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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은 Jun 20. 2022

난 지금까지 내 왼쪽 얼굴만 사랑했네

웨딩 스냅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1. 이건 내가 아닌데? 웨딩 스냅 속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제주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맨 처음 일정은 제주 웨딩 스냅 촬영이었다. 본식은 내년 4월이라 1년 정도가 남았지만, 제주에 온 김에 얼른 해치우고 싶어 인스타를 통해 작가님을 섭외했다. ‘저희는 필름으로만 사진을 찍어요’, ‘인위적인 보정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작가 프로필에 적힌 글귀에 꽂혀 주저 않고 예약했다. 나 또한 정해진 포즈나 인위적인 보정에 우호적이지 않았으므로. 평소 남자친구와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했다. 누군가가 우리의 걷는 모습, 마주 보고 웃는 모습, 시답지 않은 수다 떠는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담아주면 좋겠다고. 하나, 둘, 셋! 하고 셔터를 누르면 몸이 굳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자연스레 담기지 않을까? 이를테면 <전지적 참견 시점>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의 하루를 꾸밈없이, 온전히 담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웨딩 촬영에 자신이 있었다.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 작업이라 같은 포즈를 여러 번 반복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어떻게 나왔는지 확인할 수 없으므로), 작가님 성향상 어려운 포즈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촬영 당일, 작가님을 만나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했고(그냥 수다만 떨더라) 네 시간 정도 촬영을 했다. 장소는 최대한 제주스러운 들판, 메밀밭, 마을로 골랐다. 예상했던 대로 마네킹 같은 포즈보다는 뛰고, 걷고, 춤추고, 수다 떠는 씬이 더 많았다. 2인 작가라 여러 각도에서 우릴 담더라. 헬퍼 실장님도 휴대폰으로 우리의 순간을 찍어 주셨다. 이거지! 내가 원했던 게. 곧 왼쪽, 오른쪽, 위, 아래 모든 각도의 우리를 볼 수 있겠군.


나는 내 모습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미소 지을 때는 대충 입술이 ‘w’ 모양으로 변하고, 빵 터질 때는 코에 주름이 간다. 그래서 대충 어떻게 나왔겠거니 예상이 되었다. 헬퍼 실장님이 휴대폰으로 찍어준 사진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내가 이렇게 생겼단 말이야?” 실장님께 미안했지만, 사진을 보자마자 실망했다. 내가 알던 내 모습이 아니잖아. 나 왜 이렇게 웃었지? 나 원래 웃을 때 턱에 주름이 이렇게 많이 생겼나? 어떡하지. 100만 원 날렸다.


2. 난 지금까지 내 왼쪽 얼굴만 사랑했네

사진의 문제가 아니었다. 헬퍼 실장님은 이 일을 10년 넘게 하신 분이다. 얼마나 많은 예비 신부, 신랑을 촬영 내내 찍어 보았겠나. 그만큼 휴대폰 사진도 기깔나게 찍어 주셨다. 다리는 길게, 얼굴은 작게… 말 그대로 인스타 감성으로. 내가 망했다고 생각했던 건 내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얼굴이었다.


웨딩 촬영은 정면보다 측면으로 찍는 사진이 더 많다. 서로를 바라보는 씬이 많기 때문이다. (저는 이 사실을 간과했군요) 실망감에 두근대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킨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건 예견된 일이었다. 난 지금까지 내 정면 얼굴밖에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씻을 때도, 화장할 때도, 심지어 셀카를 찍을 때도 늘 정면만 주시했기 때문이다. 옆모습은 종종 자신 있던 왼쪽 얼굴을 들이댄 셀카를 보는 정도? 성재(남자친구 이름)에게 물었다. “나 원래 이렇게 생겼어?” “응.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난 맨날 이런 얼굴을 봐서 잘 알아. 난 네 이 각도가 좋은데…”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물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울 정도로, 성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구나. 나만 내 모습을 어색하다고 느끼고 있는 거였네. 난 원래 이렇게 생겼던 건데 왜 몰랐지.


다시 내 오른쪽 얼굴이 원래 그랬나 확인해보고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켰다. 황급히 내 계정에 들어가 200개가 넘는 게시물을 천천히 확인해보았다. 에이 설마. 이 중 하나쯤은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옆모습 사진이 있겠지. 그런데 웬걸. 나의 SNS엔 죄다 왼쪽 얼굴이 나온 사진뿐이었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것은 표정마저 똑같았다는 것이다. 내가 전시해둔 나의 모습은 온통 은은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뿐이다. 찡그리거나 무표정인 모습은 정말로 단 한 장도 없다. 여긴 무슨 이시은의 웃는 얼굴 저장소인가. 심각하군. 적잖이 충격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왼쪽 얼굴만 사랑했네. 성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놓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면 흐린 눈으로 사진첩에서 삭제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난, 지금까지 나를 내가 원하는 얼굴로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오늘부터 여러 각도의 나를 마주하는 연습을 하자

오늘은 지난날의 습관을 매듭짓는 하루로 기억될 것이다. 뜨개질로 치면 다음 코를 시작하기 위한 매듭 정도. 인생이 100살 까지라면 30년 정도는 애써 외면했던 나의 면이 안쓰러워서라도, 앞으로는 여러 각도에서 내 얼굴을 자주 보고 살리라. 다짐했다.


그런 마음으로 사진을 다시 보았다. 여러 번 보았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보았다. 바닷가의 플라스틱처럼, 마치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될 무언가처럼 어색하게 느껴졌던 사진 속 내가 새롭게 보였다. 자꾸 보니 나쁘지 않았다. <전지적 참견시점>의 주인공이 되려면 내가 어떤 모습이건 익숙해할 줄 알아야 한다.


습관을 들이자. 거울을 통해 정면만 보지 말기. 옆태, 잔머리, 귓불, 엉덩이, 발목, 발꿈치지금까지는   없던 나를  관찰하며 살아볼 것을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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