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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Feb 18. 2022

유럽이 좋은 것만은 아니란 걸 느끼며

마지막 도시 프라하에서의 첫날(18.10.09.)

프라하로 향하는 버스에서, 하리보와 함께한 여정

마지막 도시 프라하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새벽 여섯 시 반에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출발하여 Linz라는 역까지 가서 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린츠까지는 50분 정도 걸렸고, 린츠에서 버스 환승 후 출발하기까지는 다시 50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4시간 정도 달려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무려 여섯시간이 걸리는 육로여정이었다. 그 긴 여정을 통해 아름다운 도시,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또! 화장실이 너무 급해져서 곤욕을 치렀다. 유럽여행을 하기엔 너무 작은 내 방광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방광확대술이라도 있으면 받고 싶다 생각할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찾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역 지하로 내려가서 찾았는데 동전을 넣어야 한대서 다시 지상에 올라와서 짐을 맡아두고 있던 J에게 뛰어가 동전 지갑을 갖고 내려왔다. 내 생애 가장 열심히, 땀이 나도록 긴박하게 뛰었을 것이다. (참, 잘츠부르크에서도 그렇게 뛰었었지… 여행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작은 방광 때문에 벌어진 일들일 줄이야.)그런데 동전 지갑에는 유로밖에 들어있지 않았고 중앙역의 화장실은 유로가 아닌 체코 화폐만 받는 모양이었다. 나는 일단 급한 마음에 0.5유로를 그냥 넣어버렸고 무슨 경고음 같은 것이 났던 것 같은데 마침 운 좋게 나오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 틈을 타 화장실에 들어갔다. 엄청나게 급했기 때문에 그 수밖에는 없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환전을 하고 환전을 한 대도 지폐로 바꿔줬을 것이므로 동전을 만들기 위해 뭔가를 산 뒤, 화장실을 가려고 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동전을 넣어야 하는 유럽의 시스템이 새삼 참 불편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리가 잘 된 화장실을 어느 지하철역에서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그것만큼은 여행자들에게 참 편리할 것이다. 그래도 50원짜리 동전이라도 넣어야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게 만들면 화장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불법 촬영하는 범죄가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많은 범죄들의 예방책이 된다면 싸게 먹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일단 급한데도 동전이 없다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시스템은 역시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게 야박하게 느껴지는 거겠지만… 이렇게 화장실에서 마음이 평온해지니 화장실에 대한 고찰을 했다.


덕분에 프라하의 첫 기억은 그렇다. 도착하자마자 화장실 때문에 고생했고, 이 아름다운 도시를 즐기기 전에 혼이 나가버린 듯했다. 그리고 또 다시금 여행 파트너로 J가 있었다는 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혼자였다면 짐을 맡길 곳도 없고, 무척 고생하다가 곤욕 정도가 아니라 정말 길에서 큰일을 치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멋진 프라하 중앙역의 돔도 방뇨후 구경해야만 했다.

곧바로 우버 택시를 잡아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 어플에서 봤던 사진과 그대로이긴 했지만 잘츠부르크 숙소만큼 좋은 퀄리티는 아니었던지라 약간 실망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깔끔했고, 나흘 동안 머물기에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새벽부터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온 게 피곤해서였는지, 그동안의 여독이 쌓인 탓도 있었던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몇 시간 동안 잠들어버렸다. 일어났을 때는 이미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오후 3-4시경이었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은 역시나 많은 욕심을 부릴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와 가까운 음식점을 검색해보고 곧바로 걸어서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체코의 대표적인 음식 콜 레뇨와 굴라쉬를 하나씩 시키고 코젤 흑맥주와 필스너 우르켈을 마셨다. 콜레뇨는 생각보다 무척 양이 많아서 사실 한 접시가 2~3인분정도 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먹어도 줄지 않는 것 같았던 꼴레뇨가 반 이상 남았기 때문에 포장을 해왔는데 포장 값도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여러모로 공짜로 받고 있는 것이 많다는 걸 외국에 와서야 새삼 느낀다. 그리고 식당의 직원이 매우 느긋해서 주문받으러 한참 뒤에 오고, 계산한다고 얘기한 후에도 한참 뒤에 온 덕에 우리도 느긋하게 식사 시간을 가졌다. 또다시 우리나라 생각을 하기도 했다. 손님이 계산하러 오는 직원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외국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급하게 계산하고 나가야 할 때가 있을 텐데 그럴 땐 아무리 느긋한 성격이라도 답답할 것이다. 역시 계산은 나가는 사람이 하고 가는 게 훨씬 편리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인 것 같다. 여행이 끝나가니 화장실도 그렇고, 빠른 결제 시스템도 그렇고 자꾸만 이렇게 한국의 좋은 점을 생각하게 되는가 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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