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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엘 May 01. 2024

성공하지 않길 잘했어

"내가 홍해인이 된다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과 시선

오늘은 도서관이 아닌, 드라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요즘, '눈물의 여왕" 드라마에 푹 빠졌습니다. 김수현의 그윽한 눈빛과 능청스러운 말, 김지원이 입는 모든 옷이 다 멋지고 펑펑 울어도 예쁜 얼굴, 엄마 아빠 고모 등 조연들의 재미있는 이야기. 1회부터 16회까지 함께 울고 웃은 열혈 시청자입니다.  


"내가 만약 홍해인이라면?" 드라마 초반, 여주인공 홍해인은 뇌에 넓게 퍼진 종양으로 인해 수술 방법도 없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습니다. 문득, "내가 홍해인이라면, 넌 지금 당장 어떤 걸 할 거야? 가장 후회한 것이 무엇이야?"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았습니다. 내가 나에게 답을 합니다. 


"난, 우리 가족이 함께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겠어" 


주말부부 8년 차인 저는 서울에 직장이, 남편은 대구에 직장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서울에 살고, 남편은 지방에서 8년 동안 주말 부부로 지냈지요.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살고 있는 이유는 나도 자랑스러운 나의 커리어와 소위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서였고, 친정엄마가 앞 동에 살고 있어서 '회사'를 다니며 주말부부로 지냈습니다. 사실, 이렇게 주말 부부로 지내는 것이 우리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놀고 있습니다.

저는 번아웃이 와서 스스로에게 충전할 시간을 주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남편은 육아휴직으로 잠시 주말 부부를 접고 1월부터 한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부부가 함께 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고, 하루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서로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공하지 않길 잘했네.

'성공'이 무엇일까요? 직장인이었던 제게는 아마도 승진, 임원, 높은 연봉이겠지요. 결혼을 한 제게는 아마도 좋은 집과 멋진 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임원이 되고, 승진을 하면 나를 위한 시간은 많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가지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런 생각은 조금은 자조적이고, 지금 상황에 스스로 한 퇴사에 대한 변명이고 합리화 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가족이 함께'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고, 행복에 대한 나의 생각이 변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홍해인이 된다면"이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커리어우먼으로의 나의 시간보다 우리 아이들과 가족과의 시간이 더 가치 있다는 나의 대답을 떠올리고 나니, '그래, 성공하지 않길 잘했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샤머니즘은 내 친구였습니다. 

20년간 일을 하며, 항상 샤머니즘은 내 친구였습니다. 중요한 연말 인사가 있으면, '점신'과 '지피지기' 등 사주애플리케이션이 말해주는 올해의 토정비결의 직업운을 꼼꼼하게 읽어 봅니다. 그뿐인가요. 매주 월요일 주간 별자리 운세를 알려주는 매거진의 별자리 운세를 찾아, W Korea, 마리끌레르, 싱글즈 등등에서 업로드 되는 별자리를 월요일 출근길엔 빠짐없이 모두 찾아 읽어봅니다. 보고가 있거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날엔, 오늘의 운세를 켜고 운세가 말해주는 오늘 하루 점수에 나의 자신감이 채워지고 행운을 기대했습니다. 운세가 나쁜 날에는 왠지 위축되고 조심스러운 하루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인데 저는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리라 믿고 싶었나 봅니다. 운세에서 오늘은 꽃길이 펼쳐질꺼에요 라는 말을 들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 이야기에 의존하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싶었나봅니다. 


지금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별자리가 알려준 내용의 대부분은 연봉, 이직 등 커리어와 관련된 내용으로 지금은 아무리 읽어보아도 도무지 나의 상황과 맞는 운세가 없는 영향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성공을 원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은 내 마음의 소리를 궁금해합니다. 무언가에 의존하기보다 좀 더 내가 나의 주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따라다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을 위한 조건을 읽고,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그렇게 되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고 부러워했습니다. 이제, 내 시선을 나에게 집중합니다. 시선이 나에게 오니,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을 알게 되고, 그에 대한 기준을 하나씩 잡고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보게 되고, 내가 깨닫는 점들을 나의 노트에 써보기도 합니다. 늘 궁금해하던 단단한 마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방법을 이제 나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근육을 키우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이어야만 하는 것들의 소중함. 

지금이어야만 하는 것들의 소중함. 하나씩 깨닫고 있습니다. 감사함이 생깁니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이야기들의 소중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 꽃이 피고, 연둣빛 새싹이 가득한 이 계절에만 느끼는 아름다움.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하루.  지금, 잠시 쉬며, 충전을 하고 새로운 앞으로를 계획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물론, 일을 하며 느끼는 자존감, 성공에서 오는 성취감과 존재감은 지금은 느낄 수 없습니다. 또, 경제적인 부분도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던 '지금'이라는 행복에 대한 가득 찬 마음은 아마도 제가 '성공'을 했다면 놓치고 지나가는 부분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홍해인처럼, 시한부 판정을 받는 다면 당장 무엇을 가장 하고 싶으세요?"

이 질문은 나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제각각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아쉬운 것들에 대한 주제로 답을 합니다. 죽음앞에 가장 중요한 한가지, 앞으로 무한할 것만 같던 시간이 없어졌을 때 가장 가치 있는 단 하나. 이런 고민은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눈물의 여왕'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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