하지만 올해는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이 숙제를 하나라도 해치워보고 싶습니다. 어쩌면 힘겨운 여름을 이겨내는데 작은 위로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 봄에는 11번 숙제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다이어리 한귀퉁이에 적어두기도 했는데요, 올 여름에는 6번 숙제가 재밌어보여서 가장 먼저 끝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숙제를 가장 먼저 해치우고 싶으신가요? 그 숙제를 해치우려면 어떤 방법을 시도해보면 좋을까요?



[여름 방학 숙제가 내게 남긴 질문]

어떻게 부끄럼 없이 춤을 출 작정인가?

: 저스트 댄스를 하거나, 메탈/록 음악과 함께하는 유산소 영상 (춤이라기보다 운동에 가깝지만 어쨌든 음악과 함께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 춤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의 힘을 빌려보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줄 이유도 없고, 순전히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부끄럼 없이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페스티벌의 계절이기도 하고, 그곳에서는 순간을 즐길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누구라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음악을 때면 마치 야외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처럼 움직여보고 싶다. 춤이 전혀 아니어도 상관 없을 것이다. 음악에 맞춰 신체를 움직이며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자체가 더 중요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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