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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Aug 20. 2024

인생을 여름방학처럼 살다가는

골로 가겠어요. 방학이요, 진짜 힘들어요오오옹!!

장항준 감독의 가훈은 '인생을 여름방학처럼'이라고 한다.

언제나 설레는 여름방학처럼,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걱정 말고 여유롭게 살자는 뜻이라고.

나는 장항준 감독의 태도와 유머가 좋다. 한없이 가벼운데 무례하지는 않다.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저런 친구 있으면 진짜 좋겠다 싶다.

 저 가훈을 처음 들었을 때는, '와! 저런 게 가훈이라니. 진짜 장항준답다, 너무 멋있다!' 생각했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설레는가!

인생을 여름방학처럼!!



그런데,

올해 여름방학을 지내고 보니, 인생을 여름방학처럼 살다가는 바로 골로 가겠다싶다.

옛날 내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이라면 통하는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외국의 여름방학이라면 뭐, 인정한다.


대한민국의 학생과 학부모로서의 여름방학은 여유롭고 설레기만 하는 방학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방학이 있는 삶만 살았다.

학생 때는 당연히 방학이 있었고, 대학 졸업 후 바로 교직에 들어왔기 때문에 8살 이후로 내 인생에서 방학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업이고 학생들이고 약간 정나미가 떨어질만하면 방학이 왔다. 국수 소면을 삶을 때 물이 끓어 넘치려는 순간 찬물을 부어 촤~! 가라앉히듯이, 방학도 부글부글 끓는 삶에 들이붓는 찬물 한 바가지 같았다.



아.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은 너무 힘들었다.

개 힘들었다.

특히, 올해는 죽을 뻔했다.



일단, 미친 더위

이단, 돌밥 인생

삼단, 빨래 지옥






1. 미친 더위


예전에도 이렇게 더웠나.

에어컨 없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었나.

올해는 왜 이렇게 더운지.



아침부터 땀이 끈적끈적한 채로 잠에서 깼다.

불쾌지수는 이미 중간이상부터 시작했고,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에어컨을 켜는 것부터 하루가 시작되었다.

혼자 있거나, 아이가 한 명만 있었다고 하면 살짝 고민했을 수도 있는데, 일단 집구석에 3명이 뻗치고 있으니 에어컨을 틀어댈 인원적 명분은 충분하다고 합리화하며 에어컨을 가동했다.

유튜브나 뉴스에서 에어컨을 껐다 켰다 하는 것보다 일정 온도로 맞추어 하루종일 켜놓는 것이 전기세가 덜 나온다고 해서 올해는 그렇게 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것을 실천해 보았는데 작년과 비교해 전기세 폭탄을 맞는다면 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 유튜브 밑에 가서 악플이라도 달아야겠다.

전기세 그거 뭐, 나와봤자 하루에 만원이겠지 싶어 에어컨을 켜는 대신 밖에서 사 먹는 커피를 줄이기로 했다. 내 커피를 희생하고 얻은 집안의 시원함인데, 나름 또 쫄보 할매 마인드라 그렇게 시원하게 틀지도 못했다.


기름값은 '값'인데 전기세는 왜 '세'냐.

마음 불편하라고 세금 코스프레 하는 거냐?


전기도 그냥 기름처럼 미리 돈 내고 마음 편하게 사서 쓰면 안 될까요. 이거 뭐 시원하이 살 수가 있습니까.




2. 돌밥 인생


하루종일 짜증게이지를 80 정도에 맞추고 있는 사춘기 딸, 관심사라고는 먹을 것과 게임밖에 없는 초딩 아들은 서로 눈만 마주치면 싸워댔다. 그 둘의 의견이 일치한 적은 거의 없으나 둘의 배꼽시계의 리듬은 딱 맞아떨어지는지, 한 끼 밥을 차리고 먹고 난 후, 테이블 매트를 닦아 넣을 때쯤 그들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

"엄마, 배고파."

아 후아. 

제발 엄마 그만 불러, 좀!!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 돌밥돌밥. 돌밥 인생.

일어나는 시간도 다르고 학원 오가는 시간도 달라 밥을 여러 번 차릴 수밖에 없는데, 정해진 세끼 말고도 떡볶이에 라면에 파스타에 시리얼에 샌드위치에 머시기를 다 챙겨주다 보면 저녁쯤엔 거의 혼수상태에 빠진다.

