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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상처뿐인 승리

by 산만언니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처럼 매년 가치평가당하게 된다. 연말에 하는 '인사고과'라는 것이 그러하고, 사내에서 책정되는 나라는 사람의 몸값이 그러하다. 또 그렇게 정해진 조직 내 나의 가치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고, 대략 3년 내리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여느 상장 주식과 마찬가지로 가차 없이 상장 폐지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스스로 시장에서 사라진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간 이곳에서 만난 수없이 많은 사람들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어려서는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퇴사하는 줄 알았는데, 철들고 보니 몇몇 특수한 경우를 빼고는 도저히 어쩌지 못해 하는 얼굴로 이곳을 떠나갔다.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대기업이라는 생태계는 확실히 안정적인 울타리가 맞다. 때로는 그깟 명함 한 장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들 저러나 싶다가도 당장 은행의 대출 문턱부터 낮아지는 걸 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가곤 하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이 안에서 오래 버티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당연한 논리다. 회사 안의 직급체계는 피라미드 형태고,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줄기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매년 조직에서 사라진다. 각자의 사정이야 어쨌거나,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드물게 예외는 있다. 시장에서 잊힌 지 오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굳세게 버티는 사람들 말이다.


내가 다닌 회사에는 이런 사람이 좀 많다. 처음에 나는 이들의 서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을 보며 속으로 '어떻게 저런 취급을 받으면서 직장생활을 하지?' 했다. 걔 중엔 누구보다 회사에 많은 기여를 했던 사람,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지킨 사람, 지표론 측정할 수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뭣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걸 보면 옆에서 보는 사람조차 기분이 더럽고 인간성이 사라질 것 같아 어떻게 참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좀 더 살고 보니, 이들에게는 회사에서 구겨지는 자존심보다 중요한 게 있기에 이곳에서 버티는 거였다. 그렇다. 가족이다. 당장 내 월급에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으니 자존심 같은 건 어째도 좋은 사람들인 거였다. 물론,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나는 입사 이래 여태 잘 지내오다 막판에 삐끗했다. 그놈의 신사업인지 뭔지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고, 그즈음 3년 내리 성과를 제대로 못 내다, 급기야 퇴사 일 년 전엔 사고까지 제대로 쳐 조직 내에서 나라는 사람의 상장폐지까지 거론됐다. 한데 놀랍게도 내가 한참 일할 때 모습을 기억해 준 사람들이, 그야말로 서로서로 '인 보증'을 서 줘서, 아슬아슬하게 퇴사를 면하고 다시 자리에 와 앉을 수 있었다. 물론 하한가는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해야겠다. 지난해 나는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하고 업무용 차를 몰고 오다 추돌 사고를 냈는데, 그 일에 대해 사내에는 음주에 의한 사고라는 소문이 금세 파다하게 퍼졌다. 그때 나는 정말 음주사고를 낸 게 아니었다. (약이든 술이든, 그거나 그거 나인데, 당시에는 이게 꽤 민감한 사안이었다)


처방받은 정신과 약 중 졸피뎀이라는 약이 있었는데, 이 약을 단기간에 과다 복용해 사고를 낸 거였다. 지난해 사고를 내기 전까지 그 약에 이렇게 무서운 부작용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지금은 다른 약을 처방받아먹는다)


이 일을 계기로 블라인드에 누군가 나를 거론했고, 조회수는 게시판이 생긴 이래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그 글을 보고 충격에 빠진 나는 한동안 급성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으며 여태 증상이 완치되지 않아, 요즘도 가급적이면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에 가지 않는다.


