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인생을 찾다》

3편 백핸드는 견딤이다 – 실직과 다시 일어서는 법

by 라이브러리 파파

처음 백핸드를 배웠을 때, 공이 자꾸 라켓을 비껴나갔다.
손에 힘을 빼려 해도 자꾸 손목이 말리고,
공의 속도보다 내 반응이 늘 한 박자 느렸다.


백핸드는 익숙하지 않았다.
왼손처럼 어색했고,
몸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건 마치 실직을 처음 겪었을 때 내 몸과 마음이 보인 반응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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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예고 없는 구조조정 통보, 정리된 책상,
그리고 문 앞에 선 내 뒷모습.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날 하루는 이상하리만큼 길게 느껴졌다.
뭔가에 맞은 듯 얼얼했고,
나라는 존재가 한순간에 공중으로 흩어져버린 느낌이었다.

그 후 한동안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
정면으로 날아오는 공은 없었다.
대신, 왼쪽으로, 낮게 휘어지는 공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피할 수 없는 공이었고,
포핸드로는 더 이상 받아낼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백핸드는 반응이 아니라 준비다.
익숙한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더 빨리 자세를 갖추고,
더 일찍 중심을 이동시켜야 한다.

나는 그 시기를 버텨내며 처음으로 ‘예민한 준비’라는 걸 배웠다.
감정이 터지기 전,
자존심이 무너지기 전,
고요하게 중심을 낮추는 법.

한 번은 공을 치다가 그대로 무릎을 꿇은 적이 있다.
허탈해서가 아니라, 다리의 힘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날은 유난히 백핸드 타이밍이 늦었고,
공은 계속 네트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본 코치는 조용히 내 옆에 앉았다.

“지금은 공을 치는 게 아니라, 회복을 배우는 중이에요.”

그 말이 참 오래 마음에 남았다.
회복은 치유가 아니다.
아물지도 않고, 잊히지도 않는다.
다만, 다시 자세를 잡는 일.
뒷발을 다시 붙이고, 손을 천천히 라켓으로 올리는 일.
무언가를 회복한다는 건, 그저 다시 움직여보겠다는 선언 같은 것이었다.


실직 후 몇 달, 나는 아르바이트처럼 짧은 일들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풀타임의 자리를 찾기엔 자신이 없었고,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지냈다.
하지만 테니스만은 끊지 않았다.
백핸드는 느렸지만, 점점 땅을 맞고 튀는 공의 리듬에 적응하고 있었다.
실직이라는 공도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궤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처음으로 백핸드가 라인을 타고 깔끔하게 들어갔다.
그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섰다.
그 한 번의 감각이
내가 이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한 번의 백핸드는
내게 돌아온 하나의 명함처럼 느껴졌다.
아직은 이름만 적혀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작은 예고처럼.

백핸드는 조용한 기술이다.

포핸드처럼 과감하지 않고,
스매시처럼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가 가장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가장 정확하게 들어가는 샷이기도 하다.
그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장 조용히 버틴 사람들이
어느 날 가장 정확한 한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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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직을 경험한 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경쟁보다 협력에 눈이 갔고,
속도보다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무리한 계획보다, 매일의 리듬을 먼저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시작에는
백핸드 연습이 있었다.

어느 날 테니스 클럽에서 새로 온 사람과 짝이 되었다.
그는 처음이라며 많이 긴장해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백핸드 위치를 안내해 주었다.
"처음엔 다 엇나가요. 근데 괜찮아요.
이건 좀 오래 걸리는 기술이에요."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건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나에게 백핸드는
삶의 방향이 바뀌었을 때 필요한 기술이다.
익숙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새로운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는 신호.
낯설고 어색해도
그 방향으로도 경기는 계속된다는 믿음.

살다 보면 누구나 백핸드가 필요한 순간을 마주한다.
관계가 틀어질 때,
일에서 밀려날 때,
자신이 자신 같지 않을 때.

그때 기억하자.
우리는 이미 한 번쯤
왼손으로 공을 넘겨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공은,
의외로 잘 들어간다.


다음 이야기
테니스는 혼자서 하는 경기 같지만,
사실 가장 복잡한 건 함께하는 더블스다.
타이밍, 말, 위치, 리듬.
결혼이라는 팀워크도 그와 닮아 있다.
다음 편에서는 더블스와 결혼,
‘같이 하는 경기’에서 배운 인생의 기술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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