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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낀표 Dec 24. 2023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 깔라마리와 맥주 한 잔

스페인 산티아고 음식&맛집 랭킹 Top8 - 4위

<80일간의 신혼여행> 38번째 글.


'스페인 산티아고 음식&맛집 랭킹 Top8'의 네 번째 글이자, 4위 깔라마리.




오징어 튀김


이 한 마디면 깔라마리라는 음식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 스페인 음식이라고 새로울 것도 없고,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이다. 그럼에도 산티아고 베스트 음식 리스트에 이 메뉴를 올린 것은 오로지 맛 때문이다. 익숙한 게 무섭다. 아는 맛인데, 그걸 정말 맛깔나게 만들어냈다.


깔라마리는 스페인어로 오징어를 뜻한다. 하지만 산티아고 길 위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오징어 튀김 음식을 뜻한다. 말 그대로 오징어를 링 모양으로 썰어서 반죽을 묻혀 튀긴 것인데, 스페인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어딜 가나 기본적으로 맛있는 메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유독 맛있는 곳들이 있었는데, 역시나 갈리시아 지방의 식당들이었다. (참고로 이번 산티아고 맛집 시리즈는 갈리시아 지방의 음식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비교를 위해 이전에 먹었던 깔라마리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자.




우리 부부는 프랑스길로 시작해서 중반부터는 북쪽길로 옮겨 걷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었던 깔라마리는 길을 걸은 지 8일 차에 머물렀던 프랑스길의 로그로뇨라는 도시에 있었다. 

이 로그로뇨라는 대도시는 타파스(혹은 핀초스, 간단한 안주 음식을 뜻한다.) 골목으로도 유명해서, 우리 부부는 그 타파스 집들을 몇 군데 돌아다녔었다. (너무 돌아다니다가 한 바탕 싸우기도 했다.


그중 한 곳에서 깔라마리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곳에서는 링 모양이 아니라 일자로 생긴 오징어 튀김을 내어 주었는데, 비주얼은 음식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했다.(스페인 대부분의 음식은 플레이팅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당연하게도 맛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튀김옷이 너무 두꺼워 오징어와 분리가 되었고, 눅눅했다. 사실 30km 정도를 걸으며 배가 곯은 상태로 먹었던 음식임을 감안하면, 맛있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런 기억이 있던 터라 이번에 먹은 깔라마리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산티아고 8일 차, 프랑스길의 로그로뇨에서 먹었던 깔라마리


다시 돌아와서, 이번에 먹은 깔라마리도 비슷한 상황에서 먹게 되었다. 하지만 여긴 갈리시아 지방이라는 점이 달랐다. 


무더운 여름 볕 아래서 십 수 km를 걸어 숙소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곧바로 밥을 먹으러 나온 우리였다. 오후 3시쯤이었던 것 같다. 

이 시간 대에는 문을 연 식당이 거의 없어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브레이크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우리가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손님이 되었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시킨 깔라마리의 비주얼은 역시나 형편없었다. 하얀 접시에 허여멀건한 오징어 튀김과 레몬이 다였으니까. 하지만 한 입 베어 물자 이전에 먹었던 깔라마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튀김이 달랐다. 얇은 튀김옷은 오징어와 딱 달라붙어 씹을 때도 원래 하나의 재료인양 조화로웠다. 반죽에도 간이 적절하게 배어 있어 짜지도, 느끼하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오징어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는데, 마치 견과류 같은 고소한 맛까지 더해져 우유를 씹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사실 스페인에서 먹은 오징어가 맛이 없었던 적은 없었지만, 이번 깔라마리는 튀김과 함께 어우러져 그 맛이 한 층 더 풍부해졌다.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 때 즈음, 옆에 있는 레몬을 짜서 깔라마리 위에 뿌렸다. ‘오징어 튀김에 타르타르 소스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레몬을 뿌려서 먹어보면 딱히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몬즙을 뿌리면 새콤달콤해진 튀김에 다시 입맛이 돈다.


와, 하고 감탄하면서 접시를 비워 나갔다.

생긴 것과는 달리 감동적인 맛을 내는 깔라마리


뜨거운 스페인 여름의 오후, 땀에 절은 옷을 채 갈아입지도 못하고 겨우 찾아온 식당. 에어컨도 없었지만 건조한 날씨 덕에 땀이 말라가며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맛본 깔라마리는, 어쩌면 그 분위기 덕에 더 맛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맥주 두 병을 시켜 짭짤 고소한 깔라마리와 한 끼 식사를 마쳤을 때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맛있게 먹었던 식당

El PASO @Abadín

https://maps.app.goo.gl/MS1nqwEpDb9XaP3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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