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은 인근 도시에 비해 꽤나 추웠다. 경자씨가 3년 전 장평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살던 서울과 비교해 겨울 기온은 평균 10도 이상 차이가 났다. 입춘이 지났지만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 해가 완전히 나는 정오가 가까워서야 경자씨는 산책하러 집을 나선다. 그녀는 하루에 꼭 만보이상을 걷는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허리가 곧고 자세가 바른 경자씨의 건강비법은 양팔을 격하게 흔들며 경보에 가까운 속도로 매일 걷는 데에 있다. 서울에 살 때는 간식과 커피까지 단단히 챙겨 걷다 보면 이만보를 훌쩍 넘기는 날도 많았다. 그녀가 이렇게 걷는 데는 말 그대로 건강하게 늙고 싶어서다. 병원에 큰돈쓸일 없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말이다. 코로나가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불러오면서 그녀의 수입은 매우 불안정해졌다. 다달이 나가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워서 서울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근교에 집을 얻어 내려온 곳이 장평이다. 노부부가 사는 농가주택에 딸린 별채를 얻었는데 월세도 저렴했지만 놀릴 수 있는 작은 밭이 딸려있어 마음에 들었다. 일이 줄어 늘어난 시간뿐 아니라 수입이 줄어 생겨난 불안을 흙을 만지며 다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자씨가 이사 온 수국리의 주민 절반은 이런저런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나이 많은 원주민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노년에 평화로운 전원 속 삶을 꿈꾸며 서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다. 마을 초입에서 바라보면 널찍한 논밭 사이로 비슷하게 생긴 농가주택이 보이고 뒷산과 가까워지는 마을 안쪽에는 주로 한눈에도 조경에 공을 들인 것처럼보이는 모던한 디자인의 주택이 띄엄띄엄 자리해 있다. 경자씨가 얻은 집은 비교적 마을 초입에 위치해 있는데 나이 많은 주인부부가 세를 놓을 목적으로 대충 지은 조립식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특히 추웠다. 경자씨는 한때 직원을 여럿 둔 사업체의 사장이었고 자기 명의의 큰 집에 차도 여러 대 굴렸더랬다. 그 시절에는 자신도 벌만큼 벌고 나면 이런 한적한 곳에 들어와 으리으리한 전원주택을 짓고 살 꿈을 꾸었는데 정작 날림으로 지은 조립식 별채에 겨우 세를 얻을 정도의 형편이 가끔 슬펐다. ‘나락을 치면 다시 올라갈 일밖에 없다’ 곡예하듯 하향곡선과 상향곡선을 오르내리며 통과해 온 인생에서 경자씨가 굳건히 지켜온 믿음이지만 이제 환갑을 넘긴 그녀는 더 이상 삶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장평에서의 첫 일 년은 쉽지 않았다. 이사를 오고 친구 하나 없는 마을에 쉬이 마음을 붙일 수가 없던 경자씨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혹은 운전을 해서 기어코 서울에 갔다. 하다못해 덥수룩해진 머리손질을 핑계로 전에 살던 오피스텔 근처 미용실까지 왕복 몇 시간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빈번했던 서울로의 외출은 곧 멈추었다. 다녀오면 공허감과 외로움이 더해져 그녀에게 장평이 더욱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텃밭 가꾸기에 공을 들였다. 처음엔 입채소만 키우려던 것이 토마토에 고추, 열무, 배추까지 혼자 먹기엔 너무 많은 데도 꾸역꾸역 심고 가꾸었다. 자그마한 텃밭을 부지런히 가꾸는 경자씨를 보고 어떤 주민은 모종을 나누어 주기도 했고 손이 야무지다며 일손이 부족한 날엔 자기 밭에 하루품을 팔러 오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고 가며 말을 붙여오는 사람 중에 나이가 비슷한 선애와는 곧 친구가 되었다. 마침 경자씨의 집 창으로 선애네 밭이 쉬이 보여서 무더운 날이면 얼음커피 한 주전자를 만들어 내어주기도 하고 혼자 밥 먹기 싫은 날엔 선애와 그 댁 아저씨 몫의 국수까지 말아다 나누어 먹곤 했다. 장평 토박이인 선애와 가까워지면서 이리저리 인사 나눌 만큼 안면을 튼 마을 사람이 늘긴 했지만 경자씨가 선애에게만큼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장평에 봄이 오고 있었다. 경자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맞는 네 번째 봄이다. 