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난 Mar 17. 2023

6급 행정실장은 결재말고는 하는게 없다는데-

왜 그만두냐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7월에 6급으로 승진했다.

육아휴직을 거의 다 썼기에 동기들보다 많이 늦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풍문들.

'교행직은 워라밸이 좋다더라.'

'학교 행정실은 꿀 빤다더라.'

'6급 행정실장은 결재말고는 하는게 없다더라.'


6급으로 승진도 했고, 행정실장은 결재 말고는 하는게 없다는데 나는 왜 그만두기로 했을까.




오해1. 교행직은 워라밸이 좋다더라.

워라밸의 의미가 복무시간이 일행직보다 짧다는 의미라면 맞을 수도 있겠다.

상대적으로 민원인을 상대할 일이 적은 것도 맞다.(이건 학교에 한해서. 교육청은 민원이 만만찮다.)


교행직은 초과근무를 안 하고 칼퇴한다고 소문이 났던데, 신규들 들어오면 초과근무 진짜 많이 한다.

행정실에서 어떤 고유의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보통 1명이다. 행정실 근무 인원수가 적어서 한가지 일에 두세명의 담당자는 없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일들.

신규들이 하기엔 벅차고 다른 직원들도 각자의 업무가 많아서 도와줄 여력이 별로 없다.

내 일이 익숙해지기 전에는 정말 맨땅에 헤딩이다.


나도 5년차까지는 야근 정말 많이 했다. 학교에 당직기사님이랑 나 밖에 안 남는 날들이 많았다. 장거리출퇴근하던 신규때는(그땐 집에서 업무시스템 접속이 불가능한 시기였다.) 일이 새벽 2시 넘어서야 끝나서 학교 여교사 휴게실에서 잠을 잔 적도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학교 행사 때나 회계 마감철에는 초과근무를 했지만 육아도 해야했기 때문에 가급적 업무시간 내에 업무를 마쳤다.

학교에 공사가 있으면 누군가는 공사감독을 해야하기에 주말에도 출근을 한다.


이건 경력이 쌓일수록 책임이 커지기에 어쩔 수 없는거겠지만(빈도면에서 일행직의 비상근무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교행직이 '워라밸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몇십억의 공사를 맡게 된다면 주말이고 나발이고 잠 못 이루는 날들의 연속이다.


다른 행정기관은 공사가 있어도 계약은 재무과에서, 공사진행 및 감독은 시설과에서 하지만 학교에선 보통 행정실장이나 차석이 혼자 도맡아서 한다. 공사계약에 대해, 시설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나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까 맡아서 한다. 공사시작 전부터 준공까지 짧게는 한달이상 숨이 턱턱 막힌 채로 지내곤 했다.



오해 2. 학교행정실은 너무 편하다.

사회복지직으로 10년정도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교행직 시험을 붙어서 들어온 직원이 하는 말.

거기만 헬인줄 알았는데 여기도 헬이라고.


행정실 안 편하다.

행정실에는 보통 교육행정직 공무원, 행정실무사, 시설관리직 공무원 이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난 다른 직렬은 잘 모르니 교행직만 두고 말하지만 여러모로 안 편하다.


보통 신규들이 들어오면 급여업무를 맡게된다.(신규가 들어오자마자 어떻게 급여업무를 맡기냐는 말이 많은데... 그렇게 따지면 행정실에서 하는 어떤 업무도 신규한테 맡길 수 있을만한 업무는 없다. ㅠㅠ)

그 위에 차석주무관은 지출업무와 계약을 맡게된다.

그 위에 행정실장은 예산과 현안사업을 맡고 시설공사를 감독하며 제일 어렵고 짜증나는 '교장 상대하기'를 한다.(케바케, 사바사, 부바부라서 차석이 행정실장 업무 중 일부를 하는 학교도 종종 있다.)


신규들이 많이 그만두는 이유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급여자리에 앉혀놓고 '이번달부터 직원들 급여줘!' 하기때문이 아닐까.  

