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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r 19. 2023

"아빠는 엄마가 공무원이라 결혼했는데 이제 어떡해?"

가스라이팅의 귀재. 그게 바로 접니다.

작년 10월 퇴사병에 걸렸던 나는 병이 너무 깊어져 12월에 최고조에 이르렀고 남편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나조차도 확고한 결심이 서지 않아서 심정적으로는 다 때려치고 싶다가도, 이성적으로는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주 불안정한 심리상태였다.


'여보 나 못하겠어. 다 때려치울래. 나 요즘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 우울해 미치겠어. 숨이 안 쉬어져.'


남편은 울 학교분위기와 교장의 태도에 같이 분개해 줬지만 내가 꺼내는 말이,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오는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내가 그만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면서 그래도 이러다가는 정말 그냥 내가 죽을 것 같고, 계속 이렇게는 못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흔쾌히 말했다.

"그만둬. 내가 부인이랑 자식 하나 못 먹여 살리겠어? 스트레스받지 말고 관둬."


그러다가 내가 진지하게 정말 그만둘 준비를 시작하니 (퇴직연금 조회, 의원면직 시기 조율 등등)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여보, 요즘 우리 회사가 좀 어려워" (응? 갑자기?)

"여보 믿고 그만둬도 된다며? 그냥 해본 말이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해본 말인 줄 알았어."


그 이후로 이어졌던 말, 말, 말들...

- 여보가 지금 관두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야.

- 공무원처럼 좋은 직장이 어딨어. 그 일 내가 하고 싶다.

- 공무원도 못 버티면 밖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그러면 여보가 시험 봐서 공무원 하든가.)



황당했다.

괜히 나 혼자 배신당한 듯한 느낌도 들고.

한동안 우리 부부는 이유 없는 냉전상태를 보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나의 퇴직을 예감했던 남편은 말을 잃어갔다.

2주? 3주? 남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퇴근 후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대화 한마디 나누지 않고, 그렇게 남편은 말도, 웃음도 잃어갔다.


같이 집안경제 공동체를 꾸려가는 부부사이에, 남편의 동의 없이 공무원을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마음을 돌려야 했다.


지난 몇 주간처럼 저녁식사 후 말없이 자기 방에 처박혀 있던 남편에게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여보, 나 우선은 그만두지 않을게. 버텨볼게."

"너무 힘들다며... 못 참겠다며..."

"그래도 해볼게. 우선은 어차피 지금 회계마감할 때라서(대화당시 12월 말이었음) 바로 관두지도 못하니까. 2월 말까지만 버텨볼게. 버텨보고 못하겠으면 휴직할게. 휴직해 보고 복직할 때 정 못하겠으면 그때 가서 퇴직할게."

"그래도 괜찮겠어?"

"안 괜찮아도 어쩌겠어. 남편이 부인이 관둔다고 이렇게 우울증 환자가 됐는데."


(우리 남편은 완전 진지한 스타일이고, 나는 완전 오버하고 막말하는 스타일이다.)


3주간의 냉전은 끝났고, 남편의 우울증상도 씻은 듯이 해소되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이 괜히 얄미워진 나는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남편을 놀렸다.

"여보, 내가 공무원이라서 결혼했지?"

"여보, 내가 공무원 아니었으면 나랑 결혼 안 했지?"

"여보, 내 연금 같이 쓰려고 나랑 같이 사는 거지?"

"여보, 내가 공무원 그만두면 나 버릴 거지?"


나의 '공무원이라서 결혼' 타령에 남편이 지쳐갈 즈음.

아이와 친정에 가서 저녁 먹을 일이 있었다.

식사 후 9살 아들이 할머니와 속닥거리는 걸 들었다.

"할머니, 우리 아빠는 엄마가 공무원이어서 결혼했대. 할머니 알고 있었어? 근데 엄마가 공무원을 관둘 수도 있대. 우리 아빠 어떡해?"


아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우리 엄마와 나는 그 얘길 듣고 빵 터졌다.

내가 남편 들으라고 했던 그 타령을 우리 남편은 흘려들었는데 아이는 새겨들었나 보다.


다행히 1, 2월에 회계마감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방학이라 교장이랑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서 중증퇴사병은 조금씩 나아졌고, 3월 새 학기에는 내가 7월에 승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우선은 그 진저리 나는 학교에서 버틸 수 있었다.


다른 학교에 가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6급이 되면 내 마음상태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4개월을 버텼다.


물론 발령은 내 희망지역과는 상관없는 곳으로 났고, 나는 매일 5천 원의 톨게이트비를 내고 출퇴근을 해야 했으며, 6급이지만 업무는 9급처럼 잡무도 많고(행정실 직원이 나 포함해서 2명뿐이니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책임질 일도 그대로 많고. 모든 정이 뚝 떨어졌고. 어느 순간 깔끔하게 의원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다른 곳에 가면 달라질까.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이 전혀 없는 상태.


누구는 이제 6급 되었으니 조금만 더 있으면 실무에서 손을 떼고 너무 편하게 행정실 생활할 텐데 왜 그만두냐 하지만, 일 안 하고 자리에 앉아 시간 때우기 하려고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 않고, 그렇게 해오지 않았다. 나는 이 일과 나의 정말 리얼 끝을 보았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휴직이라는 유예기간도 없이 바로 의원면직을 결정했고.

나의 완전 돌아서버린 마음을 느꼈는지 남편도 이번에는 정말 흔쾌히 나의 퇴직에 동의해 줬다.

(속마음이야 어땠을지 몰라서 그냥 나는 흔쾌히라고 믿고 있다.)


의원면직하겠다고 학교에 말하고, 친정에도 말하고, 시댁에도 말하고 나서는 자유롭게 '내가 일 그만두면~', '내가 퇴직하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되고. 또 그게 기정사실화되었다.


나는 올해까지만 일을 하고, 그때까지만 공무원이고 그 이후에는 백수이고, 자유인이라고.


며칠전 10살 아들이 나한테 와서 묻는다.

"엄마,
아빠가 엄마 공무원이라서 결혼했는데
이제 어떡할 거야?

아이의 표정은 심각했고. 나는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러게. 이제 엄마가 공무원 아니면 아빠가 엄마 두고 떠날 수도 있겠네?"

"엄마. 근데 아빠는 절대로 나랑 헤어져서는 못 산다고 했거든? 그러니까 엄마도 내 옆에 딱 붙어있어. 그러면 우리 셋이 같이 살 수 있어."

"정말? 그래. 엄마는 우리 ㅇㅇ이 옆에 꼭 붙어있을게~!"

"응! 절대로 떨어지지 마!"


알고 보니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다.

아이는 얼마전 지 아빠한테도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빠,
 아빠는 엄마가 공무원이라서 결혼했는데
엄마가 그만두면 이제 어떡할 거야?"

남편이 그런 거 아니라고 했는데도 믿지 않는 눈치였단다.

(미안해. 엄마가 정말 가스라이팅과 세뇌의 귀재구나.)


"아빠는 우릴 떠날 거야?"

"아니. 절대 안 떠나지."

"나는 엄마랑 꼭 같이 살 거야. 그러니까 아빠도 엄마랑 같이 살아야 돼."

아이가 지 아빠에게 확답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내 남편은 내가 공무원이어서 결혼을 했지만, 아들과 같이 살아야 해서, 공무원을 그만둔 나와 같이 계속 살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나는 공무원을 관두고 버림받을 뻔했다가 엄마껌딱지 아이덕에 남편 옆에 잘 붙어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끈끈하고도 귀여운 이야기.


애 앞에서는 농담도 함부로 하지 말자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의 이야기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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