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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Oct 30. 2021

비가 와도 완벽한 도시 잘츠부르크

비 오는 날의 잘츠부르크(18.10.07.)

이날은 우리의 여행  유일하게 비가  날이었다. 비가 오면 아쉽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이때까지 계속 맑은 날에만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루쯤은 비가 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다니기 불편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는  아니었기 때문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이 운치 있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전날 숙소에서 지도를 보며 나름대로 열심히 어디 어디를 갈지 계획을 해놓고 나왔는데, 가기로 했던 곳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잘츠부르크 도시 자체가 워낙 작은 마을이어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보던 지도의 축적과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카페부터 가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 ‘마가르트 다리까지 곧장 와버렸다.


마가르트 다리는 양옆이 철창으로 되어있고  철창에 자물쇠가 빼곡이 매달려있었다. 멀리서 보면  다리는 붉은색으로 보였다. 사랑을 맹세하는 다리라서 붉은색으로  자물쇠를 많이 매달아서 그런지,  붉게 보이는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자물쇠를 가져오지 않았지만  우산을 쓰고  다리를 건너며 자물쇠보다 영원한 기억을 담았다. 나중에 J에게 여행하면서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물었더니 이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우리 여행  아마도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단지 비 오는  물안개가 살짝  다리를 걸었을 뿐이지만.

마가르트 다리를 중간까지만 건너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CAFE BAZAR’라는 곳에 갔다. 잘자흐 강변에 바로 앞에 있는 카페였는데, 아침 이른 시간에 온 것 치고는 좌석이 거의 차있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강가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는 앉지 못하고 그냥 빈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카페 내 인테리어가 워낙 포근하면서도 고급스러운 풍경이어서 딱 유럽의 일상에 머무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J와 나는 각각 커피 한잔씩, 음식은 크로와상 빵 하나만 주문했다. 한국에서 크로와상을 먹으면 밋밋해서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는데, 여행하는 동안에는 꽤 많이 먹었던 것 같다. 버터가 기본 세팅이어서 우유 향이 향긋하게 나는 맛있는 버터를 발라먹는 그 빵이 무척 맛있었다.


카페에서 간단히 먹고 미라벨 정원으로 갔다. 전날 지쳐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다시 제대로 보기 위해  것이다. 비가 오니  전날 보았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J 나는 전날에도 오길 잘했고, 오늘도 오길 잘했다고 얘기했다. 전날 날이 맑았을  정원을 보지 못했다면 맑은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테고, 이날은 오지 않았으면 정원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웠을 테니. 그리고 전날 보지 못했던  위주로 보기 시작했다. 정원의 중앙 화단이 아닌 옆쪽을 먼저 걸어 들어갔다. 키높이보다  정원수들로 가꾸어진 미로 같았다. 나는 갑자기 이곳에서 ‘무중력  찍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점프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마치 중력이 없는 공간에 떠다니는 듯한 효과를 주는 사진이었다. 일본의 어떤 사진작가가 찍기 시작해서 SNS에서 유행하게  것인데, 어쩐지 갑자기 생각나서 J에게 찍어보자며 제안했다. 비록 비가 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우산을 내던지고 점프를 하며 열심히 찍었다. 핸드폰의 셔터스피드가 우리의  속도를 포착할 만큼 빠르지 않아서 제대로  사진을 건지기는 들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 자체를 나보다 J 재밌어했다. 내가 하도 어설프게 뛰는 탓이었다.

어설프게 뛰는 내가 무중력샷을 찍으려고 노력한 사진

미라벨 궁전은 1616년에 대주교 볼프 디트리히가 사랑하는 연인 살로메 알트를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한다. 궁전을 거닐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만한 것을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사랑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보다  사랑을 그렇게 표현할  있다는 것에 자부심까지 느낄  같다.  그만한 것을 받는 사람은 오죽할까. 아무리 물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생각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누구든  눈에 보이는 형태로 증명하고 싶어서 서로 반지를 나눠 끼고, 마가르트 다리 같은 곳에 자물쇠를 매달지 않나. 나는 ‘권력자가 사랑에 빠지면 이런 예쁜 궁전을 지을 생각을   있는 걸까?’라고 말했지만, J ‘그냥 돈이 많으면 돼.’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  대주교가 직접 설계를 하지는 않았을 테니. 궁전 안에는 작지만 화려한 공연장이 있었는데, 그날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을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J  공연을 보고 싶어 했다. 나는 비싼  같다는 생각도 들고 공연보다는 맥주가 마시고 싶어서  공연이 특별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J 정말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앞쪽(7번째  정도까지) 앉을  다면 예약을 하자고 타협했다. 직원에게 남은 자리를 확인해보니 아주 뒤쪽 좌석  줄과 관람하기에 별로 좋지 않은 가장자리  좌석만 남아있었다. 덕분에 J와 나는 오케스트라 관람을 후련하게 포기하고 공연장에서 나왔.


