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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Jul 07. 2024

한 우물만 판 40대의 대책 없는 진로탐색

다른 일 찾기에는 너무 늦었나요



 나는 학교를 좋아했다.

 학교에서의 모든 소소한 일들이 재미있었다.


 나는 수학도 좋아했다.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가르치는 건 더 재미있었다.


 담임을 하는 것도 좋았다. 

 학생들을 쥐 잡듯이 관리하는 빡센 선생님이 아니었던 나는, 학생들과 나름 대화도 잘 통하고 별 다른 트러블도 없었다. 30명 아이들을 맡다 보면 골치 아픈 애들이야 한둘은 있었지만 지지고 볶고 하다 보면 사계절은 금방 지나갔다. 종업식 하는 날은 늘 뭉클한 섭섭함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다.


 교무실도 너무 사랑했다.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을 서로 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았다. 이상한 학생들, 학부모 욕도 하고, 열심히하고 예쁜 애들 칭찬도 했다. 어떤 날은 누가 옥수수를 삶아와 나눠먹고, 어떤 날은 누가 주말에 배 타고 바다 나가 낚시로 잡아온 쭈꾸미도 먹던 교무실이 나는 너무 좋았다.



나의 애틋한, 사랑해 마지않던 학교. 교실. 교무실.


그런데 이제 그 학교가 그렇게 좋지 않다.


우리 학교만 그럴까.

우리 학교만 내가 가면 가슴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는 공간일까.

학교만 옮기면, 다른 학교면 괜찮은 걸까.

학교라는 공간에 다시 돌아가도 될까.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남은 20여 년의 교직생활 중에도 비슷한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만약을 위해서 미래를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그래. 진로탐색을 하자.

제2의 직업을 찾아보자.




 일단, 배운 게 도둑질이라 가르치는 업을 또 해볼까 했다.

 선택지는 과외, 학원, 공부방이 있었다.


 대학생 때 끊임없이 과외를 했었다. 평일에는 6시-8시, 9시-11시 이렇게 두타임을 잡고 하루에 두 개씩 하고, 가까운 곳끼리 할 때는 5시부터 시작하면 하루에 세타임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싫다. 저녁시간이 통째로 갈리는 것도, 내 자식 집에 버려두고 남의 집 돌아다니며 진 빠지게 일해야 하는 것도 싫다. 1대 1 과외 수업에서 돈 값은 학생의 성적 향상일 텐데, 매 시험 기간, 이제는 내 아이의 시험기간과도 겹칠 그 기간에 남의 자식 여러 명 책임지고 가르치고, 내신 성적 걱정까지 할 자신이 없었다.


 학원에 들어갈까 그것도 알아봤다. 수업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면접을 보기가 싫었다. 고등부는 29번, 30번 킬러문제를 내고 그걸 그 자리에서 풀고 설명하는 걸로 면접을 본다고 했다. 솔직히 자신 없다. 나는 이제 문제를 푸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킬러문제는 풀 수야 있겠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는 못 푼다. 솔직히 말하면, 어쩌면 못 풀 수도.


 내가 면접이란 걸 본 게 언제였더라.

 교직생활 중 딱히 도전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던 그냥 말 그대로의 '평교사' 그 자체로 지내온 나는 임용고사 면접이 마지막 면접이었다. 무려 16년 전.

 내가 갖고 있는 것은 '16년 차 수학교사'라는 명함 달랑 하나뿐인데 취업하기 위해 내 수업을 보이고 평가받기가 싫었다. 부담스럽고. 좋은 말만 해주는 학교와는 또 다를 날카로운 평가의 칼날도 무서웠다.

 

 과외도 학원도, 학생들을 학교 밖에서 가르치려면 저녁시간을 써야 한다.

 나는 이제 나이가 들어버렸다. 40대 초반이야 많지도 않은 나이지만 이제는 케어해야 할 자식과 남편이 있고, 20대의 저녁시간과 지금의 저녁시간은 완전히 그 무게가 달랐다. 40대 엄마로서의 저녁시간은 노동으로 쓰기에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계속 그 일을 했으면 모를까, 지금 그 정글로 들어가자니 쉽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20년쯤 수학에 몸 바쳤으면 다른 일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이제 머리도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고, 학생들도 점점 또라이들도 많아지니 아예 '수학'이나 '교육'과는 관계없는 걸 하면 어떨까 했다.


 우울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즐거운 사람들만 만나는 곳.

 밝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곳.



 꽃집.

