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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Jun 17. 2024

김밥은 옆구리가 터진다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말짱황이었다.

그들은 장남, 장녀, 막내라는 타이틀을 하나씩 가져갔다.

형은 초란으로 난초처럼 곱게 자랐지만, 나는 무밭에 무처럼 절로 자랐다.

같은 노란색이지만 누구는 노른자이고, 누구는 다꽝이었다.

돌사진은커녕 독사진도 한 장 없는 어린 시절, 착한 일을 해도 나라는 존재는 엄마에게 인정받기가 어려웠다.

차라리 말을 안 듣는 새처럼 행동하면 나를 찾지 않을까 싶어 자주 가출했다.

엄마가 찾기는커녕 매타작을 당했지만, 정을 떼기 위한 예행연습이라고 좋게 생각했다.

     

내 결혼식을 마친 후, 어머니는 “이젠 너의 보금자리를 만들고, 훌훌 날아가”라고 말했다.

새로운 둥지로 날아가면서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날개를 잃은 어미 새가 눈에 자꾸 밟혔다.

아픈 어미 새를 위해 작은 먹이를 물어줘도 그 새는 자기가 먹지 않고 첫 알에서 태어난 무녀리에게 나눠주었다.

어미는 살덩이를 떼주니 깃털만 남아 한없이 가벼웠다.

그런 어미의 사랑과 무게를 가져간 첫째가 미웠다.

     

그녀는 세상과 작별하기 전, 내게 형제를 보듬는 김이 되라고 당부했다.

김은 단무지(다꽝!)와 계란 지단을 감싸 안는다.

김밥을 말다 보면 언제 옆구리가 터질까.

얇은 김처럼 내면이 단단하지 못할 때.

속 재료가 많이 들어가듯 서로의 욕심이 앞설 때.

골고루 펴지지 않는 밥처럼 편애와 차별을 받을 때이다.

     

김밥이 옆구리가 터지는 데 김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옆구리가 튼튼한 인생이 되려면 형제와 금전을 분리하자.

아무리 어려워도 돈거래는 하지 마라.

단무지와 달걀은 저마다 사정이 다르다.

볏단을 서로 날라준 의좋은 형제처럼 ‘돈을 안 갚아도 형이나 동생은 이해하겠지’라고 짐작하지만 각자 살림살이가 있다.

개그맨 박수홍 씨의 재판이 자기 일처럼 느껴지는 건 우애와 금전이 얽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핏줄이 당겨서 차마 내치지 못할 때도 있다.

구멍 난 김밥은 김으로 덧붙이듯 당신이 경제적 여유가 되면 형제들을 도와주자.

그들이 어렵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돌려받기가 불가능한 통장을 개설했다고 여기고 그냥 주라.     


김밥에는 그 무게를 감당하는 꽁다리가 있다.

김밥 꽁다리처럼 소중한 식구를 지켜주려고 이를 악물고 참는 이가 있다.

금방이라도 창자가 터질 듯 위태롭지만,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데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다.

가족이 아프면 이리 재고 저리 잴 여유가 없다.

‘내가 조금 더 힘들고 말지’라면서 희생하는 이에게 신은 기적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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