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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Aug 27. 2024

개학을 맞이하는 전과자의 자세

초4의 개학 대비법


개학 전날 밤, 정확히 이야기하면 밤 12시가 지났으므로 이미 개학 당일 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초등학교 4학년 둘째 놈이 숙제인지 아닌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방학숙제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이 독서록 10개는 채워오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라는 희미한 기억이 만들어 낸 불안감에 휩싸여 독서록을 급하게 써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나 2학기부터는 학교 생활을 좀 성실하게 해 보려고."


"그런 인간이 독서록을 지금 하고 앉아있냐?"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친절한 AI 엄마 모드를 한번 가동해주기로 했다.

(따뜻한 눈빛 장착)

기특하다는 듯,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어, 왜?"


"아. 1학기때 쌤한테 찍힌 거 같아서. 사면을 바라는 전과자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ㅋㅋ"



뭐라고 이 자식아?

아들의 선생님은 1학기 말쯤에 바뀌셔서, 여름방학 전에 같이 지낸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담임선생님이신데,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벌써 찍혔다는지.


다짐인가 반성인가 후회인가.

전과자의 마음으로 학교를 가는 초4의 개학 전 다짐이라니. ㅋㅋ



딸은 집에서는 난장판이지만 학교에서는 100점짜리 탈을 쓰고 다닌다면, 아들은 그냥 생각자체가 없는 놈이라 딸과는 다른 버전으로 걱정을 하게 만든다. 이놈이 어디서 학교라는 교도소에 어쩌고 하는 허세쩌는 그 시를 보았나...


사춘기 초입에 아이들이 멋있다고 생각하며 외우고 다니는 시 ㅋㅋ



순진하고 통통한 얼굴로 학교라는 감옥에서 보낼 2학기를 다짐하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한데, 계속 전과자로는 살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의 정신교육을 시켜야 했다.



# 자기 전, 침대에서


"OO아, 엄마는 학교에서 수업할 때 있잖아, 재치 있게 한 마디 딱! 해서 웃겨주는 학생들은 너무 좋거든. 다들 빵 터지면 재미도 있고, 수업분위기도 좋고 말이야. 그런데 진짜 싫어하는 애들은 누군지 알아?"


"누군데?"


"눈치 없고 말만 많은 애들. 눈치 없는 애들은 낄낄빠빠도 안 되고 하루종일 이상한 소리만 하거든. 혼자 말하고, 혼자 웃고. 으~ 그런 애들 너무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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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나야~ 바로 나야~"





하.

우리 아들이 전과자가 된 이유가 있었다.

눈치도 없는 놈.

하루 종일 말하는 놈.



'너가 그래도 선생님 아들인데 선생님 수업 방해하고 학교에서 찍히고 그러면 되겠냐, 엄마는 그러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2학기에는 너 다짐대로 열심히 해서 사면 받아보자'라고 잠결에 듣지도 않는 아이 옆에서 한참을 잔소리를 하다가 나도 같이 잠이 들었다.




개학 후 딱 일주일이 지난 어젯밤.

전과자는 모범수가 되어가고 있는지 근황을 확인해 보았다.

(소파에 누워 폰으로 게임하고 있는 아들과 그 앞에 친절한 엄마인척 하는 나)


"OO아, 너 지난주에 학교 생활 성실하게 한다고 했잖아~ 일주일 동안 조금 노력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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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냐?"








겠냐???

하.. 이ㅅㅋ 진짜...



"야! 야! 이리 와! 휴대폰 놓고 이리 와! 인마!"


게임에 돌아있는 아들을 발로 차서 테이블에 앉히고, 2학기 다짐을 직접 적으라고 하여 억지 다짐을 받아냈다.



모범수들은 글씨 하나는 기똥차게 쓰던데,

저 글씨로 되긋냐?




2학기 엄마의 목표는 아들의 사면이다.

모범수 전향을 꿈꾸며.

가석방에 사면까지 화이팅!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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