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ZERO – 우리가 흩어진 날》

EP.03 – 차단구역의 새벽, 깨어나는 연결

by 라이브러리 파파

[새벽, 그리고 흔들리는 도시]


2035년 6월 9일 새벽 4시 02분.


황성 남서부, 차단구역 D7의 전력망은

전날부터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도시는 더 이상 깨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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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빛도 없었고, 방송도 멈췄다.
단지,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섬광의 흔적과 무너진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체온뿐이었다.


드론 순찰 기록엔 아무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지만,
지하 연결통로에서 한 명의 소년이 조용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라운이었다. 손목의 레볼칩은

아직도 5.00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값은 식수도, 식량도 사지 못하는 숫자였지만,
그를 따르는 아이들에겐 지도보다 정확한 ‘존재의 신호’였다.

“오늘은, 동쪽까지 가볼 거야.”


그가 속삭이자, 아이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따라 일어났다.
차단구역 외곽에는 비공식 통로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통로 어딘가에서,

구조 신호가 미약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로미가 마지막으로 감응 반응을 보인 좌표였다.


[제인: 연결을 복원하는 손]

제인은 이제 공식 시스템상 '삭제된 사용자'였다.
레벨과 프리덤, 감응 인증까지 모두 말소된 그녀는
황성 남부 폐연구소 구역에서도 더 아래,
데이터 기초망이 흘러들던 하위 전송층에서 홀로 앉아 있었다.


철제 케이블 위에 엎드린 채,
그녀는 부서진 송수신 모듈을 납땜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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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손끝으로 번졌고, 피부는 자꾸 갈라졌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의 신호 하나라도

더 복원하기 위해서였다.

“로미야... 널 찾았어. 그러니, 이번엔 내가 너에게 닿을 차례야.”

그녀가 설계했던 레볼루션 시스템은
감응과 행동, 신뢰와 계좌를 엮어 사람을 분류했다.

하지만 제인은 그 프레임을 처음 설계한 사람으로서,
그 경계선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였다.

백도어 코드 [SERAPHIM-LINK]
– 오래전에 그녀가 아이를 임신하던 시절, 몰래 남겨두었던
긴급 연결 경로를 뜻했다.


그녀는 그 코드를 입력했고,
전송 신호가 차단구역 D7 외곽의 라운 쪽으로 튀었다.
반응은 없었다. 하지만 제인은 알았다.
그 아이는 반드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다비드: 침묵 속을 걷는 발자국]


2035년 6월 9일 새벽 3시 40분.
황성 남부 구획의 서편, 폐쇄된 지하열차 경계 터널.

다비드는 더 이상 장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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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은 이미 사령부 책상 위에 내려놓았고,
프리덤 50이 찍힌 레볼칩은 더는 빛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지금까지 그 어떤 작전보다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제인이 남긴 경로는 반드시 존재한다.
아이들이 있는 방향은… 여기가 맞아.”

두꺼운 연기와 먼지,
붕괴 직전의 철로 위를 조심스레 지나며,

그는 무너진 철골 사이로 파고든 바람의 소리에 집중했다.

과거라면 시스템 드론이 그를 추적했겠지만,
지금은 다비드조차 시스템의 감시대상에서 제거된 ‘이탈자’였다.

“하물며 나는… 그 시스템을 지켜온 사람이었지.”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민간 열차가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알고도
작전 차단을 승인한 손.

그 손에 붙은 책임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구조’를 향한 걸음을 걷고 있었다.
군인의 직위가 아니라, 아버지의 본능으로.

다비드는 손목 장치의 수동 위치 기록기를 켰다.
아무런 통신 신호는 없었지만,

그가 만든 비상 송신기는 제인의 백도어 신호를
미약하게나마 수신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제인이 그에게 보낸 좌표 – 차단구역 7번 출입로 근처에서
희미한 신호가 점멸되었다.


‘로미?’

작은 가능성.
그러나 그 가능성이 그의 온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는 통로 끝에 쪼그려 앉아
망가진 배관 위로 올라탔고,
드론의 감시 눈을 피해 가며
손목 속 수신기를 계속 바라보았다.


“지금은 아무도 내게 명령하지 않는다.
그러니… 난, 감정대로 움직인다.”


[로미: 희망이 다시 손을 들 때]


2035년 6월 9일 새벽 4시 05분.

황성 남부 폐열차 지하 환승 통로, 제 7C 구획.

로미는 여전히 손을 들고 있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고, 아이들의 숨은 얕았으며,
감응 능력을 지속해 온 손끝은 이제 저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아직, 다 도착하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앞에는 세 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깊은 상처로 인해 말을 잃은 채였다.
그 아이의 손을 붙잡은 로미는
‘엄마가 그랬던 손’처럼, 조용히 그 이마에 손을 얹었다.


손목의 레볼칩은 더 이상 프리덤을 주지 않았지만,
작은 희미한 열이 그녀의 감응을 ‘희망’이라 인식했다.

[비인가 감응 반응 – 로그 기록됨 / 시스템 외 데이터 저장 중지]

시스템은 이제 그녀를 감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위협이 아니라 자유였다.


“여긴 제로 존 근처야.
모든 신호가 끊긴다는 건,
누구도 감시하지 않는다는 거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


로미는 그렇게 배웠다.
엄마가 말했던 그 단어—“제로 존이야말로,
모든 신호의 시작점이자 끝이야.”


한 아이가 조용히 물었다.
“로미야, 너는 무섭지 않아?”

로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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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하지만…
먼저 손을 내밀어야,
누군가가 따라올 수 있어.”


그녀의 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새벽빛이 조금씩 터널 끝을 물들이기 시작했을 때,
로미는 바닥에 놓인 종이조각을 꺼냈다.


어릴 적 엄마가 그려준 송신기 설계도.
그 종이 위에 그녀는 드론 잔해를 활용해
임시 감응 신호기를 다시 조립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그녀를 둘러쌌고,
손끝에서 파란 불빛이 다시 깜박였다.

“이게 마지막 신호가 될지 몰라.
그러니까, 진짜로 전하고 싶은 말을 써야 해.”


로미는 송신기 위에 이렇게 입력했다.

“우리는 여기에 있어요.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그 순간, 송신기의 불빛은
이전보다 더 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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