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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률사무소 무진 May 29. 2022

형사 변호사를 만나서 : 무엇을 말하고 들어야 하는가?


형사사건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은 마음이 급합니다. 조사든 재판이든 정해진 일정이 촉박한 경우도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전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해는 가지만 스스로에게 도움 될 것이 없습니다. 무슨 대책이든 그 출발은 제대로 된 상황파악입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현재 나는 어떤 상황인지부터 알아야 뭐든 시작할 텐데, 마음이 급하면 순서없이 하고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해달라고 합니다.


형사 사건의 핵심은, 1) 가능한 한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 2) 문제된 피의사실이 제3자의 입장에서 진실인지 여부를 파악하여, 3) 자백과 부인을 결정하고, 4) 일관되게 진술하는 것입니다.


형사 사건으로 변호사를 찾아갈 때,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정리해 봅니다.



1. 질문 말고, 기억하는 사실부터 모두 있는 그대로


사건의 사실관계를 본인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축약해서 설명한 후에, "이게 유죄가 되나요?"라고 질문부터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스스로 '중요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법률가의 시각에서 볼 때 중요한 것들이 따로 있습니다. 형사 사건에서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사실은 수학공식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숫자와 기호를 알려주는 것이 먼저이고, 왜 그런 숫자와 기호가 나오게 된 것인지는 나중입니다.


의뢰인께서 희망적인 답을 듣고 싶어서 유리한 부분만 말하거나, 반대로 변호사의 능력을 떠보고 싶어서 불리한 부분만 말한 다음에 위 질문을 던지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이건 그런 방식으로 '얻어내는' 답들은 불완전한 것입니다.


솔직하지 않다는 것은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이고, 숨기는 것이 있다는 것은 변호사도 그 의뢰인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되고,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는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힐 수가 없습니다. 내방하신 상담자의 의도를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상황이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순서대로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꺼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변호사가 알아서 맥락을 잡고 중요한 자료들을 선별해 냅니다. 공백이 있으면 물어보고, 옆길로 새면 다시 붙잡아 옵니다. 그래서 법률 전문가인 것입니다.


상담을 효율적으로 받으려면, 미리 종이에 시간 순서대로 기억하는 사실을 적어가면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와, 무엇 때문에 만나 어떤 말을 했는지 적어나가는 것입니다. 적으면서 스스로 정리도 되고, 변호사도 사실관계 파악을 빨리 할 수 있으니까요.



2. 객관화


본인이 기억하는 사실이 정리가 되었다면, 이제 외부에서 자신을 관찰해 보아야 합니다. 외부라 함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피해자의 입장, 그리고 경찰 혹은 검사·판사의 입장입니다.


특히 이 작업은 혼자 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변호사가 제 역할을 잘해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 서 봐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죄를 반성하라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느껴보라는 취지가 아닙니다. 고소장이 접수되어 내가 피고소인이 된 순간부터, 이유를 불문하고 세상 사람들은 피해자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시각에서 봐야, 내 기억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세상의 시각과 내 마음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검사나 판사의 시각을 별도로 생각해 보는 이유는, 그들이 당신에게 내리는 처분이나 판결이, 하나의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 또한 공무원으로서 당신의 사건을 정형적으로 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해 보인다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과는 결이 또 다릅니다. 검사나 판사에게는 의뢰인이 당면한 이 사건이 매달 반복되는 여러 동종 사건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정해진 절차와 실무상의 기준, 벗어날 수 없는 경험칙 상의 한계가 있습니다.



3. 자료와 증거


자료와 증거(조서, 수사보고, 진술서 등)에 관한 분석은 위 두 단계를 거친 후에 합니다. 그래야 의뢰인 자신의 시각만이 아니라, 피해자나 수사기관, 법원의 시각도 고려해 자료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자료라는 것은 수사기록 열람 등을 통해 입수한 것뿐만이 아니라, 내 손에 들어있지 않은 것까지 예상해야 합니다. 수사의 필요상 일부가 비공개되는 경우도 있을뿐더러, 최근 고소장 열람이 용이해진 뒤부터 고소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전략적으로 일부 주장과 증거제출의 시기를 미루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은 후라면, 조사받을 당시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의 태도가 어땠는지, 조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무슨 말을 했었는지 최대한 기억해 내야 합니다. 수사관도 사람인지라, 대놓고 한쪽 편을 들지는 못하지만 딱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되면 '힌트'를 주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알아들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입니다.



4. 무죄라고 생각하는가? 무죄로 보이는가?


앞선 세 단계로 상황파악이 되었으면, 이제 드디어 마음을 꺼내놓을 때가 되었습니다.


