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세탁기 청소하다 울컥한 날 – 집안일의 감정 구조
처음으로 세탁기 필터를 청소하던 날,
나는 숨이 턱 막히는 냄새를 맡았다.
찌든 먼지, 검은 물때,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축한 냄새.
그건 단순한 '더러움'이 아니라
가족의 삶이 남긴 흔적 같았다.
“이거, 진짜 이대로 계속 썼던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로 떠올랐다.
그동안 아내가 몇 번이나 말했었다.
“세탁기 청소도 한 번 해야 하는데…”
“며칠 전부터 냄새가 나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그때마다 무심코 대답했다.
“응, 나중에 한번 볼게.”
“요즘 바빠서… 다음에 하자.”
그리고 그 ‘다음’은 오지 않았다.
필터 커버를 열자
먼지가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손에 닿자마자 부서져 내렸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미안했다.
그동안 내가 무심코 지나쳐온 집안의 구석들,
그곳에서 누군가는 혼자
몸을 굽히고, 닦고, 치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세탁기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어쩌면 이건 단순한 가전 청소가 아니라,
관계의 청소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내가 하지 않았던 것들.
‘알면서도 안 했던’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쌓이며 만든
아내의 짧은 한숨, 무표정, 침묵.
그 모든 것이
이 필터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 옷을 돌리는 세탁기.
유치원에서 튀긴 김치국물 자국,
운동장에서 흘린 흙먼지,
엄마랑 요리하다 묻은 밀가루 얼룩.
그 모든 것들이
이 조용한 기계 안에서
하루에 몇 번씩 씻겨 나갔다.
나는 그저 ‘돌린다’ 고만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이의 하루가 지워지고, 정리되고, 다시 시작되는 공간’이었다.
세탁기 위엔 언제나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엄마 최고!”
“가족 사랑해요!”
“아빠 웃어요~”
나는 그 그림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나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만 봤고,
그 아래 굽은 아내의 등을 보지 못했다.
청소를 마친 후,
나는 뜨거운 물에 천을 적셔
세탁기 외관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이왕 하는 김에’가 아니라
‘지금 이 손길이 늦은 사과이자 감사이길’ 바라며.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아내에게 말했다.
“세탁기 청소했어.
앞으로 내가 이건 맡을게.”
그 짧은 말에
아내는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 고마워.”
짧은 말.
짧은 표정.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가족이라는 관계의 미세한 진동이었다.
저녁 식사 후,
아들은 과자를 먹다 말고 물었다.
“아빠, 오늘 뭐 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세탁기 청소했지.”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우와~ 나도 볼래!”
나는 아이들을 데려가 세탁기 앞을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여기 물 나오는 거야?”
“이 구멍이 빨래 돌리는 거야?”
그날 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세탁기 필터의 구조를 설명했다.
작은 집 안의 대화.
작은 주제로 연결된 관심.
나는 그 안에서
'아빠로서의 작은 권위'를 되찾았다.
아빠로서 처음 맡아본 세탁기 청소.
처음엔 단순히 "한 번쯤 해줘야지"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손으로 먼지를 닦고, 필터를 열고, 고무패킹 속 잔여물을 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기계를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의 하루를 정리하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정리해 본다.
나처럼 이제 막 세탁기와 건조기를 ‘내 일’로 받아들이려는
모든 아빠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 드럼 세탁기 고무패킹은 매주 한 번 닦자.
→ 세탁조 세정은 한 달에 한 번.
→ 세탁기 문은 세탁 후 반드시 열어 두자.
→ 건조기 먼지 필터는 사용 후 바로 비우기.
→ 콘덴서 청소는 주 1~2회.
→ 매월 첫 토요일, ‘세탁기 점검의 날’로 가족 루틴 만들기.
기계를 닦는 시간이
우리 가족의 공기를 닦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탁기는 돌아가고, 가족의 하루도 함께 돌아간다.
나는 이제 그것을 ‘아빠의 루틴’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세탁기 속 먼지를 닦으며,
말없이 쌓인 마음의 먼지도 닦기 시작했다.”
〈4화. 아이 씻기기 챌린지 – 울음보다 웃음을 이끌기까지〉
– 욕실에서 시작된 전쟁, 그리고 아빠의 성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