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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보안 2] 10. 보안인력 10만 양병설을 접하고

과거의 아픔이 떠오르다.

  내가 IT업체 취업과 함께 사회에 진출해 한창 3년 차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을 시기에 우리나라는 IMF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경기 불황과 구조조정의 한파에 몸을 사리고 있었고, 다니던 회사 역시 불황으로 인해 성장이 정체되면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다행히 나는 태풍을 피해 갈 수 있었으나 함께 일하던 많은 동료들이 복귀시기를 약속받지 못하는 기약 없는 자택대기 상태로 전환되어 하염없이 회사에서 다시 불러주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참 어렵고 암울했던 시기였다.


  대학을 갓 졸업하자마자 IMF라는 풍파를 만나게 된 젊은 청춘들은 예상치 못했던 불황으로 인해 취업을 하지 못하고 강제로 방황해야만 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나라 상황이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가슴 아픈 IT개발 분야의 상처를 만드는 정책을 야기하게 되었으니 바로 정부의 SW개발자 육성정책.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하나로 IT산업을 부흥시키겠다며 내놓은 정책이었다.

  실제 시장에서는 IT기업의 증가와 더불어 정부의 IT분야 과제도 대폭 증가함에 따라 SW개발자 소요가 증가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고, 신규 일자리에 대응하기 위해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한 SW 개발과정을 통해 개발자를 육성해 공급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정책에 호응해 많은 컴퓨터 학원들이 생겨났으며, 시장에는 단기 SW교육을 이수한 개발자들이 무수히 공급되기 시작했다. 이수자들이 컴퓨터학과를 전공했다거나 또는 컴퓨터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은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그저 늘어난 일자리에 맞추기 위해 그리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붕어빵 찍어내듯이 사람들을 찍어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짧은 기간 만에 시장에는 SW개발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얼핏 정부의 정책은 성공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을 무시한 탓일까!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시장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SW개발자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에 반비례하여 SW개발자에 대한 처우와 인건비는 덩달아 낮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적정한 수요와 공급을 고려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즈음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고객사 담당자의 한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가격에 안 할 거면 말고, 시장에 개발자는 많아요"


라던 그 한 문장의 말. 그 한 문장으로 나는 앞으로 SW개발자가 처하게 될 미래를 익히 예상할 수 있었다. 처참한 결과를 직접 경험한 나는 고민 끝에 좋은 인연이 되어 보안업계로 회사를 옮겼으며, 이후 수 십 년간 개발업계에서 SW개발자에 대한 처우와 인건비가 낮은 수준으로 거의 동결된 채 운영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바라봐야만 했다.


  사실 알고 있었다. 취업이 힘들었고 미래가 불투명했던 힘든 시기였기 때문이다. SW개발자 교육을 받으면 전도유망한 SW개발자로 떳떳하게 직장을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몇 개월간의 학원 교육을 기꺼이 이수하고 사회에 진출했던 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그들 중 많은 수는 스스로도 전공도 아니고 취향도 아닌 개발자로 사회에 나아가게 될 것을 짐작도 못했을 것임을. 그들은 그저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을.

  또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발을 디딘 개발자의 삶에서 그들 대부분은 밝은 희망을 꿈꾸는 직장인의 삶보다는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만년 직장인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또 알고 있었다. 컴퓨터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개발자로서의 삶이니 짧은 단기과정을 마치고 시장에 던져진 그들에게는 더 힘들고 어렵고 고통의 길이 될 것임을.

  그리고 그때는 나도 알지 못했다. SW개발자로서 묵묵히 열심히 살아도 그들 대부분의 미래에는 직장인의 꿈이라는 고위직이나 임원으로서의 미래는 없을 것임을. 그것이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IT가 위치한 현실이고, 그 아픈 현실 속에는 내가 청운의 꿈을 품고 옮겨간 보안분야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최근 청년들의 낮은 취업률에 대해 걱정하는 소식이 자주 들려오는 동시에 정보보안이 미래 유망직종으로 기사와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동시에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뉴스와 기사도 자주 보인다. 결국은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보안인력 10만 양병설"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항상 그렇듯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는 전혀 다른 경우가 태반이기 마련이다. 언론과 뉴스에서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고 얘기하고 실제로 인력이 부족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정보보안 유관학과를 졸업하고도 보안분야에 취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정보보안 취업과정을 운영하는 전문학원에서 장장 6개월에 걸친 전문가 정규과정을 마친 졸업생 중에도 취업하는 경우는 열 중 하나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정보보안 유관학과를 졸업한 졸업생 중 많은 수가 기본 역량의 부족으로 기업이 원하는 수준을 맞추지 못해 서류심사나 면접에서 탈락하고 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규수업 과정으로는 기업이 원하는 수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졸업생 중 보안분야 진출을 희망하는 일부는 취업을 위한 지식 습득을 위해 정보보안 전문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학원을 이수한 열 중 여덟 정도는 취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장장 6개월에 걸친 체계화된 전문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 전문인력들이다. 보안업계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업 실무자들의 강의를 통해 실제 현장에서 바로 적용가능한 지식과 기술을 익힌 상태이므로 원한다면 대부분 취업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마음에 드는 기업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것. 즉,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면 굳이 취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낮은 연봉을 받으면서 간섭까지 받을 바에는 차라리 맘 편하게 편의점 알바나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일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 낫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둘째, 전문기관의 교육과정이 다소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설루션 개발자, 보안컨설턴트, 보안엔지니어 등 분야별로 전문화되지 못하고 모의해킹 등의 일부 분야에 집중되어 있어 보안업체의 실제 요구와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기업들이 원하는 보안분야 인재의 수준은 적어도 6개월의 전문과정을 이수한 인재들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근 기업들의 채용 분위기는 기업은 사람을 뽑아 일을 시키는 곳이지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힘들게 뽑아 다시 오랜 시간 동안 가르치기보다는 이미 기초를 갖춘 검증된 인재를 원하는 것이다. 모든 기업에서 보안인력의 경우 일반직이 아닌 전문직으로 채용하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를 원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취업하고자 하는 사람은 기업이 원하는 수준에 맞지 않고, 수준이 맞는 사람은 이런저런 조건으로 취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조건이 맞지 않는 것이다.

  해결을 위해서는 정보보안 유관학과를 졸업하면 기업이 원하는 최소한의 전문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보안분야 인력들에 대한 처우개선이 필요하다. 지금 현재 보안을 전공으로 선택해 배우고 있는 사람들과 앞으로 보안을 전공이자 직업으로 선택할 사람들을 위한 방안말이다. 현실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붕어빵 찍듯이 보안인력을 찍어내는 방식으로는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다. 오히려 과거의 아픔만 재현될까 두렵다. 기업과 청년들의 현황을 잘 살펴서 과연 무엇이 최선인지 찾아가는 조율이 필요한 이유다.

  이는 어쩌면 내 아이, 누군가의 자녀, 현재 대학에서 관련 학과를 다니고 있거나 장차 다니게 될 보안인력들의 미래에 대한 일이다. 나는 보안분야가 앞으로도 계속 유망한 직종으로 남기를 원하고 또 소망한다. 그만큼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아픈 기억으로 남은 "10만 양병설"이 다시 부활했다. 부디 과거의 아픔이 보안분야에도 반복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또 신중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오래전 상황이 지금의 상황과 자꾸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인지. 그저 나이 먹어가면서 늘어나는 노파심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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