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는 금지어입니다》
“오늘 뭐 먹을래?”
나는 분명 친절하게 물어본 것이다.
선택권을 줬고, 자유를 줬고, 결정할 기회를 넘긴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단 한 마디였다.
“아무거나.”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럼 김치볶음밥 어때?”
“그건 좀…”
“순두부찌개는?”
“느끼하잖아…”
그럼 대체 뭐가 먹고 싶은 거냐고.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래서 한 번 더 물었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은 거 맞지?”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넌 아무거 나가 아니라, 고민 중이야.”
그 말이 웃기면서도, 묘하게 찔렸다.
그렇다.
그녀는 아무거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정하기 귀찮은 상태였던 것이다.
결정은 미뤘고, 선택은 넘겼고,
그러면서도 마음속에는 정답이 이미 있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론 비교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런 상황을 자주 만든다.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해놓고
막상 상대가 고르면 “그건 별론데…” 하고
반응하는 순간들.
그건 진짜 아무거 나가 아니다.
선택의 책임을 피하려는 회피의 말일뿐이다.
고양이 엄마는 그런 말들을 귀신같이 잡아낸다.
그녀는 결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잔소리
대신 팩트를 던진다.
“네가 원하는 걸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걸 얻지 못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생각하던 메뉴를
조심스럽게 꺼내놨다.
“사실은… 순두부찌개 먹고 싶었어요.”
그녀는 피식 웃었다.
“봐봐. 있었잖아. 그냥 말을 안 한 거지.”
그 말은 단순히 식사 메뉴를 고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뭐든 괜찮아”라는 말로
선택을 회피하며 하루를 넘긴다.
하지만 그렇게 넘긴 하루가 쌓이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게 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알아주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선택이 나를 대신 결정한다.
“아무거나”라는 말은
상대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나를 잃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오늘 저녁,
다시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이제는 말해볼 생각이다.
“사실은…
짜장면보다 짬뽕이 먹고 싶어요.”
잔소리가 더 듣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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