집을 나와 마을 입구를 향해 30여분 걷다 보면 장평국민체육센터가 나온다. 센터라는 이름이 거창하게 들리지만 몇 안 되는 유산소운동과 근력운동 기구로 채워진 작은 헬스장과 탁구대가 놓인 2충짜리 주민운동시설이다. 3개월에 5만 원이라는 저렴한 이용료가 매력적일 뿐 아니라 겨울이면 찬바람이 들이차는 집 욕실보다는 따뜻하게 샤워를 할 수 있어 경자씨는 매년 겨울이면 3개월씩 회원권을 끊었다. 마침 오늘이 지난 12월에 결제한 이용권 사용기한의 마지막 날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와 길을 걷는데 백여 미터 떨어진 밭두렁에 남자 둘이 구부정하게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게 경자씨 눈에 들어왔다. 눈을 잔뜩 찡그려보아도 노안으로 초점이 맞지 않아 그들 손에 들려있는 것을 분간할 수 없었다. 곧 일어선 두 남자의 다리 사이로 녹슨 통덧이 보였고 그 속에서 남자 하나가 억지로 잡아 뺀 것이 어떤 작은 동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저기요,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요.”
분명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만큼 거리가 좁혀졌는데도 두 남자는 여전히 등만 보이고 선채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포장도로에서 밭두렁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닿을 만큼 가까워졌을 때 경자씨는 그들 손에 들린 것이 길고양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둘 중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가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또 다른 덩치 큰 남자가 목에 가는 철사를 감아 옭아매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요. 그러다 죽어요. 왜 그러시는데요? 네?”
큰소리로 외쳐보았지만 두 남자는 뒤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걷기 시작했다. 철사에 목이 감긴 고양이를 흙바닥에 질질 끌면서. 경자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서둘러 밭두렁으로 내려와 일단 두 사람을 쫓았다. 얼마가지 않아 나타난 비닐하우스 안으로 고양이를 끌던 남자가 들어가 버리고 함께 있던 다른 남자는 낡은 의자를 끌어다가 하우스 앞에 앉았다. 분명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경자씨가 보일 텐데 일부러 딴 곳을 보며 시선을 피했다. 경자씨는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 멀리 마을 할머니 몇 분 보였지만 모두 보행 보조기와 지팡이를 짚고 걷느라 근처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경자씨는 하우스 바로 앞까지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졌다.
유기동물 보호센터,
작년 이맘때 집주인이 창고에서 고양이를 발견하고 내쫓은 적이 있다. 그 후 며칠 동안 창고에서 우는소리가 들렸는데 알고 보니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안에 있었다. 쫓겨난 어미가 어쩌지 못하고 놓고 간 듯했는데 주인집 아저씨가 땅에 묻는다는 것을 겨우 말려서 경자씨가 맡았다. 종이상자에 수건을 깔고 며칠을 돌보면서 북어 곤 물을 먹이고 닭을 삶아 먹였더니 기운을 차렸다. 자기 집에서 고양이 키울 생각은 절대 말라는 주인집 때문에 결국 군에서 운영하는 유기동물 보호센터에 전화를 했다. 본래는 아픈 고양이만 구조하지만 다행히 아기고양이는 입양의 가능성이 있다며 직접 데려갔다. 이후에도 아기고양이 소식이 궁금해 몇 번 연락을 하면서 그곳 전화번호를 저장해 놨던 것이다. 일단 통화버튼을 눌렀다. 바로 옆에와 설 때까지도 모른 척하던 남자는 경자씨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헛기침을 해댔다. 경자는 하우스 안의 남자가 확실히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외쳤다.
“지금 나 신고하는 거예요. 아저씨들이 고양이 아프게 한다고. 그거 범죄예요. 그러니까 그 안에서 뭘 하든 일단 멈춰요.”
마침 그때 보호센터와 통화연결이 되었다. 경자씨는 자신이 전화를 건 곳이 파출소인척 연기를 했다. 여기 수곡리인데 아픈 고양이가 있으니 빨리 와달라고. 하필 점심시간이라고 했다. 한 시간 후쯤에나 사람을 보내줄 수 있다는 말이 망을 보던 남자에게 들릴까 싶어 서둘러 큰소리로 대답했다.
