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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나리던 날

Carpe diem

by 제이

특별한 일정이 없는 주말.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 세명은 동네 도서관을 마다하고 굳이
집에서 차로 20~30분 떨어진 S 도서관에 간다.
그곳엔 아들이 좋아하는 CD가 한 벽면에 가득한 영상 관람실이 있다.
얼마 전까지 도서관마다 영상 관람실이 있었는데 거진 다
없어졌다.
급변하는 미디어기기 폭발.
돈을 조금 내면 별별 영화를 집에서 편안히 본다.
구태여 도서관 영상실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OTT 없이 티브이만 보기에 아들의 문화생활 차 그 도서관에 자주 간다.

더욱이
도서관 근처에 오래된 백반집이 있다.
그 동네에서 자취하다 그곳을 떠난 젊은이들이 그 동네 들릴 일이 있으면 추억의 그 집밥을 먹으러 온단다.
자주 와보니 친해져 식당 안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혼기의 그녀 딸 이야기, 그 딸과 간 해외여행 이야기, 늙으신 노모님 이야기...
제육볶음, 아기 조기, 넉넉한 나물에 된장찌개.
집밥같이 잘 먹고 부른 배에 커피 한 잔으로 끝맺음하고 도서관에 간다.

아들은 영화 보고 남편은 컴퓨터 작업하고 나는 글을 읽거나 쓴다.
너덧 권 대출한 책으로 묵직한 가방을 가지고 귀가.
이런 행복한 '주말 리츄얼'이 거진 이 년간 이어졌다.

봄비가 내리는 주말이었다.
그날도 평소대로 점심경 그곳으로 떠났다.
그런데
식당 주차장이 텅 비어있다.
식당 안 전등이 꺼져있다.
전화를 해보아야겠다.
"요즘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요.
평일에만 열어요."
우리 세 식구는 주말에만 올 수 있는데.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의 현수막.
'도서관 장기 휴관'
이게 무슨 말인가?
내처 언덕 위의 도서관으로 확인차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은 다른 공공시설로 바뀐단다.
접때 왔을 때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마지막 날이었구나.
아들은 그 많은 영화를 골라보느라 행복했다.
나는 이층의 그 수많은 책들의 숲에서 헤매는 즐거움.
특히 삼층의 넓은 관람실에서 창밖의 우거진 나무들과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가지 뷰를 만끽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끝.

점심은 먹어야 했기에 다른 식당을 찾아 갔다.
인근 호반 댐 근처의 한 한정식집.
봄비에 은근히 추웠는데
실내에 난로가 피워져있었다.
그리고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보슬비 내리는 창밖에는 댐의 교각 아래로 봄의 물살이 흐르고 있었다.
한정식 식당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첼로의 선율이 봄비, 흐르는 강물, 그리고 따뜻한 난로 불과 궁합이 맞았다






창밖에는 봄비가 나리고
강물이 흐르는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난로 곁에서 두 손을 펴고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뜻하지 않은 불멍의 호사.

애정하던 도서관도 사라지고
그 식당도 예전같이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만 누린 수 있는 또 다른
횡재를 주셨네.
가슴 한편은 섭섭하지만.

모든 것은 흘러가고 사라진다.
지금 여기를 잡고 누릴 것.
확실한 것은 오직 지금.
Carpe diem
Seize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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