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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는 있어도 실천은 못했던 문장들이 내게 남긴 질문

2025.08.10 기록

by 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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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스크린타임을 줄이기 위해 애써보겠다는 다짐을 밝혔는데요. 며칠 전에 핸드폰을 습관적으로 보는 습관을 방지하려면 '마찰'을 더해보라는 조언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머리끈이나 고무 밴드를 핸드폰 액정을 가로지르듯 끼워둠으로써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매번 밴드를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더해보라는 말이었어요.


집안을 뒤져보니 머리끈은 안 보이고 그 대신 출처를 알 수 없는 두꺼운 끈이 두 개, 벨크로 밴드 하나가 있길래 그걸 모조리 활용해서 핸드폰을 어떻게든 동여매보았는데요. 갖가지 끈으로 엉성하게 봉인된 모습이 좀 볼품없어 보여서 예전만큼 손을 자주 갖다 댈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드는 행동을 방지하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대신 인터넷을 사용하고 싶으면 노트북을 키고, 노트북에 너무 집착하게 될 것 같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심심한 상태로 여가시간을 보내보았는데요. 지난 토요일에는 너무 심심해서 책장을 청소하고, 버릴 책들을 정리하던 도중 예전에 썼던 필사 노트를 발견했어요.


작년, 혹은 재작년에 열심히 들고 다녔던 노트였는데 막상 내용을 살펴보니 '내가 이런 걸 읽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제목의 책, 생소한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그저 마음에 드는 문장을 잘 수집해두기만 했을 뿐, 주기적으로 지난 기록을 재확인하는 노력은 이제까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니 좀 머쓱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주는 '과거의 내 머릿속에는 남겨졌을지도 모르지만 실천으로는 미처 옮기지 못했던' 문장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이 작업을 통해 다시금 머릿속에 새겨진 문장들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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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이란 곧 작가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또렷이 보일 때까지 계속 읽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글을 읽을 때 우리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더 큰 생각은 무엇일까? 진정한 경험은? 진짜 주제는? 내게 중요한 것은 답을 찾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느 평범한 독자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왜 쓰고 있느냐를 아는 일이었다.

<상황과 이야기>


비비언 고닉의 책 <상황과 이야기>를 읽는 내내 수십 개의 인덱스를 곳곳에 붙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수많은 인덱스로 강조된 문장 중 아직까지도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은 것은 없어요.

그래서 작품을 탐구할 때는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무척 낯설게만 느껴졌어요. 어떤 작품이든 좋다, 싫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같은 감상을 넘어 창작자는 어떤 생각으로 이를 만들었는지 한 번 더 되짚어보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익혀봐야겠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최근 접한 작품을 떠올려보자. 창작자는 왜 그것을 만들었는지 의도를 추측해 보자면?

ㅡ 9.11 테러를 소재로 한 어느 영화

: 누군가의 배우자, 아빠, 수리공 등등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지 않았을까? 극적인 연출이나 스릴 넘치는 전개가 돋보이는 건 아니었고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인 티가 났지만 멋지고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있는 주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흥미로웠다. 지극히 평범하게만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인물이고, 잊혀서는 안된다는 의도를 담은 건 아니었을까?


ㅡ 자신에게 상처만 주었던 사랑을 소재로 한 어떤 노래

: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처럼, 과거의 인연이 얼마나 자신을 상처 입혔는지에 대해 정말 솔직하게 적은 노래를 들었다. 왜 이렇게 말하기 힘든 소재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예술로 만들었을까? 예술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아픔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다는 의도도 있진 않았을까? 우리 모두 과거의 해로운 관계를 통해 얻은 상처를 도무지 극복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지만, 바로 이런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을 내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이 노래에 담긴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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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S 학생들의 특징은 한 번 결정한 일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세상에 100점짜리 답이 없다면, 스스로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몰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내가 배운 것들>


정말 똑똑하고 열정적인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는 어떤 수업이 이루어질까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이러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책이기도 했고, 그동안 살면서 겪어왔던 기존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의 교육을 엿볼 수 있는 신선한 책이기도 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도 정말 많아서 꽤 많은 문장을 필사해 노트에 옮겼던 책이기도 한데요. 수많은 문장 중에서 '한 번 결정한 일에 쉽게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다룬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미래는 계속 불안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의심 없이 믿을 정도의 믿을 구석은 없어서 그와 반대되는 문장에 끌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래도 이제는 세상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100점짜리 답은 없다는 말을 믿고, 스스로의 결정에 너무 많은 의문을 품지 않도록 노력을 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집중해 보고 싶은 선택이 있다면?

: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무엇이든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시도했던 모든 선택들. 남들을 쉽게 설득시킬만한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결과물을 보유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의 목표에만 치열하게 매달려도 괜찮을 거란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은 스스로를 잘 믿어주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꼭 확신이 있어야만 자신감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어떤 자신감은 부족한 근거로도 얼마든지 세상에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대단하지 않아도, 모든 시도에서 완벽한 성공을 거두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저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는 선택을 이제는 스스로 믿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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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정말로 당신에게 내어달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은 당신 인생의 일부를 요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에서 이렇게 물어라
- 그게 무엇인가?
- 그게 왜 중요한가?
- 내게 필요한 것인가?
- 내가 바라는 것인가?
-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 먼 훗날 이때를 돌아봤을 때 과연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할까?
- 이 일을 내가 아예 몰랐더라면, 이 요청 메일이 누락됐다거나 그들이 나를 지명해서 요청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 일을 놓쳤다는 걸 누가 알아차리기나 할 수 있을까?

<스틸니스>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은 여러 권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위에서 인용한 문장이 삽입된 책 <스틸니스>는 아직 끝까지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왜 요즘 같은 시대에서 내면의 고요함을 찾는 일이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는 책인데, 마침 스마트폰을 덜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니 지금이 바로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기 좋은 적절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의도로 위 문장을 필사 노트에 적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요. 어쩌면 누군가로부터 어떤 요청을 받았을 때 위 질문을 떠올린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한번 기억해두려고 적어둔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읽어봐도 위 질문은 여전히 낯설고 생소하게만 느껴지네요. 하지만 스마트폰 속 소음을 무시하고 싶을 때 위 질문을 떠올려보면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아 다시 한번 이 질문 목록을 눈여겨보려 해요.


인스타그램, 블로그, 유튜브는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계속 상대에게 내주었을까요? 우리가 꼭 참여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괜찮은 활동, 놓쳐도 아무 문제 없는 지식은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요?


[함께 나누고 싶은 질문 ]

위 질문 목록은 어떤 상황에서 적용해 볼 수 있을까?

: 분명히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고, 만약 모든 상황에 적용한다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요청을 선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아무 곳에서도 쓸 수 없는 질문이라는 말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상황에서 위 질문을 적용해 보면 좋을까?


핸드폰을 들고 무한히 스크롤을 내리고 싶을 때 떠올려봐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하루에도 수십 개가 쌓이는 뉴스레터를 정리할 때 위 질문을 적용해 봐도 좋을 것 같다. 혹은 알고리즘이 무작위로 추천해 주는 영상이나 콘텐츠를 시청하기 전, 잠시 멈추고 이 정보가 정말로 내게 필요한지 선별하기 위한 거름망으로 사용해 보거나.


모든 상황에서 이 질문을 적용하려 든다면 머리가 아플 것 같긴 하지만, 무언가로부터 계속 휘둘리는듯한 느낌에서 이제는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 처했을 때 기억해두면 꽤 괜찮은 질문 목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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