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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만언니 Apr 09. 2023

[딴지일보]18년간 정신과 약 빨고 끊은 썰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보건복지부 홍보 담당자가 알면 고맙다고 내 손에 온누리 상품권이라도 한 장 쥐어줄 만큼 그간 나는 정신과 약의 효능에 대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열정적인 찬사를 보내왔다. 왜냐면 내 인생이의 질이 약을 먹기 전과 후로 완벽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덕분에 장장 18년이란 세월 동안 정신과 약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왜 약을 먹었는지는 당신도 알고 나도 알기에 그냥 넘어가겠다. 모르면 내 책을 사서 보고요.... <도서출판 푸른숲_저는 삼풍생존자 입니다>


그간 불안과 우울증세를 달래려고 매일 같이 약을 털어 넣었지만 여태 한 번 약을 끊겠다고 생각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약을 먹으면 편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알 안 되는 약만 한 봉입에 탁 털어 넣으면 밤새 돌아 누워도 바로 누워도 오지 않던 돼도 잠이 단숨에 왔고 아침까지 깨지 않고 단잠을 이어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약에 의지하지 않으려면 수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운동도 규칙적인 식사도 해야 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스트레스 관리다. 그런데 롸?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가능한가? 일단 오가며 뉴스만 봐도 혈압이 급 상승한다. 밤새 짜증이 솟구친다. 어째서 저딴 게 왜. 하는 (주어 없음)

하지만 나이 앞에 장사 없다고 오십을 코 앞에 두니 몸이 이래저래 안 좋아. 이 년 전부터 병원을 오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신과 약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약 끊고 오래 살아 저놈 새끼 저거 꼬꾸라지는 거. 봐야 안 되겠나. (여전히 주어 없음)  

사실 정신과 약을 끊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이 정도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약의 후유증도 후유증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약 먹고 편하게 자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내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다. (약도 이지경인데 마약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하지만 나란 놈은 담배든 오래 사귄 남자든 잘 다니던 회사던? 맘만 먹음 한큐에 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정신과 약도 끊어 보기로 했다. 그것도 그냥 딱 한 큐에.  

그렇게 나는 의사와 협의하지 않고 약을 끊는 미친 짓을 시작한다. (이쯤에서 경고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의료계 종사자가 계시면 얼른 글 읽기를 중단하고 나가시길 바란다. 안 그러면 뒤에 나올 내 무지막지한 단약 일지에 혈압이 치솟아 생명에 살짜쿵 지장을 줄 수 있다)


1. 나의 단약일지 (단약의 부작용 증세)

정신과 약은 본래 의사와 상의해 시간을 충분히 갖고 서서히 함량을 줄여 비행기가 땅에 연착륙할 때처럼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다 멈춰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냅다. 어느 날 갑자기 툭 약을 내다 버리고 물단식을 하며 단약을 시도했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머리 나쁘면 몸이 고생이라더니 내가 딱 그 짝이었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이냐면 이렇게 의사와 상의 없이 단약 하는 경우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얼레? 그냥 끊었다. 그러고는 그 후 일주일간 말도 못 할 금단증상을 겪었다. 그러고는 울면서 네발로 병원에 다시 기어들어가 선생님께 약을 다시 지어달라 간곡히 부탁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금단증세를 겪었을까? 그간 약물에 의해 억제되던 호르몬이 뇌 안에서 축제를 벌였다. (추측성 자가진단 주의) 당시 나는 약과 곡기를 동시에 끊은 3박 4일 동안 별의별 신비체험을 했는데 이때 나는 자주 헛것을 보고 헛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사전에 뇌 안의 화학작용에 문제가 있다는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짓은 안 했다. 그렇다. 내게 이런 뛰어난 메타인지 능력이 없었다면 나 역시 가까운 방송국에 뛰어들어가 내 귀에 도청장치를 외쳤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나 역시 이 무렵 뚜렷하고 분명한 헛소리를 들었다. 정말 환청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그런 소리 말이다.