'보자, 내가 오늘 밥을 몇 번 차렸더라..'



돌밥 인생 기념사진



그러다 보면 급발진하여 어김없이 배달어플을 열게 되는데, 배달음식을 먹고 나면 늘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만족 49에 후회 51 정도. 뭔가 개운하지 않다. 일단은 비싸고, 둘째는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대단한 환경운동가도 아니지만 플라스틱 배달용기들에 묻은 양념들을 설거지하다 보면, 에휴, 그냥 해 먹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방학 동안, 등교가 엄마들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급식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고맙습니다. 영양사 선생님. 학교님.

개학하면 맛있는 걸로 잘 부탁드려용.




3. 빨래 지옥


말할 것도 없다.

아침저녁으로 빨래를 했다.

여름옷은 조금만 늦게 빨거나, 조금만 늦게 세탁기에서 꺼내거나, 조금만 늦게 건조기에서 꺼내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수건도 마찬가지.

빨래야 기계가 해주지만 빨래 개기는 사람이 해야 한다. 빨리 건조기에서 꺼내야 하니까 건조기에서 꺼내서 일단 소파에 막 던져놓고 돌밥 짓는 하녀 생활을 하다 보면, 빨래가 점점 쌓여갔다. 가끔 그 개지 않은 옷 무더기에서 옷을 꺼내 입으면 묘한 승리감마저 느껴졌다.

개이득. 안 개길 잘했네. ㅋㅋ


어떤 사람은 빨래를 착착 개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던데, 그런 사람도 부럽습니다.

아닌가, 안 부럽습니다?

몰라요. 여튼 집안일 다 싫어요.

힘들고 귀찮아요. ㅠㅠㅠㅠㅠ




이렇게 방학이 엄마만 죽어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애들도 죽어난다.

아이들도 마냥 방학이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 더 비극이다.


우리 딸은 중1밖에 안 됐는데 방학특강에 끌려다니느라 방학을 다 썼다. 선택인 듯 필수인  헷갈리는 방학특강. 늘어난 시간만큼 수강료는 1.5배에서 2배 정도 더 받는 학원의 방학특강은 문제집은 더 많이 풀릴지는 몰라도 공부를 좋아하도록 해주지는 않는 것 같다. 수학을 전공한 나도 하루에 4시간, 5시간씩 가둬놓고 수학만 하라고 시키면 미쳐 돌아버릴 것 같다. 재미있다가도 재미없겠다. '텐투텐(10 to 10)'이라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수학만 시키는 프로그램도 있으니 그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어두운 이공계의 미래를 볼 수 있다. 그래도 그 학원에 방학이 끝나고도 다녀야 하고 공부를 안 할 요량도 아니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니기는 해야 한다. 불쌍할 노릇이다.


그렇지만 학원에 안전하게 아이들을 있게 주는데 거기서 공부도 시켜주고, 숙제도 졸라 많이 내줘서 집에 와서도 책상 앞에 앉아 있게 해 주니 방학특강이 참 고맙다. 아이들은 불쌍하지만 사춘기들과 몇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을 수 있게 해 주니 더 고맙다. 방학특강은 우리나라 사교육이 만들어낸 신기한 발명품이다. 방학특강이 없었으면 이 괴물들이랑 하루종일 붙어있었어야 했을 텐데!!!





자, 그래도 우리 모두를 위해 건배합시다!


입을 댓발 내밀고서도 학원에 꼬박꼬박 출석해 주는 사춘기를 위하여 건배!

방학이면 더 많은 예체능 학원에 다니는 초딩들을 위하여 건배!

긴긴 방학, 쓰러지지 않고 가사노동에 헌신한 나 자신을 위하여 건배!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과 엄마들을 위하여 건배!

열심히 돈 벌러 다니는 워킹맘과 워킹대디를 위하여 건배!




방학 동안 다들 평안하셨나요?

다들 개학 축하 파티 하시길 바랍니다.

개학이 있으니까 방학이 더 소중한 거 아니겠습니까요?

저도 지금, 동네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커피 사 마시러 갑니다!!

혼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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