학교에는 교사만 있는게 아니다. 학교만큼 다양한 직렬과 직종이 섞인 조직은 없다고 확신한다. 공무원 급여는 시스템이 거의 알아서 처리해준다고 해도 공무직 급여는 조금 까다롭고 번거롭다. 공무직 종류만 10개가 넘는다. 직종마다 급여단가나 계산이 다르다. 거기다가 시간강사며 방과후강사며 기간제며 얼마나 다양한게 많은지.


그렇다고 차석은 쉽나. 단언컨데 행정실에서 제일 잡무가 많은 사람은 차석주무관일 것이다. 애매한 공문은 다 차석에게로 가는 미스테리.

큰 학교(학급수가 많은 학교)가면 하루종일 물건 주문만 하다가 끝난다.

40학급 학교 차석으로 근무하던 시절. 학교축제때 반마다 학년마다 필요한 물건 주문하는데 3~4일씩 걸렸었다. 100만원 넘는건 조달청 나라장터시스템에서 전자계약 해야하고 일일이 내부결재 받아서 처리해야하고 그 와중에 물품관리도 해줘야한다. 학교가 역사와 전통까지 오래되면 물품관리 상태는 엉망인데 그거를 장부랑 실제보유랑 맞추려면 '물품달인의 할아버지가 와도 못한다.'에 내 명절휴가비를 걸겠다.



오해 3. 6급 행정실장은 결재말고는 하는게 없다더라.


그래. 많이 양보해서 그런 행정실장이 있다고 치자.

그건 그 사람 개인이 이상한거지, 6급 행정실장들이 다 그러는게 아니다.

나도 차석으로 근무하던 수많은 날들, 여러학교에서 여러 실장님들을 만났다.

물론 개중에 정말 이상한 실장님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본인 일도 잘 하시고 아래 직원들이 모르는거 wkf 알려주시고 교장선생님 상대해주시고 행정실과 교사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을때 중재해주시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셨다.


나는 지난 학교에서 행정실장으로 근무하며 지금까지 차석으로 근무했던 어떤 때보다 힘들었다. 그때부터 퇴사병이 심하게 걸려서 오늘 날 의원면직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급으로 승진해서 온 지금학교에서는 행정실에 사람이 적어서(나, 차석) 나는 9급,8급,7급때 했던 업무를 다 하고 있다.


6급 행정실장이 결재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는 오해와 편견을 거둬주시길.


다들 자기일이 제일 어렵고 자기가 젤 힘들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그렇기에 내가 바쁠때 야근할때

실장님 책상위에 소설책이 있고, 퇴근 5분전에 이미 짐싸고 나갈 준비하고 있는 그런 모습 한번 보고 판단한 걸지도 모른다.


6급 행정실장이 결재말고는 하는 일이 없다면 내가 힘들게 6급 승진까지 해서 이제는 행복한 꿀빨기만 남아있는데 그만둘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일행직 공무원 그만두면서 교행직이나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행직이 안 맞았으면 교행직도 안 맞을꺼다.

일행직에는 민원인들이 있지만 교행직에는 이상한 교사들이 있다.

(좋은 쌤들이 더 많다. 하지만 이상한 쌤들이 있으면 진상민원인만큼 힘들다. 그들과 협업을 해야하고, 그들은 한번 일보고 사라지는게 아니라 2년 내내 얼굴을 봐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상한 행정직들도 있다. 선생님들만 이상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일부의 이야기이니 오해없기를.)


그 이상한 쌤들때문에 학교가 너무 싫어져서 8급때 교육청 본청으로 전입을 했었다.

이후에 애 낳고 육아휴직하면서 다시 학교로 왔지만... 이번에 그만두기전에도 지역교육청이나 교육청 본청으로 가는걸 잠시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팀장급이 된다. 예전엔 8급,7급때라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됐는데 이제는 교육청가면 팀장급이 되고 윗선에 어느 정도는 잘 보이려고 애써야 사무관 승진이 가능하다고 한다. 난 승진을 위해 교육청에 들어가는건 너무 싫었다.


그러면 나는 그냥 학교에서 계속 썩어야한다는건데 자신이 없었다.

