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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엘 Apr 24. 2024

그림책의 위로

순수함 속 성숙한 삶의 지혜를 찾아서

머리가 복잡합니다. 회사 다닐 때 적용 되던 3.6.9 법칙 - 3개월 6개월 9개월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퇴사 후에도 똑같다는 게 신기합니다. 퇴사 3개월 차가 되니 미래에 대한 고민과 걱정, 불안이 마음속에서 급속도로 커져갑니다. 도서관에 있어도 집에 있어도 멍하니 창 밖만 보고 있습니다. 텍스트 가득한 책들에 집중할 엄두가 사실 나지 않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독서도 잠시 휴식하고 싶은 날입니다.



아동책, 어린이 섹션에서 그림책들이 보입니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일러스트 작가의 그림책도 생각납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다시 읽어 보기로 합니다. 그림책이 나눠주는 따스함에 마음이 몽글몽글 해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과 그 책이 가진 몽글몽글함이 기분 좋게 합니다.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깨닫기도 합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 두 언어로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도 글만큼 중요하고 때론 글이 아예 없이 그림으로만 이야기를 전하는 책도 있습니다. 그림책을 보고 있으니, 삶의 복잡함, 심란한 마음 등의 감정 속에서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 납니다.


<로봇 드림 : Robot Dreams > 사라 바론 / 다산북스  

<로봇 드림>은 대사가 하나도 없습니다. 강아지와 로봇이 나누는 우정과 실패, 단절과 희망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그 그림을 보며 울컥합니다. 강아지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고, 로봇의 희망과 좌절, 아픔이 나에게도 공유됩니다. 우정으로 만들어진 관계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 혹은 실수로 멀어진 관계로 받은 상처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알려줍니다. 관계의 단절과 그로 인한 후회, 기다리지만 만날 수 없는 현실. 새로운 우정을 찾는 과정. 이후 그리움을 남기고 결국 사랑으로 화해하는 우리의 마음에 대해 성찰하게 합니다. 강아지와 로봇의 우정이라니.. 이런 결말은 예상도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훅 들어와 잔잔한 감동을 남겨버렸습니다.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오는 행복과 깨달음에 대해 다정하게 이야기합니다.


웹툰, 일상툰을 그리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하루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도 저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분들은 평범하다고 생각한 일상과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고 더불어 스토리와 함께 표현합니다. 사소한 순간의 행복 그리고 소중함을 누구보다 다정하게 이야기해 줍니다.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 엄유진 / 문학동네

선물 받은 책으로 만난 <어디로 가세요 펀자이씨?> 속 그림은 연필로 그려졌습니다. 연필 하나로 그려진 스케치로 인물을 장면을,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손글씨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그리며 행복한 순간과 속상했던 순간들의 생각을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르다'와 '틀리다'에 대해서, 사람을 위로해 주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다른 이의 마음을 얻을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어려운 일임을
성장한다는 것은 때로, 아픈 일이지만, 스쳐 지나가는 작은 행복들과 좋은 인연들을 놓치지 않기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습니다.


‘오후의 소묘’ 출판사를 좋아합니다. 오후의 소묘의 그림책들은 온기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을 출간하며, 제가 좋아하는 <할머니의 팡도르> 책도 오후의 소묘에서 만났습니다. “인생은 지금이라니까”라고 외치는 은퇴한 노부부 이야기를 담은 <인생은 지금> 다비드 칼리 글, 세실리아 페리 그림과 메시지도 너무 좋습니다.



<할머니의 팡도르> 안나마리아 고치 글, 비올레타 로피즈 그림 / 오후의 소묘

크리스마스마다 보아야 하는 영화가 있다면, 나에겐 크리스마스 때마다 읽어야 하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산타할아버지와 스크루지가 주이공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만을 알고 있는 나에게, <할머니의 팡도르>는 새로운 크리스마스를 알려줍니다. 삶과 죽음이 만나 서로가 함께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 따뜻하지만 강렬해 보이는 붉은 동그라미, 할머니를 데리러 온 사신이 할머니 앞에서 큰 몸을 구부리고 얌전히 기다리며 푸근하게 앉아있는 표지에서는 따스한 온기가 전해집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이후부터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팡도르를 먹으며 이 책을 찾아봅니다.

산다는 건 맛을 나누는 일이에요.
아이고 사신씨, 뭔가 그리 급해요 잠깐 기다려줘요 이제 막 크리스마스 빵에 넣을 소가 완성될 참이라고요. 이것만 마저 합시다
찰다 속에 레시피를 숨겨 두었으니 이제 비밀은 아이들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예요. 이제 갈 시간이야.


끝없이 상상하며 마음껏 즐겁습니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기발한 상상력이 로켓을 타고 하늘 높이 우주 끝까지 가버린 내용의 어린이 책이 참 유쾌합니다.


<그림자 놀이> 이수지/ 비룡소

집에 있는 청소기, 가구로 그림자 놀이를 하는 아이의 상상력을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코끼리가 되고 악어가 되고 함께 춤을 추면서 즐거워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사가 하나도 없는 그림책인데 어디선가 음악이 들립니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중 <파도야 놀자>도 파도와 함께하는 아이의 감정과 즐거움이 그 청량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나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합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잠자기 전 <플란더스의 개>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아. 미처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그림책으로 읽은 플란더스의 개 이야기는 너무나 슬픈 비극이었습니다. 어린아이 네로가 받았을 차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슬픔과 아이의 죽음이 가슴 아팠고 너무나 혹독했습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들 옆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착하게 마음 속에 꿈을 간직하고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찾는 네로를 통해 위로받았습니다.

  

제 인생 그림책이라고 해야 하는 <아기 곰> 카디르 넬슨 글, 그림/ 한림출판사 은 언제 읽어도 항상 무스 아저씨가 제게 너무나 따스한 위로를 전해줍니다.   


아기곰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퓨마 아저씨, 개구리 아주머니, 다람쥐들.. 에게 물어봅니다.

제가 길을 잃었어요. 집에 가는 길을 찾도록 도와주시겠어요?

그럼 각자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방법들 하나하나 한마디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도 엄마에게도 답을 알려주는 것 같아 울컥합니다. 그중에 자꾸만 읽어 보았던 나도 모르게 뭉클하게 위로받은 무스 아저씨의 한마디가 늘 생각납니다.

만일 내가 길을 잃는다면 말이야.  
잠자코 앉아서 내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거야.
마음은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지.
게다가 결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단다.
반드시 널 집으로 데려다줄 거야...



어른이 되어서 읽는 그림책 한 권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영감을 주며, 때로는 새로운 꿈을 꾸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순수함 속에 있는 성숙한 삶의 지혜를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서 일까요. 그림책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찾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싶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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