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이 녹아 물
신통력.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남의 마음을 아는 능력. 전생을 아는 능력. 번뇌를 모두 끊는 능력. 물 위를 걷고, 하늘을 날고, 축지법을 쓰고,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하고, 장님을 눈뜨게 하는 놀라운 능력.
고려적 스님 말씀이다. 밥 지어 먹고 옷 빨아 입는 것이 신통이다. 별스러운 것에서 신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곧 신통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동물이 짝을 짓는 것, 나무가 꽃 피우는 것, 열매가 떨어지는 것, 열매에서 싹이 틔는 것, 싹을 베어 먹는 것이 신통이다. 어떤 것이 생기는 것, 어떤 것이 변하는 것, 어떤 것이 어떤 것과 나눠지는 것, 어떤 것이 어떤 것과 합쳐지는 것,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 어떤 것이 있다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것이 다 신통이다.
현재 숨을 쉬는 것이 신통이고, 미래를 아는 만큼 과거를 아는 것이 신통이고, 어떤 목소리를 듣는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신통이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만큼 감기가 낫는 것이 신통이고, 생선을 잡는 만큼 떡을 찌는 것이 신통이고, 백 리를 가는 만큼 잠을 자는 것이 신통이고, 아프지 않는 만큼 아픈 것이 신통이고, 죽지 않는 것 만큼 죽는 것이 신통이고, 죽으면 썩는 것이 혹은 썩지 않는 것이 신통이다.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배를 타고 물을 건너고, 전화기로 먼 소식을 듣고, 텔레비젼으로 먼 곳을 보고, 사진으로 옛 모습을 남기는 모든 신통한 것들 역시 신통이다.
신통하게도 인간은 태어나서 누웠다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뛰고, 말을 길들이고, 마차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자전거를 만들고, 자동차를 만들고, 기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을 만든다. 신통하게도 인간은 조각상을 만들고, 나무에 새끼줄을 걸고, 부적을 만들고, 굿을 하고, 기도를 하고, 경전을 만들고, 회당을 만들고, 찬송을 한다.
신통하게도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개는 개대로, 까마귀는 까마귀대로, 모기는 모기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살아간다. 신통하게도 고추는 맵고, 딸기는 빨갛고, 대나무는 곧고, 여름은 덥고, 바닷물은 짜고, 공은 둥글고, 묵은지는 군동내가 난다. 신통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은 또한 그렇지가 않다.
신통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며 생기는 여러 이익과 같다고 했다. 그런만큼 신통은 얼음이 녹아 물이 되며 생기는 여러 불이익과도 같다.
#인문 #역사 #철학 #우리삶 #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