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0 기록
책을 읽다가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으면 메모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유용한 정보를 보면 일단 스크린샷을 찍고, 맛있는 음식이나 음료를 맛보기 전에 일단 사진부터 찍는 게 어느샌가 일상이 되었는데요. 왠지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일단 모아두는 이런 습관이 어느 날부터 조금씩 석연찮게 느껴졌습니다. 이미 본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의 숫자에 비해 이를 내 삶의 일부로 만들려는 시도는 확연히 적다는 걸 직감했을 때부터요.
이번 주에는 새로운 책, 새로운 신문 기사를 집중해서 읽었는데 이들은 결국 어디선가 본 진부한 결론으로 끝나서 김이 샜습니다. 근데 한편으로는 '식상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지식대로 왜 행동하지는 않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진부하고 뻔한 말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일 수도 있는데.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소식해야 하고, 기계에 대체되지 않으려면 인간 고유의 소프트스킬을 길러야 하고, 진전이 없어 보여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나와의 약속을 지키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아무리 진부해 보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수 있는데 너무 뻔하다는 이유로 눈을 돌려도 될까.
이런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길래 아예 이번 주에 만난 뻔하고 진부한 말을 모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더 이상 식상하지 않게 느끼려면 어떻게 나의 현실에 새롭게 적용할 수 있을지 질문해 보았어요.
| Pamela Reif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서
예전부터 구독하고 있던 운동 채널의 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이런 댓글을 만났습니다. '규칙이 있다면 동기부여는 필요하지 않다'는 뉘앙스의 말이었어요. 실제로 제 주변에도 꾸준히 운동을 이어온 사람들에게는 매일 아침에 잠깐이라도 뛴다거나, 단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거나, 이틀 이상은 운동을 건너뛰지 않는다와 같은 자기만의 규칙이 이미 존재했습니다.
이 중에서 몇 가지 규칙은 저도 시도해 보긴 했으나 매번 시행착오를 겪고 있어요. 어떤 규칙이든 양치, 세수, 샤워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나기보다는 하기 싫고 귀찮은데 억지로 수행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운동뿐만이 아니라 공부든, 일이든, 새로운 취미든 무언가를 직접 수행하기보다 동기부여를 얻는데 훨씬 더 자주 시간을 쏟는 경우가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더라고요. 매일 일기를 쓰는 규칙을 몸에 익히기 전에, 이미 매일 일기를 쓴 덕분에 어떤 성취를 이뤘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보는데 시간을 쓰고, 영어 문장을 하나라도 더 외우기 전에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온 사람의 후기를 찾아보는데 시간을 쏟는 경우가 제게도 정말 흔했습니다.
무언가를 그저 바라고, 상상하고, 원하는데 쓰는 시간은 조금 줄이고 그 시간을 실제로 내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게끔 하려면 어떤 규칙이 필요할까요? 이 답을 찾기 위해 이제는 타인의 이야기는 조금 뒤로하고, 그 대신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지면서 제 입장을 직접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면 어떤 규칙이 필요할까?
: 일단 규칙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면 안 될 것 같다. 그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운동과 그렇지 않았던 운동의 차이는 즐거움의 여부였다는 걸 돌이켜보면 어쩔 수 없다. 너무 조급하게 결과를 내려 하지 말고, 한 번에 많은 걸 해내야만 한다는 욕심을 내지 말고, 그냥 건강을 위해 어떤 사소한 행동이라도 해내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는 관대함을 규칙으로 내세우면 어떨까? 주 6일 1시간 이상의 고강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는 대신, 고강도 운동을 못하겠다면 일상에서 활동량이라도 늘리거나, 먹고 싶었던 간식은 하루 정도 참거나, 채소 섭취량을 의식적으로 늘리는 것과 같은 대안을 실천하는 것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규칙을 세운다면 건강한 신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는 목표를 좀 더 오랫동안 추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책 <CEO의 다이어리>
며칠 전에 완독한 책 <CEO의 다이어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온 저자가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얻은 교훈을 알려주는 도서였습니다. 그중에는 CEO를 꿈꾸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일상 속에서 실천해 볼만한 조언도 몇 가지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새로운 기술은 물론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의견에도 말이에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애써서 더 수용하자. 우리의 지성이 도전을 받으면 더 수용하자.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면 더 수용하자. 그래야 더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퇴보하게 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차단하지 말고 더 많이 팔로우해야 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의견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정면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저자의 유튜브 채널에서 인터뷰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AI가 미래에 가져올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이 담긴 영상이었어요. 1시간이 훌쩍 넘는 긴 영상이었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었지만 그중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은 내용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타인과 같은 세상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알고리즘은 중립적인 정보보다는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정보를 우선으로 보여주고,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정보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극단적으로 치닫으니 말이에요.