약 없이 잠든 다음 날 오후. 밤새 뒤척이며 못 잤지만 몇 달 전부터 잡은 약속이 있어 몸을 추슬러 약속장소에 갔다. 그곳은 창 넓은 1층의 커피숍이었다. 우리는 각자 커피를 주문해 마셨는데 갑자기 내 귀에 저 멀리 계산대 앞에 있는 스텝 둘이 나를 보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무슨 얘기를 하나 싶어 귀를 열고 자세히 들으니 이들은 내가 어떤 개를 키우고 있는지 우리 개 이름이 뭔지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저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개 이름을 알지? 싶어 그들에게 가서 나를 아느냐 어떻게 우리 개 이름을 아느냐 물으려고 나서는 찰나. 뭔가 이상하다 생각을 했다.

그건 바로 우리가 도저히 서로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커피숍은 1층 전체를 쓰는 매장이라 픽업 테이블에서 이들이 홀을 향해 “고객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라고 소리쳐도 이쪽에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못 듣기 일쑤였다. 해서 그때 처음으로 어? 이거 이상한데 하는 자각을 했다. 그러더니 이어서 커피숍의 모든 소리의 볼륨이 줄더니 갑자기 내 귀에 신나는 3인조 재즈밴드의 연주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처음엔 나도 그냥 커피숍에서 실수로 순간 음악을 크게 튼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은 이 일에 태연하게 반응했다. 친구 역시 내게 아까부터 하던 말을 이어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그의 말을 통 알아차릴 수 없었다. 너무 놀라 머리를 세차게 흔드니까 다시 매장 안의 모든 소음이 귀에 와 박혔다.

안 되겠다 싶어 친구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일 집에 오는 길에 도로가 이상하다. 멀쩡한 서부간선도로가 자이로드롭처럼 급상승 강하를 연속으로 이어 하더니, 이번엔 도로 위가 전부 MMO RPG 게임의 한 장면처럼 환상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안 가서 차가 꽉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기어이 내 눈앞에 라라랜드가 펼쳐지는 게 아닌가. 이런 환상들 속에서도 계속 이건 환각이다 정신 잃지 말자 하며 머리에 힘을 주며 나는 그날 겨우 집으로 와 뻗었다.

생각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순간인가.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때의 강렬한 경험 덕분에 전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던 정신 질환 환자들의 증상을 믿을 수 있게 됐다. 왜냐면 그때 나도 내가 제정신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길다가 멈춰 서서 허공을 보며 헤벌죽 웃던 사람도, 누군가에게 쫓긴다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던 사람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 되더라. 그들도 나처럼 뇌의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겨 그런 증상을 겪은 거구나 하는 생각.


이튿날 밤부터 본격적인 부작용이  찾아왔다. 바로 오한과 발열이었다. 아마 다들 영화에서 한 번쯤은 마약 끊은 사람들이 이불을 몇 겹씩 덮고 추위에 덜덜 떠는 장면을 봤으리라. 세상에나 어느새 내가 그걸 하고 있더라. 정말 이때 느낀 오한은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온몸의 뼈가 시리다 못해 이까지 덜덜 떨렸으니까. 너무 추워 전기장판의 온도를 최고로 올려도 간에 기별조차 안 왔다. 살은 익어 붉게 색이 변하는데 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정말이지 살면서 여태 경험해 본 적 없는 추위였다. 그렇게 밤새 앓자 추위의 기세는 점차 옅어졌다. 시베리아 북서풍에서 선풍기 자연풍 정도로 서서히, 하지만 뼈에 바람이 든 것 같은 느낌은 그 후로도 계속 됐다. 이 밖에도 수많은 증상이 동반됐다. 두통과 비 자발성 근육경련이 있었다. 그러니까 몸 전체가 딸꾹질하는 것처럼 한 번씩 뒤틀렸는데  그때마다 온몸 여기저기 근육이 아프고 쑤셨다.

