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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네 변호사 Feb 05. 2021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거위의 꿈

어머니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고시생 시절 얘기를 꺼내곤 하셨는데, 내가 시험에 실패하고 전화로 “어머니, 제가 명단에 없어요”라고 했던 말이 너무 가슴 아프셨다는 얘기를 자주 하신다. 지금 뒤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하나의 굴곡 정도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더 내려갈 곳 없는, 진공의 바닥에 혼자만 내려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남들은 내가 머리가 비상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서 정규코스 대로 사법시험을 편하게 보고 합격한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온갖 나쁜 경우의 수들을 겪고 견뎌야 했던 청춘에 불과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얼마나 공부를 잘하셨냐고 물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부끄럽다. “그렇지 않습니다”라는 나의 말은 단순한 겸양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인데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대학입시도 재수를 했고, 사법시험 2차만 무려 5번이나 봤어야 했고 무려 4번의 낙방을 경험했다. 합격자 명단을 보며 매번 눈물을 닦아야 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을 피해서 만화방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지질한 청춘이었다. 다만 이른 시기에 군 복무를 마치고 공부를 시작한 탓에 5년의 고시생 생활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그때는 정말 내 인생을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고 이대로 실패해서 고시낭인이 되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어떻게 봬야 할지 생각하면 내가 미칠 지경이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얘기라 지금은 덜하지만, 재작년까지도 1차 시험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꿈을 가끔씩 꾸는 정도였으니 그 트라우마가 꽤 컸던 것 같다.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으면 회피하는 습관이 있다고 하는데, 나 역시도 그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때 공부 외에 많은 것들에서 마음의 안식처를 찾았고, 수많은 잡기들과 딴짓을 일삼던 시기이기도 하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을 맞으면 내가 바람이 되는 것같이 자유함을 느꼈고, 가방 하나만 메고 행선지를 알 수 없던 기차를 오르면서 새로운 것들을 만나는 설렘으로 현재의 고통을 잊으려고 했던 시절이었다. 그 수많은 방황을 묵묵히 지켜봐 주시던 어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이런 방황의 시작에는 나의 자만심도 크게 한몫했었다. 제대 후 1년도 채 제대로 공부를 안 하고 사법시험 1차를 붙어버렸으니 그게 운인지는 모르고 오만함과 자만심만 앞선 탓이었다. 그 당시 나의 계획대로라면, 그대로 2차를 붙고 소년등과한 후 출세가도를 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하나님이 나를 연단시키려고 하셨던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겪게 하셨다. 잇단 실패를 겪으니 정신도 피폐해지고 자존감도 한없이 낮아졌다.


그런데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던가. 내가 나를 내려놓는 순간 깨달았다. 나는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전에도 실패의 삶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내가 언제부터 성공의 삶만을 살았다고 오만방자함인가. 또 한 번 실패하더라도 더 달라질 것이 있는가. 그 순간 마음이 차분해지고, 다시 살아가는 힘이 생겼다. 나는 그 해 합격했다.


수많은 인생의 터널을 거치면서, 나는 한 가지 깨달음과 의지가 생겼다. 어차피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수없이 고민하고 계획해도 단 한 가지도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니 하루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누군가가 내 삶과 운명을 결정하도록 두지 않겠다고.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로 했다. 그래서 세계를 누비는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세계의 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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