우선 의뢰인의 생각을 말합니다. 스스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지, 왜 억울한지, 피해자와 수사관은 어떤 오해를 하고 있는지, 무엇이 무섭고 왜 두려운지 말입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판단'을 말합니다. 의뢰인의 말은 이렇게 들린다. 증거를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혹은 피해자 주장이 이상해 보인다, 수사기관이 그런 말을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혹시 의뢰인이 잘못 알고 있거나 자료에 공백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변호사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무죄를 주장해 봅시다!"라는 말은 쉽게 꺼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무죄판결받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호사가 무죄주장을 권한다면, 그 근거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무죄 주장에 관하여 더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 포스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5.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해 나갈 것인가


의뢰인이 변호사로부터 도움받아야 할 부분은, 사건 전체를 보는 눈입니다. 당사자는 맞닥뜨린 과제를 해 나가기도 벅차기 때문에, 경찰-검찰-재판으로 이어지는 전체 과정을 한눈에 담기 어렵습니다. 변호사도 진정사건의 피진정인이 되거나, 피고소인이 될 경우 스스로 해결하지 않고 믿음직한 동료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깁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일회적인 법률상담만으로는 형사 사건에서 완전한 조력을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최대한 예를 갖추어 물어봐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변호사라 하여도 형사 사건의 진행 방향을 미리 예측하기가 어렵고, 미래에 대한 예측은 맞추면 당연한 것, 틀리면 실력이 부족한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에 쉽사리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솔직한 대화를 나눈 후에, 서로의 마음이 통한 후에, 신뢰라는 것이 생겨난 후에, 아주 조심스럽게 몇 마디 말씀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



6. 피해자와의 합의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라면, 죄명을 불문하고 합의는 양형에 도움이 됩니다. 수사단계라면 기소유예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공들여야 할 부분임에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의뢰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불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려서가 아니라, 그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예 인식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많은 분들이 형사 조정의 기회를 흩날려버리곤 합니다.


내 사건에서 합의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어떤 방법(성범죄나 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와의 직접 만남에 신중해야 하므로)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지 '항을 바꾸어'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7. 예상되는 형량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변호사라면 전과, 피해의 정도와 내용(재산범죄라면 피해액, 사람이 다쳤다면 그 정도)을 고려하여 대강의 예측은 할 수 있습니다. 양형기준표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대강'에서 변호사들의 의견이 공통되면 더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미래를 점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 봐도 실형이 예상된다면 어차피 점쟁이가 필요 없을 것이며, 변호사간에 실형 여부 예측이 갈린다면 경계선에 있는 사건일 테니, 결국 판사 재량(소위 '형이 세게 나오는' 재판부가 있습니다)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므로 역시나 앞선 예측은 향후의 행보에 큰 의미가 없습니다.


똑같은 내용의 범죄라도, 전과 유무에 따라 예상되는 형이 크게 다릅니다. 또한 보이스피싱이나 마약범죄처럼 사회정책적으로 엄벌하는 추세의 범죄는 초범이라도 실형이 많이 나옵니다. 예전에는 실형이 별로 없었는데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실형선고가 늘어나는 죄도 있습니다.


결국 양형에 관한 정보는, 다수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공통되는 의견 및 가능한 범위의 양 끝단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정리하면 됩니다.



8. 양형자료


다른 사건 피고인들이 헌혈증이나 표창장을 모아서 제출한다고 말해주면 "그런 것도 내요?"하고 깜짝 놀라는 의뢰인들이 있습니다.


피해자와의 합의를 제외한 양형자료들은 확실한 효과를 장담하긴 어렵지만, 뭐든 모아서 내면 다다익선입니다. 판사가 피고인을 봐주려고 마음먹었다면, 근거와 명분을 줄 수 있습니다.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면, 도움 될만한 양형자료가 있을지 변호사에게 물어보세요. 반성문과 탄원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물어보세요. 물어보고 난 후의 결과물은 그 전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9. 3명 이상의 변호사와 상담해볼 것


민사도 그렇겠지만, 특히 형사는 의뢰인과 변호인이 서로 인간 대 인간으로 잘 맞아야 합니다. 죄인으로 법정에 서서 재판받는다는 일의 특성상, 의뢰인이 심정적으로도 변호인에게 많이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민사보다 형사는 역동적입니다. 수사단계에서 경찰, 검사를 직접 마주하고 설득해야 하며, 재판에서 증인을 몰아치고, 검사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변호사 개인의 성격이나 업무스타일에 따라 사건의 결이 많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3명 이상의 변호사와 상담해보고 나서 가장 신뢰가 가는 변호사를 택하세요. 나머지 2명과의 상담도 결코 시간을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들의 의견이 공통된다면 그만큼 객관적 정보라는 뜻이며, 의견이 갈린다면 왜 갈리는지 물어봄으로써 사건의 어려운 지점에 대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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