감정조절도 안 됐다. 이때 나는 진짜 시도 때도 없이 울다 웃었다. 노래를 듣다가 울고 설거지를 하다 말고 울고 자다 일어나 돌아 누우면서도 그냥 계속 엉엉 울었다. 누가 밤마다 석유 됫박을 가슴에 붓고 성냥을 그어 던지는 것 같았달까? 입맛은 또 왜 그렇게 없던지. 3일간의 물단식을 끝내고 밥을 먹는데 밥이 아니라 모래를 한 숟가락 퍼 먹는 거 같았다. 정말이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이도 시리고 잇몸도 부어있었다.

 또 이때  한 가지 정말 특이했던 현상은 오래전 집 나간 성욕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런 욕구가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는데 그때 갑자기 번식이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아 네발로 기어 다니는 주제가 어디 가서 뭘 어떻게 응? 솔직히 이런 욕망을 느끼기 전에 나는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기나긴 밤을 보냈다던 아낙들의 말들을 믿지 않았다. 이런 말을 들어도 속으로 훗. 다들 사디스트 아닐까 생각했을 뿐이다. 이런 쪽으로 많은 분들이 고달픔을 겪을 줄은 평생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 조금은 알겠더라. 나야 몸이 성치 않을 때 찾아온 성욕이었지만 멀쩡할 때 찾아오면 어디 가서 아무 봉이나 붙잡고 치티치티 뱅뱅하고 있겠구나 뭐 그런 짐작? 하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또 이 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뭐가 되게 먹고 싶어졌다. 더 글로리에서 약쟁이 사라가 약을 못하자 냉장고를 뒤져 미친 듯이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처럼 나 역시 냉장고 안에 있는 섭취 가능한 모든 음식을 먹고 마셨다. 전에 부활의 김태원이 그랬다. 마약 끊었을 때. 너무 단 게 먹고 싶어서 투게더 아이스크림 큰 통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셨다고. 나 역시 그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사러 나가는 게 귀찮아서 참았다.(대단한데?)

2. 정신과 약을 끊으려거든

나라가 이 지경인데!!!! 어찌 보면 쓸데없고 일천한 경험을 공유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코로나 시기 정신과 신세를 졌던 수많은 분들께 도움을 주고 싶어서다. 첫째는 혹여라도 나처럼 무식하게 갑자기 약을 끊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둘째는 약을 끊는 게 이토록 어려우니 약 처방받을 때 신중하셨으면 좋겠다 하는 말을 하고 싶다. 또 어쩔 수 없이 나처럼 반드시 약을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분들이 약 때문에 고민하고 계시다면 괜찮다. 나는 18년이나 먹어왔는데 소화기능도 간수치도 여전히 다 좋다. 그러니 약 먹어라 하고 싶다. 다만 나이가 있고 더는 약에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이제라고 끊어보려고 하는데 이게 참 힘들더라. 하는 말을 먼저 겪어 본 사람으로서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음 아픈 건 흉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라는 말은 가장 크게 말하고 싶다.   

다행히도 이번엔 의사와 상담해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약의 함량을 줄여 약을 끊었다. 약 안 먹고 잠든 지 한 달 좀 넘었는데 나쁘지 않다. 중간중간 깨긴 하지만 약 없이 잘 잔다. 여태 잘해 오고 있지만, 글쎄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또다시 정서적으로 타격을 입어 불면의 밤이 시작되겠지.


그땐 또 많이 고민하지 않고 정신과 문을 두드릴 생각이다. 안 그런가? 세상하고 맞서는 것도 힘든데 굳이 나 자신하고까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야 하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그냥 편하게 살고 싶더라. 그런 연유에서 일단 한동안 뉴스를 멀리할 생각이다. 나라 걱정도 나를 살린 후에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가능할까?)


이상이다.

다들 힘내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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