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는 세상 경험을 하는 사람

독한PD 에세이

by 독한PD

예전에 친구와 막걸리 한잔하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방송 한편이 끝날 때마다 마음이 헛헛해"


'헛헛하다'의 사전적 의미 두 번째 뜻은

'(마음이) 무엇을 잃은 듯하여 몹시 아쉽거나 섭섭한 마음이 있다'이다.

왜 방송 한편이 끝나면 속이 후련해야 하는데 내 마음은 왜 헛헛할까?


PD는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이다.

당시 내가 제작했던 프로그램은 <EBS극한직업>이다. 담당PD 4명이서 한 달에 한 편씩 제작해서 매주 방송이 나가는 시스템이었다.

아이템을 잡고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이주일을 취재하고 촬영한다. 취재원들과 친해지려고 촬영을 접고 함께 술 한잔 먹으며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형 동생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렇게 친해지다 보면 그들의 속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려주었다. 진정성 있는 인터뷰를 듣기 위해 며칠 동안 지지고 볶으며 관계가 형성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면 바로 편집 작업에 들어간다. 며칠 동안 편집을 하며 그 사람의 영상을 또다시 수백 번을 보게 된다. 편집을 하며 취재원도 모르는 버릇도 알게 된다. 편집 작업은 방송 편성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늘 바쁘다. 며칠간 편집하며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하루 종일 여기에만 몰입되어 이따 보니 정작 나 자신의 삶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 편의 방송을 TV로 내보내면 다시 헛헛함이 밀려 온다.


"내가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 허전한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군가의 삶을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방송 내보내고..

또다시 다른 사람의 삶을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방송 내보내고...


무한 반복..


이 직업이 이렇다는 것을 어느 선배 PD가 쓴 책에서 읽은 바 있다.


이게 'PD'라는 직업의 숙명이라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에 쿨하게 그들의 삶을 받아들이고 또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 삶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때는 내가 아직 쿨하게 그들을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다. 6년이 후른 후에야 조금씩 깨닫는다. 그래도 이 직업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늘 새로운 경험을 하고 그 경험에서 값진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내가 PD이기 때문에 <EBS극한직업>을 제작하며 45미터 조명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애환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45미터(아파트 15층 높이) 조명탑을 올라가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EBS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을 제작하며 지구 반대편 대륙에 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EBS아빠찾아삼만리>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도 볼 수 있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빠를 그리워하는 자식들과 아내의 마음도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직업을 가지지 않았다면 생생하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PD는 세상 경험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번 세상 경험을 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페이스북에 글을 조금씩 남겨놔서 다행이다. 지금 이 글도 2013년도에 내가 느꼈던 감정을 토대로 적고 있다. 앞으로도 내가 그동안 세상 경험하며 보고 듣고 느꼈던 감정들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나는 오늘도 세상 경험을 했고 내일도 세상 경험을 하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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