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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Feb 01. 2024

조카가 태어나면 세상이 달라질까?


  어제는 나에게 세 번째로 조카가 생긴 날이었다. 남편의 여동생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시동생 부부에게는 첫 아이였고, 남편에게는 탄생을 목격한 첫 조카여서 그 의미가 더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처음으로 조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어땠더라. 오빠네 부부의 첫 아이, 첫 번째 조카가 태어나던 날, 나의 기분을 표현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벌써 만 8년 된 일이다. 태어나던 날에 사진 몇 장과 짧은 영상으로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예정일 보다 일찍 나온 아기는 2.8kg으로 출생했다고 했다. 아마 축하한다고 했겠지만, 내가 무슨 반응을 보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조카를 만나던 순간만큼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조카를 처음 만난 건 새언니가 조리원에서 나온 뒤, 오빠네 부부의 집에서였다. 조카는 태어난 지 2주쯤 되었을 때였는데, 새언니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피부는 보드라웠고, 약간 붉고 투명해 보였다. 쌍꺼풀이 짙고 눈썹이 길었다. 아가의 통통한 볼과 작고 여린 손과 발, 발가락,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손톱과 발톱들. 그토록 작은 인간을 본 건 처음이어서 만져보기도 겁이 났었다. 그러면서도 홀린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본 아가 중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다. 새언니가 안아보라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니에요’ 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그 아이를 자꾸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내일이 궁금하고, 몇 달뒤, 몇 년 뒤가 궁금하고 그랬다. 


  나는 엄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니고 고모였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내가 궁금하다고 너무 자주 연락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만나러 가서는 안 될 일이었다. 더구나 오빠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조카는 오빠네 부부의 다정한 보살핌을 받으며 쑥쑥 자랐다. 그래서 조카에게 나는 일 년에 대여섯 번쯤 만나는 고모였지만, 신기하게도 조카는 나를 좋아했다. “고모 좋아”,“고모 사랑해”라고 그 아이는 자주 말했다. 놀랍게도 너무나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그 작은 몸에서 사랑이 어디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건지, 볼 때마다 늘 감격스러웠다. 조카의 사랑에 보답하는 좋은 고모,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남편이 언젠가 이렇게 물었다.

  “조카가 생기면 세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지게 된다던데 정말 그래?”

  내 조카들은 남편에게도 조카이지만, 조카들이 이미 어린이가 된 뒤에 고모부가 되었던 그는 아직 그 기분을 잘 모르겠는 듯 말했다. 나도 그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 조카가 생기고 나서 달라지게 된 세상을. 정말로 달라진 것이 맞았다. 남편도 그런 기분을 느끼게 될까?


  늘 함께하지 않고, 가끔 만나지만 같은 시점에 내가 사랑하는 구체적으로 유일무이한 어린이, 조카가 현재를 함께 살고 있다는 것. 또 그 어린이가 나를 종종 떠올리고, 사랑한다는 사실. 그 사실 덕분에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 아이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 험난하지 않기를 바라서. 그 마음이 조카에 대한 내 사랑의 형태였다. 


  내가 너에게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던 것 같아. 네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든지,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나는 너를 사랑하리라고 느꼈던 거야.   - 최은영, ‘답신’ 중에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수록)


  우연히도 어제 읽은 책에 조카를 사랑하는 이모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두 아이에게는 고모이며, 어제 태어난 아이에게는 숙모가 되었다. 이 모든 고모든, 삼촌이든 숙모든, 아이의 부모보다는 조금 떨어져 있다. 내 마음은 부모의 사랑에는 감히 비교할 수야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는 거부한다.  


  어른들은 이제 막 사랑한다고 외치기 시작한 어린애들에게 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묻곤 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 아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고민 없이 답하기도 하고 자라면서부터는 고민도 하고, 답하기를 거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사랑이 넘치는 아이가 누구를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누구보다 고모가 더 좋다고 하면 기분은 좋다만...) 마찬가지로 아이의 주변 어른끼리 누가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지도 겨룰 게 못 된다. 사랑은 아이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소중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아이 덕분에 그 모든 사랑이 생겨났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원인이 되어 생겨난 그 모든 사랑을 아이가 다시 온몸으로 받으며 힘껏 자라서, 자신의 온 인생을 거쳐가기 위한 양분으로 쓰길. 그러니 조카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널 볼 때부터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하는 말은 나에게도 정말 진심이다. 나의 세 번째 조카와도 앞으로 주고받을 사랑이 기대된다.

Pexels에서 Dominika Roseclay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117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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