“네네, 알겠어요. 빨리 와주세요!”
전화를 끊고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그 모습을 보고 의자에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서더니 하우스 출입문을 발로 툭툭 찼다.
“아직 하지 마.”
경자씨는 사실 겁이 많이 났지만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문 앞의 남자는 더 이상 그녀를 막지 않았다. 고양이는 여전히 철사에 목이 감긴 채 몸이 축 처져 바닥에 누워있었다. 고양이를 끌고 갔던 남자는 그 옆에 비스듬히 서서 담배를 폈다.
“곧 죽을 것 같아요. 그냥 놔두면 되는데...”
카메라로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경자씨는 고양이가 가여워 화가 치밀었다. 남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일부러 덫을 놓은 것인지, 무엇 때문에 저 작은 짐승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인지 설명을 해보라며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우스 앞을 지키던 남자와 함께 동네 할머니 셋이 줄지어 들어왔다. 모두 마을을 오가며 마주쳤던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로 소란스럽냐며 짜증스러운 투로 말하던 할머니 하나가 바닥에 누운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그 옆에선 남자와 경자씨 얼굴을 번갈아 훑었다.
“고양이들 다 잡아 죽여야 해. 아무 쓸모도 없는 저것들이 봄만 되면 새끼를 낳아대는 통에 우리 동네도 고양이 천지야! 잘했네. 참말로 잘했어.”
그 말에 남자가 할머니 쪽으로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를 했고 나머지도 잘한 일이라면서 남자 편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안 되죠. 이건 동물학대예요. 제가 신고했어요.” 하는 경자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쏘아보며 언성을 높였다. ‘네가 뭔데 이깟일에 신고를 하냐’며 삿대질을 하고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별것 아닌 일에 분란을 일으킨다고 악을 쓰고 욕설을 해댔다. 순식간에 세 노인과 두 남자가 경자씨를 에워쌌다. 그들은 길고양이를 바라보던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이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경자씨는 차디찬 바닥에 가로누워 겨우 숨을 쉬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는 나도 너와 같구나.’
여태 견딜만했던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오더니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한꺼번에 밀려오는 공포감에 더 이상 그곳에 서있을 수 없었다. 곧 고양이를 데리러 사람들이 올 거라고 읊조리듯 말하고는 하우스를 빠져나왔다. 그녀는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었다. 몇 번이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심호흡을 했다. 겨우 떨림이 잦아들었을 때 경자씨는 손에 꼭 쥐고 있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도 않았는데 선애가 대답했다.
“응, 경자야.”
친구의 따듯한 목소리가 고맙고 반가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녀는 금방 자신이 겪은 일을 선애에게 쏟아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낀 좌절감과 두려움을 친구가 이해할 것을 확신하며 이야기를 마쳤을 때 선애가 뱉은 말은 기대와 달랐다.
“왜 괜한 짓을 했어?”
그 댁 할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몸을 전혀 못쓰게 되었는데 나비탕이 관절에 좋다고들 하니 고양이를 잡아다 고아먹일 생각이었던 거 같다고, 그런데 그걸 경자가 초를 친 것이라며 오히려 나무랐다. 경자씨는 선애가 하는 말이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여태껏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옳지 않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데 공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것이 분노인지, 절망감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경자는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제대로 걷기 힘들 만큼 온몸이 떨렸지만 그녀는 기어코 집을 향해 걸어갔다. 처음에는 자꾸만 스며 나오는 눈물이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옷소매로 닦아냈다. 울음소리가 흘러나올까 봐 어금니도 꽉 물었다. 그러다 탁. 모든 걸 놓아버렸다. 경자씨는 길 한가운데에 서서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공포감이었다.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릇된 일을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데 어느 누구도 손을 잡아주지 않는 순간에 덮쳐오는 감정. 오늘 경자씨가 소름 끼치게 겁이 났던 이유는 바로 그것일 테다.
*어머니가 직접 겪은 일을 듣고 글로 써보았습니다.
글 속의 지역명과 어머니의 성함은 사실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