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독한PD 에세이

by 독한PD

'흐르는 강물처럼' 은 일본의 엔카( 일본의 대중음악 장르의 하나로, 일본인 특유의 감각이나 정서에 기초한 장르) 여왕인 미소리 히바리가 불렀던 노래다. 지난 주말 여행전문PD로 활동하고 있는 오성민 PD와 강원도 고성에 가며 차 안에서 들었던 노래다. 이 곡은 미소리 히바리가 생전에 불렀던 마지막 곡이자 일본 최고의 명곡으로 선정된 곡이라고 한다. 그동안 그녀가 걸어왔던 세월을 덤덤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게다가 인생의 통찰이 담긴 가사가 더 와닿았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1절>

모르는 사이 걸어온 좁고도 긴 이길

뒤돌아보면 아득히 먼 고향이 보여


움푹짐푹한 길과 꼬불꼬불한 길 지도조차도 없는 그것 또한 인생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느릿하게 여러 번 시대는 흐르고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끝없이 하늘이 노을로 물들뿐


<2절>

산다는 건 여행과 같아 끝없는 이길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데리고 꿈을 찾으며 비에 젖어 진흙창이 된 길도


언젠가는 또 개이는 날이 오니까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이 몸을 맡기고 있고 싶어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바뀌는 계절 눈 녹음을 기다리며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평온하게 이 몸을 맡기고 있고 싶어


아아 강물의 흐름처럼 언제까지나 파-란 물 흐르는 소리 들으면서




강물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우리의 인생 또한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흐른다. 살아가며 좋은 일도 겪고 힘든 일도 겪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을 피해 가족 모두가 서울에 있는 친척 집으로 도망 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용돈을 모아 샀던 만화 슬램덩크 단행본도 그리고 정들었던 친구들도 다 두고 떠나왔었기에 내게는 엄청난 슬픔으로 다가왔었다. 그렇게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고 작년에는 암으로 아버지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냈고 믿었던 사람에게도 사기도 당하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가며 주변에서도 좋은 소식보다 좋지 않은 소식이 더 들려온다. 앞으로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이 길을 홀로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 것 같다. 노래의 가사처럼 꼬불꼬불하고 지도조차 없는 길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의지도 되고 덜 외롭지 않으니 말이다.


'우리 인생길에도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년 전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으로 다니던 제작사를 그만두고 34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그 길에는 노란 화살표가 있었다.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걷는 중간중간 비석에 표시되어 있었다. 덕분에 오랜 기간 걸으며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무사히 산티아고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인생길에도 노란 화살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인생길은 그렇지 않다. 노란 화살표 따위는 없다. 나 홀로 살아내야 한다. 힘든 일도 좋은 일도 전부 내 인생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아무리 바빠도 매일 매일 나를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후 나는 홀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너무 바쁘게만 살다 보면 내가 이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지조차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살아갈수록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그 먼 길을 잘 가려면 내가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하려면 내 가슴이 뛰는 일을 해야 한다. 사회나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내가 선택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일에도 사명이 생기고 꿈이 생긴다. 꿈이 생기면 내가 가는 길에 의미와 가치가 생기고 우직하게 걸을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류시화 작가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 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다시 저 먼 우주로 돌아가야 하는 시한부의 삶이다. 흔히 말기 암 환자가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 시한부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기에 '잠재적 시한부' 인 것이다. 그렇기에 인생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문득 과거에 철없이 시간을 보냈던 행동들을 반성한다. 이제서야 시간은 유한하고 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도 내 가슴이 시켜서 하는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수많은 길들을 건너오며 마지막으로 눈을 감게 될 때 '정말 잘 살았다' 라고 말하며 평온하게 긴 여행길을 마치고 싶다.



흐르는 강물처럼 오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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