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를 키우게 된 이유.
"고양이로 하겠습니다."
"안 돼요."
"왜요?"
"제가 개를 키우라고 한 건, 개 때문에라도 환자분이 집 밖에 나가라고 한 건데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더더욱 집에 있겠다는 거잖아요?"
"개는 돈 많이 들어요. 돈 없습니다."
"유기견 키우세요."
“사료값은요? 저 백수라고요”
“당근마켓에 사정을 올려 보세요. 사람들이 사료 나눠 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계속 만들어 냈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실랑이하다 고개를 떨구니 선생님의 펜 끝엔 국어사전 보다 두꺼운 내 상담 차트가 보인다. 하긴 차라리 귀신을 속이지. 병원에 다닌 지 올해 햇수로 이십 년이다. 다행히 그간 꾸준한 치료로 증세가 많이 좋아졌다. 한참 안 좋을 땐 환각도 환청도 심지어 섬망증세도 있었다. 이제 어지간한 건 다 지나갔다. 요즘은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약을 먹는다. 항 불안제와 항우울제다. 그게 전부다.
삼풍백화점 사고를 겪은 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심하게 겪었다. 게다가 내가 겪은 PTSD는 Long Term PTSD였다. 사고 이후 10 년 뒤 갑자기 병이 발병해 증상의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 당시 매일 밤 손목과 손등의 정맥을 찾아 긋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죽지 못해 살았는데 십 년 전 그 일 때문에 그러는 줄 상상도 못 했다.
다행히 그때 이곳 선생님을 우연히 알게 돼 많이 좋아졌다. 이제 더는 죽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거나 하지 않으니 말이다. 덕분에 서른 넘어서는 엄마보다 선생님을 더 자주 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꼬박꼬박 봤으니. 그러는 사이 나는 알게 모르게 선생님께 많이 의지하며 살았다.
사람 사이에 힘든 일이 생겨도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겪어도 무조건 병원으로 달려가 선생님과 상담했다. 그러면 언제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니 내게 선생님은 이십 년간 의사 이상의 존재였다. 한데 그런 선생님이 얼마 전부터 내게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거나 개를 키우지 않을 거면 다음 진료에 오지 말라고 하는 거다.
안 그래도 선생님은 꾸준히 내게 말했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 살아야 한다. 또 나 같은 성격은 정신과에 오는 게 아니라고 해서 선생님은 여태 내게 수 없이 많은 걸 시켰다. 독서나 뜨개질처럼 혼자 하는 일 말고 남고 함께 어울려 하는 운동을 해라. 예컨대 자전거를 사서 동호회를 들던가 테니스를 쳐라.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집에만 있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이번엔 개를 키우라고 했다.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든 개를 키우든 둘 중 하나를 하지 않을 거면 다시는 병원에 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선생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이 아니었다. 순간 앞이 깜깜했다. 정말이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낭떠러지에 선 기분이었다. 난 정말 사람도 싫고 개도 싫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 성격을 미루어 보아 선생님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째 선생님 말씀에 따르는 수밖에.
병원에서 돌아온 후로 몇 날 며칠 잠까지 설치며 고민하다 결국 개를 선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보다는 개가 나았다. 다음 진료까지 약 2주의 시간이 있다. 그 안에 개를 입양해야 했다. 시간이 없다. 일단 “포인 핸드”라는 휴대폰 앱에 접속해 시도 보호소에 등록된 유기견들의 면면을 살폈다. 생각보다 많았다. 한데 사진만 보고 개를 고른다는 게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내가 지금 고르는 게 십 년 넘게 같이 살 개가 아니라 편의점 김밥이라면 그냥 고르겠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
당장 개의 실물을 보고 싶다. 그런데 하필 이 무렵이 코로나가 극성이었다. 보호소도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과연 이주 안에 개를 데려 올 수 있을까.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가까운 펫샵에 가 개하나 사 올까? 한데 말이다. 차 키까지 집어 들었는데 도저히 발이 안 떨어졌다. 모르면 할 수 있어도 알면 못 하는 게 사람이라더니, 전에 한 친구한테 펫숍으로 유통되는 개들 문제와 지옥 같은 번식장 얘기를 들은 후라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앞서가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천천히 포인 핸드의 임보/입양 코너에 이름을 올리는 개들을 살폈다. 그런데 어? 음? 어? 나는 이 친구에게 마음을 단박에 뺏겼다. 이 친구는 개인이 구조해서 현재 동물병원 간호사가 임보를 하고 있는 친구였다.
