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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단근 Jun 20. 2024

벼랑 끝에선 아이스 아메리카노

눈이 빌딩 사이를 유령처럼 왔다가 갔다.

식사 후 길을 걸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음미했다.

눈 오는 날, 길거리에서 찬 음료를 마시니 횡격막까지 어는 듯하다.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이탈리아인은 아메리카노를 구정물이라고 꼬집지만,

그것마저 없다면 힘든 직장 생활을 어떻게 버텨나갈까!

그래서 노동 음료로 수혈하는 나만의 거룩한 의식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잘나가던 시절엔 달콤한 라떼가 좋았지만, 인생의 쓴맛을 겪고 난 다음부터 쓴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랬다.

갈수록 힘들고 열 받았던 경험치가 쌓이니 어느새 나는 그 음료가 없으면 버티지 못하겠다는 집착에 사로잡혔다. 

    

오늘날 정보와 콘텐츠는 과포화 상태이다.

어제 것도 소화를 못 시켰는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니, 머리가 꽉 찬 느낌이다.

한계치에 다다른 뇌는 판단의 기준을 세워야 제때 처리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꼰대들은 과거를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하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꿀 빨던 곤충처럼 옛날이 그립다.

마치 드라마 정주행이 아닌 역주행에 매달리는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왜 꼰대질을 멈추지 못할까?

하나는 지나간 날과 유연하게 결별하지 못하고 자기가 했던 방식이 옳다는 관념에 사로잡혀서.

과거 경험상 자기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 결과, 한두 번의 성공을 맛봤기에 그런 보통 생각 속에 갇혔다. 

젊은 세대가 아이팟을 끼고 업무를 하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꼰대는 ‘한 가지에만 몰두해야지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면 정신이 사납다’라는 낡은 사고를 버리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방의 다중 작업 방식을 시시콜콜 간섭하려고 들었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서.

인터넷과 인공지능 등 과거에 없던 문명은 내 밑천을 타인에게 노출한다. 

자기의 능력과 실수가 남에게 공유되는 세상이므로, 무능을 감춰야 하는 두려움에 방어적 행동을 한다.

그래서 나이와 계급, 텃세와 자존심을 무기로 다른 이들을 깎아내려 자신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 회차를 짐작할 수 있는 드라마와 다르게 인생은 어디로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당신이 원하지도 않았고, 누가 밀었는지 모르지만, 이미 낭떠러지에 서 있다.

어제와 같은 삶에 만족하든지 다른 삶으로 변하든지 결정이 필요하다.

벼랑 끝이라 싸늘해도 미리 걱정하지 말자.

몸이 익숙할 때까지 배우면 날고 싶은 의욕이 샘솟는다.

무당벌레는 나뭇가지 끝에서 비행을 시작한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려면 비상한 각오로 부딪쳐야 높게 비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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