 꽃집이었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만 있지 않을까?  
 자기 집에 두든, 누구에게 선물을 하든 '꽃'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밝은 기운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네에 소문난 꽃 가게에 가보았다. 화사한 꽃들에 둘러싸인 사장님이 손님보다 행복해 보였다. 직업으로서 꽃을 팔다니, 부러웠다. 나도 해 볼 수 있을까? 꽃집?


 


 그런데. 나는 '연쇄식물마'이다.

 화분하나 집에서 제대로 키워본 적 없고, 우리 집에 들어오는 꽃들은 길어야 3일을 넘기지 못하고 누렇게 뜬 잎을 뚝뚝 떨구며 다들 죽어버렸다. 유튜브를 보고 매일 물도 갈고, 컷팅도 해주고, 얼음도 넣어주고, 영양제도 넣고 갖은 애정을 쏟아봐도 똑같았다. 그냥 죽는다.

 나는 이 길에는 재능이 없는 것이다.


 그 꽃집에 나를 갖다 놓으면 그 가게의 모든 꽃들은 죄다 시들거나 죽거나 할 것이다. 꽃 팔면서 행복은커녕, 적자에 후달거리다가 권리금도 못 받고 가게를 넘겨버릴 것이 뻔하다.




 그럼,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

 "사람이 기술이 있어야지."

 AI 시대에는 '사람', 휴먼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다.

 내가 지금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까? 로봇이 할 수 없는 일.


 도배와 줄눈을 알아보았다.

 가까운 곳에 배우는 데가 있었다. 후기를 보니 배우는 것이야 어찌어찌 과정을 밟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숙련기간도 필요하고 팀 작업을 해야 했다. 이것도 혼자 사부작사부작 조용히 할 일은 아니었다.


 청소도 일당이 세던데, 청소를 할까?

 그런데 휴직기간에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로봇청소기 돌리는 것도 겨우 하는 내가 남의 집, 남의 사무실, 남의 빌딩, 계단, 화장실 청소를 업으로 삼아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청소 쪽으로는 성실함은 제로다. 의지도 없고 재능도 없다.


 앙금케익 만드는 걸 배워볼까?

 일단 베이킹이나 데코에는 관심이 없고 소질도 없다. 요즘은 인스타로 모든 걸 홍보하고 판매해야 하는데 나는 사진 찍는 기술도 없고 인스타는 아이디도 없다. 딱 질색이다 SNS는.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왜 잘하는 게 없지?

하고 싶은 게 없지?

뭘 해야 하지?

어디에 나의 쓸모가 있지?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에 하는

'나를 알아보아요'

'나의 강점과 장점 찾기'

'적성과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지금 하고 앉아있자니 답답했다.

답이 없다. 노답. 그 자체.



나한테 학생들이 와서 매일 하던 말.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잘 찾아봐, 너가 좋아하는 거, 잘하는 거 하나는 있겠지."

했었는데, 이제 나 안의 내가 묻는다.


"그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면요?"

"내가 가장 잘했던 것이 싫어지면요?"




 40대의 진로탐색자는 힘들다. 힘이 많이 든다.

 뒤늦게 성공적인 전직을 하는 경우는 가슴에 품고 있던 일을 하기 위해, 현재 하던 일을 접고 새 직업으로 가는 경우였다. 좋아하던 일이 싫어져서, 그걸 때려치우고 2순위 일을 억지로 찾아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든 것 같다. 이 경우 열정도 의지도 체력도 정신도 떨어질 것이니 앞선 경우보다 성공하기도 힘들 것이다.


 40대 초입인데도 벌써 도전하고 배우기에는 용기가 모자란다.

 패기가 없다. 안 생긴다. 평가가 두렵다.

 실패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실패는 싫다.


 나는 척박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20대 이후의 나의 삶은 온실 속의 화초였다.

 월급이 적다, 힘들다 어쩌고 해도 그냥 공무원 생활에 적응되어 버렸나 보다.


 이렇게 두 번째 적성을 찾지 못한 채 공노비로서 만족하며 살아볼 것인지, 50대, 60대를 생각하면 지금은 너무나 젊은 나이일 텐데 겁내지 말고 무엇이든 배워두고 도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큰 문제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짤꼬.



 같은 일을 20년째 하니 좋아하던 일이라도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도 긴데 20년 주기로 강제로 직업을 바꾸게 했으면 좋겠다. 20대, 40대, 60대 직업의 전환 시기를 강제적으로 거치게 하는 것이다. 매번 대학을 가든지 뭘 하든지 나이에 맞게 적성을 다시 찾고, 새로운 일을 하도록. 졸혼하듯이 옛 직업과는 안녕. 그럼 일생이 더 다채로워질 텐데 말이다.  







다음 이야기 :  우울증과 자식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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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보아요. 대형 쓰레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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