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Feb 08. 2022

스티글 양조장을 향한 사활을 건 달리기

운터스베르크에서 스티글 양조장까지(18.10.08)


잘츠부르크에서 흔히들 가는 근교 여행지는 ‘할슈타트’ 이다. J와 나도 역시 여행 일정을 계획할 때, 할슈타트를 생각했었는데 너무 고된 여정이 될 것 같아 과감히 빼버렸다. 그리고 그 할슈타트의 풍경, 호수를 중앙에 둔 소금광산 마을은 멋있긴 했지만 우리에게는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 같다. 여행 후기들을 보면 소금광산을 다녀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던 체험이라고 했지만 J나 나나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일정을 대신하여 다른 갈만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그곳이 바로 ‘운터스베르크’였다.

운터스베르크는 해발고도는 한라산 높이와 비슷하다고 하나 경사가 훨씬 가파르기 때문에 케이블카가 설치되어있어, 그 케이블카를 타고 10분 만에 올라갈 수 있는 산이었다. 특이한 점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위치해있다는 점이다.


나는 스무 살 때, 가족들과 함께 한라산을 등반했던 경험이 있어 그 높이에 올라가면 어떨지 대략 알고 있었다. 내가 한라산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본 날은 다행히 아주 맑은 날씨였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구름이 발아래에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곳에서 보는 광경은 날씨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데, 적당히 구름이 있는 날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내가 본 날이 꼭 그랬다. 그렇게 좋은 날이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라 했다. 우리가 운터스베르크에 가기로 한 날도 전날 확인해 본 예보 상으로 맑은 날씨일 것이라 했고, 예보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한라산에 올라갔을 때는 맑은 여름 날씨였음에도 바람도 거세게 불고 추웠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가을의 운터스베르크 전망대는 그때보다 더욱 추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춥지 않았다. 그래도 초겨울의 바람과 비슷한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양털 구름들이 마을을 반 정도 뒤덮고 있었다. 솜을 잘게 찢어서 적당히 펼쳐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우리가 출발한 잘츠부르크는 머지않은 곳에 보였고 그 전날 그토록 힘들게 올랐던 숙소 뒷산은 허무하게도 굉장히 낮아 보였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한 날 야경을 보겠다고 밤에 힘들게 올랐던 잘츠부르크 성은 아주 조그마한 모형처럼 귀여워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 오르고, 오른 다음에는 더 높은 곳을 추구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나 보다. 더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자유로워지니까. 우리는 경치에 취해 거의 두 시간 가까이 느긋하게 전망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갔다. 구름이 산을 넘어가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하고 잔잔한 구름의 움직임을 담기 위해 아이폰을 삼각대에 세워서 타임랩스를 찍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해는 눈높이와 비슷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단체로 관광 온 한국인 관광객들이 꽤 많이 보였다. 우리는 그제야 다소 소란해진 그곳에서 내려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운터스베르크에서 내려온 뒤, 헬브룬 궁전을 갔다. 헬브룬 궁전은 노란 담벼락에 둘러싸인 궁전이었다. 몸이 노곤해지기도 했고, 워낙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오늘 일정은 그걸로 다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냥 시간이 남아 가보는 느낌이었다. 궁전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니 부지가 꽤 넓은가 보다 생각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궁전 앞의 호수가 딸린 공원을 여유롭게 돌아도 30분이 채 안 걸릴 크기였다. 어차피 기대를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왔다는 발도장만 찍는 정도로 약간은 의무적으로 사진만 몇 장 찍고 공원 내의 카페에 들어갔다.


아침부터 점심이 될 때까지 운터스베르크에서 먹은 감자칩과 물뿐이었다. 우리 둘 다 먹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여행 중에는 둘 다 엄청 허기를 느끼고 피곤해질 때까지 돌아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헬브룬 궁전의 공원에 있는 카페에 들어간 건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역시나 식사를 할만한 메뉴는 없었다. 그래도 배를 채워야 했기에 베이글 샌드위치와 샐러드, 커피 두 잔을 주문했다. 샌드위치는 다행히도 먹을만했는데, 샐러드가 엄청 짰다. 드레싱에 소금을 잔뜩 뿌린 것 같았다. ‘잘츠’ 부르크(‘salz’(소금) burg) 다운 샐러드였던 걸까. 아무튼 배가 무척 고팠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배를 채웠다.


다음으로 간 곳이 스티글 양조장이다. 스티글 양조장은 멀다고 생각해서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던 곳인데, 잘츠부르크는 도시 자체가 작았기 때문에 모든 경로가 생각보다 많이 단축되어서 양조장을 다녀올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게다가 잘츠부르크 카드로 교통비 혜택도 볼 수 있었고, 스티글 양조장 관람도 잘츠부르크 카드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헬브룬 궁전에서 스티글 양조장까지는 직통 버스가 없고 환승을 한 번 거쳐야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화장실이 엄청 급해지는 바람에 가는 길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환승하는 동안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근처 화장실을 찾아보기도 하고, 상점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끝끝내 참아야만 했다. 환승한 버스에서 내려 스티글 양조장까지는 걸어서 15분쯤 걸리는 거리였는데, 정말 일생일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여차하면 길거리에서, 그것도 J 앞에서 소변을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양조장까지 미친 듯이 뛰어갔다. 수치스러웠지만 길거리에서 소변을 누는 수치는 ‘당시 남자 친구’(현 남편) 에게 더욱 보일 수는 없었기에 사활을 걸고 뛰었다. 다행히 양조장에 도착해서 화장실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깨끗한 화장실에서 곧 평온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평온해진 상태로 양조장을 둘러보며, 이때 확실히 잘츠부르크 카드가 제값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화장실이 깨끗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이전 06화 비가 와도 완벽한 도시 잘츠부르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