미라벨 정원에서 나와 게트라이데 거리를 갔다.  거리는 예쁜 간판들 덕에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거리가 되었다. 주로 쇼핑 상가들과 음식점들이 많이 있었는데,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거리 치고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우리는  거리에서 구글 지도로 미리 검색해두었던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를 하기에 약간 이른 시간이었는지 우리가  손님이었다. 덕분에 점심식사를 여유롭게   있었다. 나는 낮부터 술에 절어버리면(한잔만 마셔도 빨개지기 때문에) 힘들  같아서  알코올 맥주를 시켰는데, 이상하게도 취기가 올라오는  같았다. 그래서 직원에게  알코올이 맞는지 확인해보았는데, 맞다고 했다. J 시킨 맥주를   모금 마시긴 했는데 아무래도 그것 때문인  같았다. 고작 맥주 두 모금으로도 취한다고? 나도 몰랐는데, 그랬나 보다. 다행히 취기는 금방 가셨고, 우리는 다시 전날 제대로  봤던 것들을 보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이었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성당으로 유명하단다.  도시는 온통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 초콜릿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은  블록에   이상 있었던  같다. J 그런 모차르트 가게를 이제 보기만 해도 질린다며 질색했다. 우리는 그래서  많은 상점 중에   군데만 들러서 모차르트 초콜릿을 맛만 보자 싶어서 여섯 알만 샀다. 맛은 그저 그랬다. 럼이 들어간 듯한 미세한 알코올 향이 나는 진한 다크 초콜릿 볼이었다. 모차르트를 좋아하더라도 딱히 그런 초콜릿을 많이 사갈  같지는 않아서 가게가 그렇게 많아도 장사가 될까 싶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형태의 성당이었다. 기둥과 천장은 화려한 문양으로 조각되어있는  특징이었다. 그리고 기둥과 천장, 외벽이 모두 흰색이어서 작고 예쁜 도시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창이 크지 않아서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구조였지만 벽면마다 천장화가 성당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는  같았다. 성당에서 나온 뒤에는 그냥 걷다가 우연히 수도원 묘지를 발견했다. 사실 성당보다 더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정원 같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처음에는 묘지인  몰랐는데, 자세히 보다 보니 이름이 새겨져 있고 비석이 있는  고 묘지인 줄 알았. 각각의 묘지에 어떤 사람들이 묻혀있고, 어떤 이야기들을 묘비에 썼는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 촉촉하게 젖은 그곳이 묘지답지 않게 꽃과 풀들이 많아 아름다워 보였다. 죽음이 그렇게 아름답게 기록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거리낌이나 울타리 없이 개방된다는  부럽기도 했다. 어떤 숭고한 삶을  사람들이 그곳에 기록되었을까 궁금해졌다.