그 일은 순식간에 나를 마녀로 몰고 갔다. 소문은 소문을 낳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문들은 어느 순간 사실이 돼 버렸다. 내가 아무리 의사의 처방내역과 내 병의 진단서까지 챙겨가 보여줘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소문 앞에서 증거는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오죽하면 당시 나를 오래 봐온 팀장님이 내게 이런 말까지 했을까, "너 아픈 거 사람들 모르지? 제발 주변 사람들한테 아프다고 말 좀 하고 다녀라, 아무도 네 사정을 모른다. 나도 미칠 것 같다. 그러니까 제발 말 좀 하고 다녀라 "


그 얘기를 듣고 충격받은 나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남 보는데 앉아 울었다. 그러자 같은 층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울고 있는 나를 구경하러 오기 시작했다. 마침, 책상 부근에 문서 세단기가 있었는데 내가 울고 있다는 소문이 사내에 메신저로 생중계됐는지, 어디선가 모두 종이 한 장씩을 들고 나타나 문서 세단기에 종이를 갈아 넣으며 곁눈질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구경했다. 당시 그 상황을 보다 못한 옆자리 후배는 내게 이렇게 메신저를 보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내일 문서세단기 방향 바꿔 놓겠습니다." 그 글을 보니 참고 있던 울음이 폭포처럼 쏟아졌고, 기어이 이 친구의 부축을 받고 함께 문서를 보관하는 창고에 들어가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그 후로 나는 한 달간 사측의 강도 높은 조사에 응했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료를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제출했다. 외려 답답하고 억울해진 내가 근태 관련 억측에 대한 소명을 위해 통신사까지 찾아가 그간 내가 통화한 기지국 내역까지 출력해 사측에 제출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었다. 아무튼 이 일은 결국 내가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자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본래 어려서부터 나는 감정을 잘 조절하는 아이였다. 그러니 나보다 두 배 덩치 큰 오빠한테 얻어터지면서도 이 사실을 알면 부모님이 속상하실까 봐 말하지 않았겠지, 95년에 삼풍 사고를 겪었을 때도 그랬다. 혼자 있을 땐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늘 태연한 척 괜찮은 척했다. 모르겠다. 엄마의 기억 속에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잘 울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온몸에 열꽃이 피어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도 생글생글 잘만 웃었다는 얘기를 꽤 여러 번에 걸쳐 들었으니 말이다. 한데 이땐 달랐다. 감정조절을 못해 어디서나 툭하면 울었다.


그 후로 나는 이 일을 통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이 정리되고 보니,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내 얘기를 제일 나쁘게 하고 다닌 거였다. 알고 보니 그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욕을 한 게 아니라, 내가 여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러니까 내가 친하다고 생각해 허물없이 곁을 내준 사람들이 바로 내 얘기를 그렇게 하고 다닌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다른 무엇보다 그 사실이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처였다.


솔직히 말해, 일이 마무리된 후, 처음에 나는 이들이 사과해 오길 기다렸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도 내가 아픈 줄 몰랐으니 그럴 수도 있지, 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누가 알았을까, 말을 전한 자기들도 놀랐겠지, 그러니 이제는 사과하겠지 했다. 한데 그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 사과는커녕 오히려 나를 이 회사에서 완전히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파란이 지나가고 소문이 가라앉자, 당시 멋모르고 함께 우르르 몰려와 내게 돌을 던졌던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고, 그들 중 몇몇은 숫제 내게 양심선언 비슷한 걸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투항에 그다지 관심 없었다.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벌인 일은 스스로 정리하자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 평가도 내가 조정하자 마음을 먹었다. 해서 이를 악물고 딱 일 년 동안 미친 듯이 일 한 거다. 그사이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청소 노동자분들과 함께 출근했고, 날이면 날마다 주 52시간을 넘겨 일한다고 인사팀에서 경고 메일을 받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이때 머릿속으로 나는 딱 한 가지만 생각했다. 다시 한번 일로서 보여주자. 해서 전에는 한 번 보고 말 일을 그 후로는 두세 번씩 보며 했고, 퇴근하면서도 일 생각을 하고 자면서도 일 생각을 하다 눈을 뜨면 출근해 1초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적으로 내가 해 온 일들에 대한 평가가 재 조정되던 날이 있었다. 좀 정확히 말해 내가 한 일에 대해 조직에서 포상까지 받게 된 날 말이다. 잠깐이었지만 승리감에 젖은 나는 실로 오랜만에 긴장을 풀고 집에 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따고 따뜻한 물을 받은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한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마땅히 기뻐야 하는데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싸움에서 이긴다 한들, 내가 다시 조직에서 인정받는다 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바위에 던져지는 계란일 뿐인데,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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