그래서 AI의 위험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 영상을 끝까지 보자마자 AI에 대해 이와는 상반된 의견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AI에 대해 흥미는 있었지만 AI로 만든 창작물은 기피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AI가 어떤 작업을 얼마큼 해낼 수 있는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호불호를 따지자면 불호에 가까운 기술에 일부러 관심을 갖는 것, 반면 언제나 일관적으로 나의 관심사에 맞춘 정보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에 따라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 중 사람이라면 기꺼이 시도해 볼 만한 도전은 전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의 세상을 넓히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인데, 내가 믿고 싶은 것만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한다면 시야를 넓히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책에 실렸던 조언을 실제로 실천해 보기 위해, AI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위 인터뷰 영상과는 반대로 AI를 일상 속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온라인 강의를 들어보았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에도 마음을 열어보니 얻은 것이 있다면?
: AI로 만든 티가 나지 않는 양질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면 실제 인간이 만든 창작물을 당사자의 허락 없이 참고 자료로 넣으면 된다는 점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정말 능력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온라인에는 절대로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지 않고, 오직 인지도도 영향력도 부족한 사람만이 어쩔 수 없이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며 AI의 재료가 되어버리는 미래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혹은 AI로 만든 작품을 AI가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결국 온라인에 올라오는 작품은 전부 비슷비슷하고 하향평준화된 모습만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에는 정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할 작업이 AI로 인해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점은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새로운 기회가 되어줄 것이다. 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용을 주저하도록 막는 가장 주요한 이슈는 저작권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는데, AI 콘텐츠가 범람하기 이전에도 창작물의 저작권을 엄격하게 존중한 역사가 두드러지지 않은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이 흘러갈지 감이 잡히긴 했다. 미리 단정 짓기 전에 일단 열린 마음을 가져보는 게 나에게도 좋을 거란 건 알지만 그래도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 책 <료의 생각 없는 생각>
이번 주에는 표지가 정말 예쁜 에세이도 하나 읽었습니다. 저자가 SNS에 올렸던 짧은 글과 사진을 모아 엮은 책이었는데요, 책의 두께에 비해 내용은 길지 않더라도 저자의 가치관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가치있게 여기고, 일상적인 하루도 늘 진심을 다해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꾸준히 드러났기 때문이었어요.
책을 조금 읽다가 저자의 인터뷰 영상도 몇 가지 찾아보았는습니다. 아무래도 책보다는 영상을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자의 의도를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저자의 진심도 좀 더 잘 와닿더라고요.
특히 영상을 통해 저자의 삶을 엿보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는 모습과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자주 즐길 수 있도록 곳곳에 세심하게 배치해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고 나니 '가까이 있던 것들을 잊고 자꾸만 새것만 찾는 최고 멍청이가 되지 않아야지.'라고 저자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던 책 속 문장을 왠지 곱씹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책에서는 저자가 늘 먹는 빵, 매일 직접 만들어 마시는 커피, 매일 쓰는 찻잔 등 정말 일상에서 흔하게 자주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런 저자의 삶을 엿보고 나니 저도 제 일상을 조금 더 아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질문해 보고 싶더라고요. 안 그래도 새로운 옷, 새로운 기념품,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경험 등등 저를 들뜨게 만드는 새로운 것들이 요즘 정말 많기도 하거든요. 어떻게 하면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미련을 품는 대신, 지금 내 손에 잡히는 것을 좀 더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을까요?
일상을 좀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려면 어떤 시도를 해보면 좋을까?
: 일단 현재의 감정에 잠깐이라도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어떤 행동을 하고 나면 무슨 기분이 드는지 잘 인지하고 있다면 하루하루를 좀 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아무리 힘든 하루를 보냈더라도 나를 편안하게 하는 행동을 하나라도 수행할 수 있어서 어떤 하루든 조금 더 사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동안의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 내가 행복하다는 걸 스스로 인지했던 순간은 다음과 같다. 조용한 곳에서 정말 맛있는 블랙커피를 마셨을 때. 선선한 가을 날씨 아래에서 내가 좋아하는 밴드 티셔츠 위에 레더 재킷을 걸치고 닥터마틴을 신었을 때 (하의는 아무거나 입음). '이런 걸 계속 듣는데도 여전히 기분이 안 좋다면 정말 말도 안 된다' 싶을 정도로 사람을 들뜨게 하는 노래로 채워진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평소에 먹고 싶었던 걸 사들고 갈 때 등등.
다만 이는 이미 잘 알고 있는 행복의 구성요소이고, 이제는 그동안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 속 사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작업도 시도해 보고 싶다. 어쩌면 매일 할 일 목록을 다이어리에 적을 때마다 오늘 하루 있었던 행복을 하나씩 골라서 적어보는 시도를 해봐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