10년 넘게 해온 똑같은 일을 앞으로 20년간 더 할 자신이.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나 스스로도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매일매일 내가 하는 일의 하찮음에 좌절하고, 매일매일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에 불안하고 안전사고가 날까봐 걱정하고 혹여나 사고가나서 그 책임을 내가 져야할까봐 수시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학교가 오래되서 오작동으로 화재경보가 많이 울린다. 업무시간에 그러면 다행인데 야간이나 주말에 그러면 자동화재속보설비가 자동으로 119에 전화를 걸고 그 전화의 회신번호는 소방안전관리자인 행정실장의 번호다. 자다가도, 주말에 캠핑갔다가도 119의 전화를 받곤했다. 액정화면에 119가 뜰때마다 놀라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작년인가? 어느 학교에서 방화셔터 사고가 났는데 행정실장이 소방안전관리자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책임을 지게 된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게 아니라 왜 학교장이 아닌 행정실장이 혼자 책임을 져야하는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잘못을 한 사람은 당직기사였는지 아무튼 계약직원이었는데 관리자라는 이유로 행정실장이 벌금 천만원을 받고 아마 그 이후에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중인걸로 안다.

교장? 교장은 무혐의 판정이 났다. 이유는 학교 소방안전관리자가 행정실장이라서.

이게 나의 일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전불감증이 아니라 안전불안증이 생겼다. 너무 무서웠다.


관련기사 아래 링크 참조

https://www.ytn.co.kr/_ln/0134_202201290800199123



교장처럼 대우받는것도 아닌데, 교장처럼 급여를 받는것도 아닌데, 교장처럼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서 안달한것도 아닌데 왜 모든 책임을 행정실장이 져야하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그렇게 이 일에, 내 자리에, 내 역할에

행복한 답이 보이지 않아서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이 일을 하는 내가 자랑스럽지 않아서

학교에 있는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그래서 그만두게 됐다.


손가락만 까딱. 결재만 하면 된다는 6급 행정실장. 이제 곧 의원면직을 한다.

주변에 6급 행정실장으로 본인의 일을 즐거워하며, 만족하며 지내는 선배들을 보지 못했기에.

'그만두고싶다'고 얘기했을때 '괜찮아질꺼야'가 아니라

'다들 버티고 참고 사는거지'라는 답을 들었기에.

... 내가 찾는 답이 아니었기에.


2022.9.4.



사진출처: UnsplashMarkus Spiske


+덧붙임

공감해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이견이 있다고 댓글 주신분들도 있었습니다.

6급 행정실장들이(꼭 6급만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하는 일 없이 결재만 하는 케이스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있습니다.

제가 그런 행정실장이 아니었고, 제가 겪은 실장님들이 그러지 않았을 뿐이겠지요.

교사와 행정실 간의 업무갈등은 요즘 학교마다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고 각자의 생각이 너무 다른 것은 저도 너무 잘 압니다.

제가 용되던 때부터 면직하던 때까지 수도 없이 다투고 분쟁하던 내용이니까요.

교사가 쉽다.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행정실에서 일해오며 이러저러한게 힘들었고 그것이 쌓여 결국엔 면직을 하게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니 제 글에 상처받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학교에서 만나 1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선생님들도 몇분 계십니다. 교사들의 고충 또한 모르지 않고요.

이상한 행정실 직원들 당연히 있겠죠. 이상한 교사들도 학교마다 있구요. 니가 더 이상해! 이런 얘길 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일 안하는 사람은 행정직이든 교사든 혐오하고 경멸합니다.)


개인적인 의견개진은 저와 다른 의견일지라도 겸허히 받을게요.

다만 행정실이 더 별로더라. 교사들이 더 힘들더라 이런류의 결론없이 평행선만 달리며 서로 상처주고 의욕상실하게 될 댓글은 무시하겠습니다.(저야 이미 그만둔 사람이니 상관없지만 앞으로 계속 근무하셔야하는 교행직들과 교사들에게 서로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대놓고 비꼬고 싸우자는 댓글은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서 글을 쓰도록 할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이전 13화 퇴직 신청을 철회하라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