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씨앗은 작지만

여기

by 하얀돌

소극 보다는 적극, 후퇴 보다는 전진, 은폐 보다는 공개, 무시 보다는 발견, 비난 보다는 칭찬, 소심 보다는 대담, 타의 보다는 자의, 저기 보다는 여기, 그들 보다는 우리.


자국의 역사를 무조건 미화할 필요도 없지만 반대로 무조건 의기소침할 이유도 없다. 씨앗은 작지만 그것은 키 작은 나무로도 거친 나무로도 곧은 나무로도 가지 많은 나무로도 거대한 나무로도 수 천 년을 사는 나무로도 자라난다.


한반도 북부 와 만주 지역은 콩의 원산지이다. 두만강은 콩이 가득실려 내려가는 강이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콩은 쌀과 밀과 옥수수와 함께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곡물이다. 콩은 단위당 칼로리를 소고기 이상으로 가지고 있다. 콩에서부터 장과 두부와 콩나물이 나온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의 병사들이 엄청난 콩을 창고에 쌓아두고도 콩나물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 괴혈병으로 큰 피해를 겪었다는 일화도 있다. 성호사설에 따르면 조선시대까지만해도 백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콩이 쌀을 능가한다고 했다. 모든 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소는 지속적이며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한 식량의 존재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소로리에서 15000년전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쌀이 나는 곳에서는 빵을 즐기지 않는다는 중국인들의 말과 함께, 전 세계 인류의 60% 이상이 의지하고 있는 곡물의 최초 출발지가 어딘가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문명의 출발점이며 문명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일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당연히 쌀의 원산지가 중국 남부 어디일 것이라는 가설이 넘쳐났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쌀의 생육 조건만을 따져보면 중국 남부, 필리핀, 대만, 일본, 인도네시아들 고온다습한 환경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후보지가 될 수 있다. 또한 1만 5천 년 전의 기후환경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을 것을 생각해보면 해당 지역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옥수수가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지만, 조그만 씨앗이 맺히는 원시의 옥수수를 지금의 우람한 옥수수로 개량해 낸 집단은, 옥수수가 적절하게 자라날 수 있는 세계의 수 많은 지역들 중에서도 유독 특정한 지역과만 밀접하게 연관된다.


개의 출발지는 여러 곳이 지목되고 있으나 동아시아가 그 한 곳이라는 연구가 있다. 개는 야생 동물의 가축화에 대한 첫 경험이다. 개를 길들인 경험은 소를 길들이고 말을 길들이고 양을 길들이고 돼지를 길들이고 염소를 길들이고 낙타를 길들이고 닭을 길들이고 오리를 길들이고 거위를 길들이는 길을 열었다. 곡물 섭취만으로는 부족한 영양분들이 가축을 통해 정기적으로 보충될 수 있게 되었다. 소와 말과 염소의 가축화는 동시에 젖과 치즈와 버터와 각종 유제품의 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조개 貝. 조개로 이뤄진 것들. 財. 資. 賣. 買. 實. 負. 債. 寶. 貯. 貴. 費. 賞. 貨. 賃. 貸. 貧. 積. 價. 賦. 貿. 賈. 賻. 賠. 貰. 賭. 贓. 한국인의 해산물 소비량은 일본과 같은 섬나라들을 제치고 세계 1위이다. 한반도에 부속된 섬들은 3000개가 휠씬 넘는 숫자로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그리스 등에 이어 손에 꼽히게 섬이 많은 나라이며 해양의 문화에 익숙해 있는 나라이다. 고래사냥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 울산의 바위에 새겨져 있다. 조개와 물고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에너지원이었고, 신석기 문명의 중요한 토대였으며, 경제적 매개물인 화폐의 기원이었으며, 인류의 기억속에서 청동기와 철기를 지나 오래도록 세대를 이어온, 세계의 모든 문명과 종교에서 거부되지않는 존재이다. 문틀이나 가구 위에 하얀 실에 싸여 신과 조상과 어떤 존재들을 위해 놓여지던 말린 북어들.


한반도에서 불교가 성행하는 시절에는 육식이 권장되지 못했을 것이지만, 그런 이유로 일본에서는 오랜 기간 어류를 제외한 육식이 금지되고 메이지 시절에는 육식해금령에 반대하는 자객들이 천황암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몽골과의 교류가 활발해진 이후에는 이 땅에서 최고 수준의 육식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세계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는 제국의 황실 주방문화가 교류되게 된 것이다. 왕의 어머니가 먹던 음식은 아들도 먹게 될 것이다. 왕이 맛있게 먹는 음식은 아부가 넘실대는 귀족 사회들 속에서도 유행하게 될 것이다. 유행은 사회를 돌아다닐 것이다.


에스키모에게는 눈의 종류를 나누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단어가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소고기의 부위를 세계에서 가장 세밀하게 나눠서 먹는다. 마가렛 미드라는 인류학자는 한국인이 소의 120개 부위를 식용하며, 이는 35개 부위를 이용하는 프랑스의 4배에 이른다고 했다. 국어사전에는 소의 부위에 대한 단어가 136개나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가장 많은 해산물과 가장 다양한 육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문 #역사 #철학 #우리삶 #콩 #소로리볍 #개 #조개 #에스키모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3화매미소리_9_신통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