구조 사연을 보자 하니 이 친구는 서울 변두리 산 밑에 누가 버리고 간 개 중 하나였다. 영하 20도가 넘는 한겨울에 얼어 죽으라고 형제들과 물도 밥도 없는 구덩이에 버려졌으나 때마침 개 산책을 나온 분을 만나 기적적으로 구조된 아이였다(참고로 일곱 형제들이 전부 '복'자 돌림이다. 복만이, 복희, 복주 등등). 그러나 그간 입양문의가 없어 임시보호 하는 분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던 친구다.
개한테 확신이 생긴 나는 임보자(강아지를 임시로 보호해 주는 개인을 일컫는 말) 분께 입양 신청서를 넣고 면접을 본 후 위 사진에서 제일 왼쪽에 있는 복주라는 친구를 데려오기로 했다.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나는 일단 인터넷 서점에서 '반려견' 키워드로 검색된 애견 관련 서적 십여 종을 바로 주문했다. 강아지 응급 119부터 애견 간식 수제 레시피까지 종류별로 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책 보다 경험이었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었다.
그 무렵 나는 생애 첫 책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출간을 앞두고 있어 꽤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지만 강아지를 맞이할 준비도 대충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최종 원고 점검하며 틈틈이 공부해서 강아지가 5개월 차에 접어든 시점에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개가 온 후 한 달간 나는 책에서 본 대로 별다른 용건 없으면 개를 만지지도 않고 다정하게 부르지도 않았다. 개도 그런 내게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반려가 아닌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때 일을 몹시 후회한다. 어느 날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 가뜩이나 불안한 강아지를 따뜻하게 대해 줘도 모자랄 판에 분리불안 교육한답시고 한 달이나 차갑게 대했던 일들 말이다. 상식적으로도 그렇지 부모형제와 떨어지고 정든 임보 가족과 떨어져 나와 갑자기 살게 된 어린 개 마음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책이 시키는 대로 분리불안 교육한답시고 5개월도 안 된 개한테 한 달간 곁을 안 줬으니.
당시 복주는 내가 음식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안절부절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사이에 뭐가 잘못된 건지 전혀 몰랐다. 책에서 유튜브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하는 건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일이 있어 아주 잠시 집을 비웠다. 볼일을 보면서도 미리 설치해 둔 CCTV로 계속 집안을 살폈는데 현관에서 울고 하울링 하며 불안해하던 복주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캔넬에 들어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집에 왔는데, 이게 웬걸 복주는 베란다 모기장을 뜯고 집 밖으로 뛰어내렸다. 다행히 당시 우리 집이 언덕에 위치한 천장 낮은 다가구 주택 이층이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개 잡을 뻔했다. 서둘러 병원에 가 진찰을 받으니 아직 어려서 그런지 턱밑 약간까지고 다른 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생각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내가 복주라도 이 상황이 기절할 만큼 무서울 것 같았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좀처럼 적응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나마 함께 사는 털 없는 동물마저 차갑게 굴고 믿고 의지할만하면 눈앞에서 자꾸만 사라지고 이 모든 일이 들판에서 나고 자란 개한테 얼마나 낯설고 두려웠겠냐는 말이다. 아무리 선생님이 시켜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이 일로 나는 크게 각성했다. 또 책이든 미디어든 다른 이들의 조언과 충고를 덮어 놓고 따르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지식은 경험을 앞설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달라졌다. 이제 온몸으로 개를 키운다.
그 후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복주와 복주 밑으로 들인 해탈이라는 친구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함께 사는 털친구들 덕분에 규칙적으로 생활해 몸도 마음도 전보다 건강해졌다. 자연히 병증도 많이 좋아졌다. 개를 키우던 초반엔 이렇게 힘든 일을 시킨 선생님이 그렇게나 밉더니 이젠 선생님께 자리 깔고 절이라도 올리고 싶을 만큼 고맙다. 역시 전문가의 처방은 말씀이요 진리다. 환자는 그저 선생님의 말을 새겨들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