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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10. 2023

공무원을 그만두면 얻을 수 있는 것들

비록 잃는 게 더 많을지라도.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봤다.

자유.. 시간.. 건강.. 아이 돌봄.. 자존감.. 여행.. 한낮의 점심 약속.. 월요병 완치...





자유

"Dobby is free."

해리 포터를 보다가 본의 아니게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장면.

도비가 자유의 몸이 되면서 했던 대사.

"Dobby is free.(도비는 자유예요.)"

요즘 공무원은 공노비라는 말이 있다. 시키는 일만 한다는 점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고 싶다.



시간

복무에 있어서만큼은 어느 직업보다 빡빡한 게 바로 공무원이다.

근무시간 8:30-16:30에는 행정실을 지키는 게 우리의 일.

학교 밖으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잠깐이라도 '외출' 복무결재를 받고 나간다.

외출은 내 연가(연차)에서 실사용시간만큼 공제한다.

일이 많든 적든 자리만 지키면 월급이 나오는 공무원이라는 자리.

누구는 너무 편하고 좋은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자리만 지키면 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쏟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다.



건강

교육청에 근무했을 때 너무 바빠서 화장실을 참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자꾸 참다 보니 점점 방광이 약해졌는데 1~2주 연달아 야근을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열이 끓고 허리 양쪽 뒤가 녹아내릴 듯 아프더니 신우신염에 걸렸다. 새벽에 응급실 가서 링거를 맞고 출근했다.


애 낳고 복직했던 초등학교에서 이상한 교장을 만났다.

자기 말이 곧 법이요. 절대 토 달아서도 안되고,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말대답하면 깔아뭉개고, 음담패설은 기본에, 매사 빈정대는 스타일.

연가 한 번을 쓰려고 해도 말없이 결재해 준 적 없고, '어디 가냐, 왜 지금 가냐, 누구랑 가냐, 어디 묵냐(그걸 네가 알아서 뭐 하게!!!!!)'하면서 직원들을 업무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너무 달달 볶아댔다.

어느 날 근무시간 중에 갑자기 비행기 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고 소리가 잘 안 들렸다.

병원에 갔지만 원인도 해결책도 없이 반년을 지냈다. 다른 학교로 옮기고 나서야 차츰 괜찮아졌다.


지난주 일주일 가까이 편두통을 심하게 앓았다. 내내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고 아무리 진통제를 종류별로 먹어봐도 낫질 않았다.

병원 가서 MRI도 찍어봤지만 큰 이상은 없다 했다. 그럼에도 두통은 꽤 오래갔다.


휴직 기간에는 두통은커녕 배앓이 한 번을 안 했는데...

일하는 동안, 나 자신을 죽이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보기 싫은 사람을 억지로 대면하고 그러면서 자꾸 아팠고 아프다.

이 일을 관둬야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아이 돌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육아휴직을 몽땅 끌어다 쓰긴 했지만(공무원의 좋은 점 중 하나) 워킹맘 마음의 디폴트 값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인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애가 아플 때도 내 일이 바쁠 때는 열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출근해야 했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아무래도 엄마가 덜 필요하지만 나도 방학 때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싶다.

매일 아침 아이의 속상한 목소리 듣고 싶지 않다.

"엄마, 나는 방학이 제일 싫어. 나는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잖아."

내가 집에 있으면, 방학 때 돌봄 교실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방과 후 학원 뺑뺑이를 안 돌려도 된다.

난 아이가 하루 종일 이 학원 저 학원을 돌면서 성인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자유롭게 자기가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며 자기의 꿈을 꾸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자존감

"실장님, 이런 건 행정실에서 해줘야지."

"선생님들이 불편하지 않게 행정실에서 잘 보조해 줘야지."

이런 소리 안 듣고 싶다.

행정실 직원들에겐 회계직공무원으로서의 본연의 업무가 있음에도 항상 '교사' 중심으로 굴러가는 학교에서 업무보조의 역할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배워왔지만 학교는 계급사회다.

행정실장의 자리는 중간관리자의 역할이지만 학교 안에서는 서비스센터장 정도랄까.

시설관리의 명목으로 변기 막힌 것도 뚫고(시설주무관님 안 계시면 이것도 내 몫인 거다.) 엉망이 된 분리수거장 청소도 하게 된다.

어디까지가 행정실 업무인지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교장은 애들 가르치는 일 말고는 다 행정실 업무라 하니 답답해미치겠다.

이런 잡직은 그만 사양할게요.



여행

평일에 떠나는 여행을 할 거다.

비행기 티켓 값은 화요일에 떠나는 게 제일 저렴하더라.

직장인의 여행은 항상 금토일, 토일월.

조금 더 욕심내면 목금토일, 금토일월.

이것도 눈치 보면서 연가 썼다.

징검다리 휴일이라도 있으면 사무실에 같이 있는 직원들이랑 눈치게임해야하고(인원의 반은 휴가 쓰더라도 나머지 반은 학교를 지켜야 한다.) 내가 그때 쉬게 되면 미안함 한가득 안고 가야 했다.

나는 이제 월요일, 화요일에 떠나는 여행을 갈 거다. 가서 1주일, 2주일도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여행하고 돌아올 거다.

한 달 살기도 해야지. 아이가 더 크기 전에 현장체험 신청서 내고 더 많이 다녀야겠다.



한낮의 점심 약속

직장인들은 점심을 회사 근처 식당에서 먹거나 아니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1시간에서 1시간 반정도의 점심시간이 있는 걸로 안다.

학교는 교직원들도 아이들과 같이 급식을 하고 학교근무자는 별도의 점심시간이 없어서(점심시간도 복무 시간 포함. 그래서 8:30-16:30 근무시간이다.) 학교 식당 가서 15분 정도 밥 먹고 바로 행정실로 와서 업무에 복귀한다.

학교는 보통 아파트나 주택단지 옆이라 식당도 별로 없고 급여에서 급식비를 사전에 공제하기 때문에 급식을 안 먹으면 손해라서 학기 중에는 거의 100% 급식을 먹는다.

방학이면 급식이 없어서 배달을 해 먹거나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다.

이제 나도 곧 맘 편히 점심 약속 잡을 수 있다. 나도 힙하고 핫하고 뜨는 곳들을 한가한 평일 낮에 가고 싶다.



월요병 완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일은 금요일이다.

금요일 퇴근 후부터 토요일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토요일부터 이미 월요일이 올 것을 걱정하는, 아주 피곤한 타입이다.

일요일은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우울했다.

'벌써 내일 출근이네? ㅜㅜ'

휴직 때를 떠올려보면 휴직을 하는 순간 월요병이 사라지는 신묘한 체험을 했더랬다.

이제 곧 '월요병이 뭔가요?' 하게 되겠지?

퇴직하면 월요일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벌써 기대된다.

아직 퇴직한 것도 아니고 12.31까지 기다리려면 한참인데도 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해졌다.

몹시도 행복한 이유는 지금이 금요일 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혼자 산다'를 보면서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바로 행복 그 자체.



202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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