잘츠부르크 성이 보이는 아름다운 수도원 묘지

오후 4시쯤이 되었을 때, 한국에서 예약해두었던 잘츠부르크 카드를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교환했다. 그 카드는 관광지를 가는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모차르트 생가, 박물관 등의 입장권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 카드를 산 주된 목적은 다음날 운터스베르크에 가기 위한 것이었다. 운터스베르크까지 가는 대중교통과 왕복 케이블카를 모두 그 카드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때 개시한 건, 덤으로 모차르트 생가를 보기 위함이었다. 기대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모차르트의 도시이니 잘츠부르크까지 와서 모차르트 생가를 안 볼 수야 없지 하고 보러 갔다. 그때 당시의 피아노와 모차르트의 친필 편지, 악보들이 있었다. J는 모차르트가 작곡할 당시에 썼던 악보들을 본 게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지만 나는 모차르트의 머리카락이 가장 인상 깊었다. 그 당시 사람의 머리카락이 그대로 남아 보존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어쩐지 그로테스크 한 부분이 있었다. 모차르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도 사랑이 가득한 문장들이 담겨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뮤지컬 공연의 무대와 의상까지 디자인했었다는 점도 놀라웠다. 다만 모차르트가 우리에게는 그냥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외국의 유명한 음악가 그 이상은 아니어서 큰 감동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때 우리는 이미 꽤 지쳐있었기 때문에 더욱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본래 모차르트 생가를  후에는 모차르트 박물관을 가려고 으나 J와 나는 미련 없이 박물관 일정은 떨쳐버리고 곧바로 숙소에 먹을  사 가지고 가서 편하게 저녁을 먹기로 했다.  와중에 해질녘의 야경만큼은 아쉬웠다. 숙소 주인의 추천 리스트 중에 숙소 바로 뒤에 뷰가 좋은 전망대가 있다고 쓰여 어서 피곤한 와중에도 그곳은  가고 싶었다.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걸어서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금방 다녀온 후에 저녁을 먹으면   같았다. 전날 노을 지는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탓도 있었다. 지친 기색으로 ‘꼭 가야겠냐’고 말하는 J를 내가 굳이 굳이 설득해서 나왔다. 한적한 뒷산을 걸어가니, 역시나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우리  모두 사람이 많은 북적한 거리를 싫어했는데, 하루 종일 그런 거리 속에 있다가 관광지로부터 벗어난 곳에 오니 정말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산책로를 오르는 사람은 동네 주민인  같은 사람들만 간혹 가다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우리들이 서울에 관광  어느 외국인이 남산도 아닌 서울 어느 변두리의 동네 사람들만 아는 작은 산에 오르는  같을 거라고 대화하며 걸어갔다. 게다가 전망을 보기 위해 지친 상태에서도 산을 오르는 나도 , 나다- 하는 생각이 들어 학교 다닐 때부터 옥상에 올라가는  그리도 좋아했었다는 얘기를 했다. 내가 체구가 작아서 평소엔 내려다보질 못하니  트인 곳에서 내려다보는  그렇게 좋아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결국 암벽등반을 하고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 전망을 보는 것을 즐기게 되었나 싶기도 하다.


그때까지는  좋았는데, 아무리 걸어도 전망대는 보이지 않았다. 구글 지도를 켜놓고 방향을 계속 따라갔지만  전망대에서는 우리가 기대한 방향이 아닌  반대편의 전망이 보였다. 우리는 위치상  전망대에서 분명 잘츠부르크 성을 맞은편에서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기 때문에  올라가다 보면  다른 전망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시 올라갔다.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아래쪽 전망대에서 봤을  핑크빛으로 물들었던 도시는 이제 어둠에 묻혀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오면서도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서 얼른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기대했던 전망을 보기 위해 다른 길로 들어서서 가다가 폐쇄된 전망대도 마주치게 되니 힘들다기보다는 무서워졌다. 나는 무서움을 스스로 진정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여행 오기 전에 봤던 사운드 오브 뮤직 얘기를 했다. 나는 본래 다른 사람에게 봤던  재밌게  전하지 못하는 편인데 열심히 줄거리를 요약해서 J에게 얘기했다. 사실상 이야기 자체의 목적이 실종된 이야기이다 보니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냥 아무 말이나 했고, J 거의 듣고만 있었다. 우리는 이제 전망을 포기한  산에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내려와서 지도를 보니 다른 길로 갔으면 금방 우리가 원하는 전망을   있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또다시  길을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내려오는 길에  다른 각도의 야경도 나쁘지 않았다며 위안 삼았다. 다행히 우리는 완전히 캄캄해지기 전에는 내려올  있었다. 돌아왔을 , 숙소가 아늑해서  다행이었다.

약간 아쉬웠던 성 반대편 방향의 잘츠부르크 전망 - 지금보니 이 풍경도 꽤 아름답다
올라가는 길에 이 풍경을 보면서, 성방향으로 더 탁트인 야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서야 들은 얘기인데, J 내가 무서워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무서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 J 있어서 그래도  무서웠고, 덕분에 울지 않을  있었을 것이다. 혼자였으면 사실 아무리 야경이 보고 싶더라도 외국에서 길도 잘 모르는 뒷산을 올라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숙소에 무사히 돌아온 뒤에는 마트에서  소시지와 즉석식품으로 나온 리조또, 파스타를 요리해서(요리라기보다는 간단히 데우거나 볶아서) 먹으며, 역시나 맥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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