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활기차게 학교를 휘젓고 다녀야 했던 3,4월에 내 모든 것을 소진하고 나니 교실이, 학교가, 출근이 두려워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다리에 힘이 빠져 출근길에 주저앉았다. 생각은 몸을 움직여 출근길에 나서라고 재촉하고 있었지만 걱정과 불안으로 잠 한숨 못 이룬 그날의 내 몸은 격렬히 출근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의 일은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었지만 학생의 생명을 책임지는 일까지는 아니었다.
3월 첫 주 처음 만난 그 학생은 어제 자살을 시도하느라 학교에 결석했다고 말했고 그것을 시작으로 나의 3월은 '자살'이라는 단어로 뭉개졌다. 나를 소진시켰던 그 아이도 위태로운 상황이었겠지만 가정에서 헐거워진 고리를 내가 메꿔줄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날은 출근보다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당연한 결과 일 수 있으나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으니 정신과 진료를 빠른 시일내에 받으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고, 그날 인생 처음으로 정신과에 찾아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가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내 정신이 얼마나 피폐해져 있는 상태인지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차라리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지는 게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증명해야 하지는 않으니까. 나를 힘들게 했던 것에서 하루빨리 탈출해서 더 이상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기 전에 그 원인에서부터 멀어지고 싶었지만, 교사의 신분으로는 나의 아픔을 진단서라는 종이로 꼭 증명해야만 병가를 사용할 수 있었고, 학교라는 원인 제공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잊고 싶은 이야기들을 애써 헤집어 꺼내고, 내가 왜 여기 와야만 했는지를 그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울먹거리며 털어놓고 같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해야만 했다. 몇 주간의 진료와 상담과 검사를 거쳐 나는 ‘우울 에피소드’라는 병명이 적힌 진단서를 받았고 비로소 학교 공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진단서만 받으면 되었다.
그런데 의사는 나에게 우울 지수가 심각하게 높다고 했다. 그 일도 심각한 충격인 것은 맞다고 했다. 그래도 내가 겪었던 일들이 다른 사람이었으면 더 수월하게 지나갈 수 있었을 수도 있는데 우울증으로 인해서 더 크게 타격이 왔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 일 말고는 다른 문제는 없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당황스러웠다. 빠른 손놀림으로 차트에 무언가를 타타탁 치더니 약을 처방하고 우울증 약을 매일 먹으라고 했다.
‘나 진짜 왜 우울증이지?’
‘우울증 약 먹으면 평생 먹어야 되는 건가?’
‘일 하다가 이렇게 됐는데, 나 자체가 우울해서 더 힘든 거라고?’
‘이러다 공황까지 오는 건 아니겠지?’
걱정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걱정의 끝은 없었으며 그 깊이는 깊었다.
만연한 우울증이 내 내면에 깔려있다고 생각하니 힘들게 살아왔던 내 어린 시절이 자꾸 생각나서 아팠고, 가끔씩은 고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의 부모에 대해 화가 났고, 기껏 키웠더니 사춘기라는 완장을 차고 매일 나를 피폐하게 하는 딸에게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다. 공부를 하려면 확 잘할 것이지 어정쩡하게 공부해서 기껏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해 여기까지 온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모든 사람과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화가 났다.
‘우울증’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니 진짜 우울증 환자가 된 것 같았다.
이 소식을 전하자 주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과 그럴 만하다는 반응과 현대인이라면 다 그렇지 않냐는 세 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였다. 누구는 약을 잘 챙겨 먹어라 했고, 누구는 약은 절대 먹지 말라고 했다. 누구는 만나자고 했고 누구는 혼자의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누구는 지금까지 너무 지쳤으니 움직이지 말고 편하게 집에서 계속 잠을 자라고 했고 누구는 조금이라도 움직이고 밖으로 나가서 운동을 해야 된다고 했다. 각자 저마다의 우울증 치료법이 있는 것인지 실제로 해보고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에게 도움 되겠다 싶은 방법들을 하나씩 제안하며 위로와 걱정을 보탰다.
나는 뭔가 어려움을 느끼면 책으로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내는 편이다.
요리를 하고 싶으면 요리책을 잔뜩 빌리고 딸의 사춘기가 나를 힘들게 할 때면 사춘기 책을 다 빌려 한 번에 읽는다. 이번에도 나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수십 권 빌리고 읽었다. 다들 각자의 삶에서 고통받고 있었고 이유가 있는 사람들도, 별 다른 이유가 없이 그냥 우울증을 두드려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책은 병원 진료받는 법을 알려줬고 어떤 책은 우울증에 처방되는 약들을 종류별로 다 설명해 주었다.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고, 과한 것도 있었다. 나는 자살시도를 하는 우울증 환자를 상대하다가 우울증이 되어버렸는데 우울증 환자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읽으니 덩달아 같이 우울함이 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10권을 읽으면 각기 다른 10명의 우울증 환자들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없어 책을 통한 그들과의 만남이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자살이나 자해 에피소드를 다루는 글에서는 ‘난 죽고 싶지는 않은데’ 하는 거부감이 들었다.
이미 정착지를 '나'로 확정하고 온 우울증은,
소금 탁탁 뿌려 후다닥 보내기에는 어려운 손님이다.
가볍게 온 우울증은
피할 수 없는 자리에서 만나버린 손절한 친구처럼,
‘그래, 왔니’
하며 인사하여 맞이할 수 밖에 없다.
하나도 반갑지 않지만, 잘 맞이하고 달래서
‘이제 가, 한동안 보지 말자.’
하며 떠나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나는 이 손님이 왜 나를 찾아왔는지 이유를 들어보고 잘 달래서 보낼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나는 우울증이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
죽고 싶지는 않은데 떡볶이도 먹고 싶지 않다.
나는 우울증이지만 모든 순간이 우울하지는 않다.
가끔씩 웃겨서 빵 터지고 눈물나게 웃기도 한다.
우울증 밖에만 있다가 우울증 안으로 들어와보니, 참 내가 몰랐던 것이 많구나 싶다.
오히려 나를 더 많이 살펴보고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노력한다고 낫는 것도 아니고 약을 먹는다고 낫는 것도 아닌 것이라 마음가짐이 쉽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을 글로 쓰는 발자국으로 기록을 남겨 뒤에 오는 이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이 시간의 기록은 나에게도 치유의 과정이 될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이 당황스러운.
우울증이라는 병명보다는 무기력에 더 가까운.
가벼운 우울증을 맞이해버린 보통의 삶을 살았던 여러 이들과 함께
우울증과 같이가는 내 여정을 나누고자 한다.
다음 이야기 :해리포터 선생님과 다이아 선생님의 대결
+ 내 인생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 선생님- 꿈, 잠, 식욕.. 모든걸 약으로 척척 해결하는 당신은 해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