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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11. 2023

월요병 vs 퇴사병

중증월요병 환자 & 말기퇴사병 환자입니다.

(사진출처: 장줄리앙 Then, There 전시회)


월요병이 단순한 우울감이라면 퇴사병은 우울증이다.


나는 작년 말부터 나 스스로를 말기퇴사병 환자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은 퇴직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한 상태였고 직장에 대해 어떠한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없었으며 이미 내 상태는 퇴직을 할지, 말지가 아니라 어느 시기에 어떻게 그만둘 것인가를 생각하는 단계였다.



브런치에 저장해두었던 나의 퇴사심(2021.11.5.)


작년에 퇴사병을 심각하게 앓았던 시기에 브런치에 저장해두었던, 나 혼자만 알고있는 퇴사심.

(애사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퇴사심만 남아버렸다.)


2021.11.5.에 쓴 글이었는데 이미 '몇 달째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퇴직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몇 달째'가 제일 슬프지만, 한 구절 한 구절 안 슬픈 데가 없다.


이때는 아무에게도 이런 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었고 나 혼자서만 끙끙 앓았던 시절이었다.

밤에 잠이 들면서 이대로 아침에 눈뜨지 않길 바라고, 어떻게 해야 출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고, 출근해서는 도살장에 끌려온 소같은 표정을 하고 자리를 지켰다.

(그때 당시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던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부정적인 기운은 쉽게 전염되기에...)


이후에 가족들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고 남편의 반대에 부딪혔고 한동안 많이 우울했지만

같이 사는 사람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에

1) 우선은 다녀보기

2) 다니다가 도저히 안되겠으면 그때는 한번 휴직하기

3) 퇴직은 휴직하고나서 복직시기에 다시 생각해 보기

로 결정했다.


남편은 나의 퇴직 고민과 결정이 충동적이라 여겼지만 내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2022년이 되고 6급으로 승진도 하고 학교도 옮기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퇴직에 대한 나의 생각은 변하기는커녕 좀 더 확고하고 견고해져서, 내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하며 지켜보던 남편이 두 손을 들게 되었다.


올해 말 나는 의원면직을 하려고 한다. 남편의 동의(!)를 얻었기에 이제는 걱정 않고 남은 4개월 반을 잘 정리하고 그만둘 예정이다.


8.13.~8.15. 3일간의 연휴 동안 집에만 있었다. 무기력한 몸을 어쩌질 못해 침대와 소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나마 유의미한 시간이라면 퇴직에 대한 책들을 쌓아놓고 읽었던 것. . .?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일상을 살기는커녕 싫어하는 일들을 하며 꾸역꾸역 하루를 산다는 건 나 스스로를 마냥 무기력하고 의욕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일이 너무 재미없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이 '즐거운 일은 원래 회사 밖에 있는 거'라며 퇴근 후나 주말에 취미생활도 하고 배우고 싶던 것도 배워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는 원래도 에너지가 부족해서 퇴근 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던가, 워라밸을 위해 퇴근 후나 주말에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즐기는 게 몹시도 어려운 사람이다.

4시 반이라는 이른 퇴근에도 퇴근 이후에는 집에 와서 초등학생 아이를 돌보고 애가 잠든 10시 이후에나 내 시간을 가져보려다가 TV를 켜놓은 채로 꼬꾸라져 잠들어버리는 그런 저질체력의 40대 워킹맘이다.


남들의 충고대로 주말에 좋은 곳도 가고 즐거운 일도 하고 그러면 며칠 못 가서 감기에 걸리고 몸살이 나버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여서 워라밸은커녕 밤마다 주말마다 누운 채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에너자이저들과 똑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내가 단순히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이고 끈기가 없어서 그만두는 거라면 10년 이상을 버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14년간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학교에서, 교육청에서 근무를 해왔는데 이제는 이 일이 너무 하기 싫고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기에 그만두려는 것이다.



그만둔 이후의 삶?

그건 아직 모르겠다. 삶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계획이 있어도 그건 나 혼자만의 것으로 남겨두겠다. 

우선은 쉬고, 건강을 회복하고,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면서 지내보겠다.


'너 그만두면 후회할 거야.'라는 말 많이 들었다. 후회할 수도 있겠지. 아마 30년을 버텨낸 동기들이 공무원연금 받을 때 즈음? 그때는 조금 후회하거나 그들이 부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사는 건 나에게 매일매일이 후회의 나날이다.


후회도 내가 하고, 뒷감당도 내가 할 테니.

주변 사람들의 섣부른 충고도, 오지랖도 사양하고 싶다.


연휴가 길어질수록 월요병은 더 세지고 9개월째 깊어만 가는 퇴사병은 지금 이미 너무 중증이라 호흡기를 달아야 숨을 쉴 수 있다.


202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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