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 나의 자녀, 나의 직업, 나의 사회친구들 모두 내가 선택해서 나에게 온 것이 아님을 문득 생각하게 되었다.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우린 모두 그 누구보다 더 잘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산다. 매 순간 긴장하지 않은 날이 없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내 기대 수준 이하일 때가 많다.
친정아버지의 굽은 등과 한쪽으로 축 처진 오른쪽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류머티즘 병으로 손마디가 휘어져 가는 친정엄마의 손가락을 주무르며 속으로 많이도 울었었다.
친정엄마의 생신이 정월대보름이어서 온 식구가 정월대보름에 모였다. 자식들과 손주, 손녀를 위해서 맛있는 찰밥을 해놓으신 친정엄마셨다. 찰밥엔 알밤이 한가득 들어있었는데 구부러진 그 손으로 몇 날 며칠 알밤 껍질을 깎은 엄마의 노고가 느껴져서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다. 이렇게 다 큰 자식들은 여전히 엄마의 수고를 먹고 산다.
엄마의 어릴 적 꿈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엄한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지만 나름 여장부처럼 어린 시절을 보낸 엄마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외할아버지보다 더 성질 급하고 사나운 남편이 있었다고 했다. 자식 넷을 낳고 살면서 자식 위해 불 같은 남편 성격 맞춰가며 참고 산 엄마의 인생이야기도 들었다.
엄마가 우리의 방패가 되어서 아빠에게 날아오는 화살과 창을 다 맞고 계셨던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어찌 참고 살다가 등 펴고 똑바로 서보니 환갑이 넘은 60대 중반의 여자가 되어있었다고 했다.
살아온 세월이 야속하고 마음이 아프지만 자식들이 잘 커줘서 견딜만하다고 웃으시는 그 여인의 미소에 나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인생은 산 넘어 산이다.
그 자녀들의 삶도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다. 잘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상대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가족들과도 분란이 있다. 우리는 또 친정엄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알면서도 어찌할 수없어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자녀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들 한다. 닭이 알을 따뜻하게 품듯이 그 따뜻함을 느끼며 잘 자랐다.
성경구절 시편에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말씀'단어 대신 '부모'라는 단어로 바꾸어도 말이 성립된다. '부모는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시다.'라고 말이다.
묵묵히 좋은 부모로 살아온 나의 부모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산다. 지금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이고 행복이다. 부디 건강하셔서 오랫동안 이 세상살이를 함께 하고 싶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라는 말에는 솔직히 진짜 어쩌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이 고민했고 피해보려 했는데 결국엔 포기하고 지금의 상태가 되었다는 말일 수도 있다.
지금 40대 중반을 넘어서 생각해 보니 나의 젊은 시절은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인생의 중대 결정을 많이 내렸던 것 같다.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음을 인정한다.
그 뼈아픈 경험들에서 정답을 알게 된 것은 40대 중반 이후였다. 그래서 지금은 최대한 '어떻게 되겠지'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어'를 내 인생에서 최소한으로 사용하려 한다.
인생은 계획할 수 있고, 계획에 차질이 생겨도 얼마든지 좋은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길은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며 정답이 있는 인생길도 없다.
한 곳만 계속 파 들어갔는데 금이 나오지 않으면 옆길을 파서 금을 찾아 나서야 하는 용기와 결단도 필요하다. 지금 나의 그 옆길로 가는 중이다.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는 삶의 연속이다.
나의 가정환경도 바뀌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쓰기 일을 하면서 제2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나의 과거가 너무 초라해지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 보니 이 지점까지 왔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 지점은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부터는 씩씩하고 당당하게 내 미래를 맞서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