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먼저 움직이고, 그다음 문장이 따라온다
달리고 나면,
나는 쓴다.
이건 늘 같은 패턴이다.
땀을 닦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소파에 등을 기대는 순간,
머릿속 문장이 나를 조용히 툭툭 건드린다.
‘지금 쓰지 않으면, 사라질 것 같은 말들.’
그 말들이 내 안에서 뛰기 시작한다.
그날의 거리, 그날의 바람,
뛰는 동안 떠오른 기억,
그리고 그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감정 하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책을 낼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달리기를 하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자꾸 무언가를 “적고 싶어 졌다.”
뛰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왜 이렇게 힘들까.”
“이 피로는 어디서 오는 걸까.”
“무엇이 나를 달리게 했을까.”
그 질문들이 가슴속에서 진동처럼 맴돌고,
그 진동이 문장이 되어 튀어나온다.
예전엔 글이란 거창한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글이란 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살고 싶어서.
그냥 버텨보고 싶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하니
마음이 뒤따라왔고,
마음이 달리자, 생각이 터졌다.
그리고 생각은 말이 되었고,
그 말은 글이 되었다.
하루 3km,
그 안에서 수십 개의 문장이 나를 스쳐간다.
때로는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때로는 후회가 밀려오고,
때로는 웃고 있는 내 아내가 생각난다.
그때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쌓인다.
지우고 싶지 않은 감정이 생긴다.
그래서 쓴다.
달리는 사람은, 결국 쓰는 사람이 된다.
달리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들은 의자에 앉아도 오지 않는다.
멍하니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달리고, 뛰고, 헉헉거리며 살아낸 사람에게만 온다.
어느 날이었다.
3km를 다 뛰고 돌아온 날,
샤워도 하기 전에 메모장을 켜고 이렇게 썼다.
"아빠라는 말은 오늘 하루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쓰고 나서 다음 날 뛰고 나서
다시 읽으면 머쓱한 문장들도
있다는 걸 독자들에게만 공유하고 싶다.)
그 문장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냥 떠올랐고,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
단숨에 적었다.
글을 쓴다는 건
그런 생각의 호흡을 잡아채는 일이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진심’을 쓸 수는 있다.
달릴 때마다 진심이 떠오른다.
가장 숨차고, 가장 땀나는 순간에
진짜 하고 싶은 말이 튀어나온다.
‘오늘도 괜찮았어.’
‘이 정도면 잘한 거야.’
‘내일도 뛸 수 있을까?’
‘괜찮아, 무너지지 않았잖아.’
그 문장들은 책에 실릴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는 가장 강력한 응원이 된다.
그리고 그 글은 언젠가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단다.”
“그냥 하루를 버텨낸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안에는 이런 말들이 있었단다.”
글은 나를 위한 기록이면서,
아이에게 남기는 비밀 편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뛴다.
그리고 나는 쓴다.
두 가지 모두 멈출 수 없다.
한 번도 나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에게
달리기는 몸을,
글쓰기는 마음을 열어준 셈이다.
나는 이제 확신한다.
쓰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쓰지 못한다.
숨이 차오를수록,
나는 더 정확한 문장을 만난다.
고요해질수록,
나는 더 진실한 문장을 붙잡는다.
오늘도 나는 달리고, 쓰고, 다시 살아낸다.
그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서.
11편 – 울컥한 날도 있었다
달리는 날마다 평온했던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뛰다가 눈물이 맺히고,
어떤 날은 멈춰 서서 한참을 숨만 몰아쉰 적도 있다.
다음 편에서는 ‘그 울컥한 날들’에 대한
아빠의 기록을 담아봅니다.
주인공과 함께 달리며 쓰실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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