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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09. 2023

퇴직하고 싶어서 아프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작년부터 퇴직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다가 최근에 퇴직을 결정하고 다음번 정기 인사 때 의원면직하려고 버티고 있다.


퇴직을 고민하면서 퇴근 후 계속 퇴사 브이로그만 봤던 것 같다.

누가 내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퇴직자'라고 대답할 정도로 퇴직을 꿈꿨다.


얼마나 한심한 인생이기에 퇴직이 꿈이란 말인가.


그러다가 퇴직하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고 계속 그런 걸 보다 보니까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퇴직 후 자기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자기 자신을 더욱더 아끼고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의 영상으로 이끌었다.




올해 발령받은 학교는 집과의 거리가 멀다.


하루에 톨게이트비만 5천원, 주유비는 1만원 정도를 쓰면서 다니는데, 출퇴근길에 매일 자기계발 영상을 들으면서 다녔다. 남들은 비싼 돈 주고 강연도 들으러 다니는 마당에 그 길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나의 인생수업 시간이라 생각하면서.

그 시간이 너무 좋았고, 빨리 그만두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MKTV 김미경 강사님 영상도 종종 보는데, 어제는 강사님 영상 중에 <절대로 퇴사하지 마라>는 영상이 떠서 보게 되었다. 내용은 영상 제목처럼 절대로 퇴사하지 말고 힘들어도 버티라는 거였다.(제목이 곧 내용)


그 영상을 보고 갑자기 맘이 흔들렸다.


맘이 흔들리는 게 느껴지자 갑자기 그동안 내가 퇴직하고 싶었던 게 퇴직 예찬론자의 유튜브를 봐서 그랬던 건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 자리에 붙어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생각에 생각을 꼬리 물다가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잤는데 오늘 아침에도 두통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침에 애드빌을 하나 털어먹고도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렸다. 퇴근해서 두통약을 2알 먹고, 방금 또 2알을 먹었다. 두통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우리 행정실은 나를 포함해서 직원이 2명이다.

학교 규모가 작지만 일의 가짓수는 규모가 큰 학교와 똑같기 때문에 개개인이 맡은 일이 적지 않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종일 동동거리며 일했다.


방학이라 학교 공사가 한창인데, 공사 현장이 두 곳이라 신경 쓸게 많았고, 다음 주에 아이 때문에(학원이 방학이라) 휴가를 며칠 써야 해서 미리 처리할 일도 많았고, 오늘이 방학식이라 선생님들이 내일부터 출근을 안 해서 이것저것 오늘 해달라는 일들마저 많았다.


행정실장은 공사 감독 업무를 맡는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춤추듯이 자판을 두드리고, 여기 뛰어가고 저기 뛰어가고, 이 사람 저 사람 행정실 와서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는 거 하나씩 처리하는 중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하.기.싫.어.

여.기.있.기.싫.어.

여.기.있.는.내.모.습.이.싫.어.


이게 내 마음이다.

지금은 그만둘 때가 아니라고.

앞으로 경제 위기는 계속 더 심해질 거라고.

안정적으로 월급 주는 회사 다니라고.

여자 직업으로 공무원 만한 게 없다고.


주변에서 모든 사람들이 다 뜯어말려도 내 마음은 이미 끝난 것이다.


퇴직을 하고 싶은데, 당장 할 수가 없어서 몸이 자꾸 아프다.

머리도 아프고 위도 아프고 배도 아프다.


퇴직을 고민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를 종종 꺼냈다.


나 그만두고 싶어.
나 퇴직을 고민하고 있어.


하지만 아무도 내 고민을 진지하게 듣지도 않았고, 내 생각에 동조해주지 않았다.


조직 외부의 사람들은 '그 좋은 직장을 왜...?'

조직 내부의 사람들은 '힘들어도 버텨야지.'라고 했다.


내가 퇴직을 결정하고나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퇴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남편과 엄마만 알고 있다.


결정하고 나니 주변에 굳이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

조직 외부나 내부나 사람들이 어차피 이해를 못 해주는 건 매한가지이고 이 바닥의 사람들도 내 의원면직을 나중에 공문으로 보게 될 것이다.


11월에는 행정실과 교장선생님께 얘기해야겠다.

교육청에 전화해서 인사담당자에게 '의원면직하려면 무슨 서류 제출해야 돼요?'하고 물어보리라.

왜 갑자기 그만두냐고 묻는다면 '이 바닥이 너무 싫어서요.'라고 답하리라.

(근데 안 물어보면 어떡하지...)


그동안 매번 인사담당자 앞에서 쭈글쭈글 쭈그러져서 '주무관님, 저 가까운 데로 발령 내주시면 안 돼요? 아이가 어려요. 제발 너무 멀지 않은 데로 부탁드려요. 네? 네?' 비굴모드로 쭈글 대던 시절을 날려버려야 겠다.



정해놓은 시간은 빨리 간다.

마지막 출근일까지 D-156

매일매일을 기록하며 퇴직을 기다려야겠다.



202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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