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요즘에 사랑음악을 듣고 싶어 졌다. 그런데 길거리에는 봄노래가 되어버린 버스커버스커 '벚꽃엔딩' 음악소리로 가득하다.
50세를 향해가는 나에게도 '사랑'은 늘 가슴 설레는 단어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사랑'이 참 쉬워 보인다. 쉽게 사랑에 빠지고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하게 헤어진다. 그들 나름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렇게 많이 아파 보이지 않아서 표현하는 말이다.
뭐든지 쉬워 보이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쉽게 생각되니 고민 없이 마음대로 고르게 되고 더 나아가 돈만 있으면 더 쉽게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요즘 세상이다.
유명한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변한다. 그런데 그 변한 사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우리는 사랑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랑에는 연인 간의 사랑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사랑이 있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 사제지간의 사랑, 종교적인 사랑, 사회적 관계의 사랑 등등 사랑의 색깔은 다양하다.
사랑을 정의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법으로 만들 수 없다. 사랑의 방법은 수천, 수만 가지니까.
사랑은 중독 증상의 하나일 수도 있다. 우리는 중독하면 알코올, 마약, 도박, 성(性), 게임, 쇼핑, 스마트폰 중독을 생각한다. 하지만 사랑도 엄연히 중독이다. 중독을 이기는 방법이 있다. 그건 바로 선한 중독으로 악한 중독에서 벗어나면 중독을 극복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랑하고 이별을 하면 다른 사랑으로 힘든 이별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에 더 심각해진 현대 사회는 피로사회, 우울사회, 중독사회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는데 사랑이 빠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온 마음을 다 해서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삶을 사는 사람이 적다.
사랑의 알맹이는 빠진 체 겉모습과 조건이 만족되면 사랑을 시작하는 그런 연인이 많다.
부모 자식 간에도 이해타산을 하고 자녀를 출산한다. 내가 자녀를 키워서 이득이 될지 안 될지를 먼저 생각해 보고 이해타산이 맞으면 출산을 하고 자녀가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면 출산을 하지 않는 젊은 부부들이 많다고 한다.
종교생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기준을 맞춰서 신을 믿는다. 작정기도를 한다.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나타면 신을 부정한다. 더 나아가 그 신의 안티가 되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교를 권하지 않는 선봉자가 되기도 한다.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 체 겉모양만 비슷하거나 어느 정도 기본이 갖춰지면 우리는 쉽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이 빠진 삶은 가식의 삶이다. 진정으로 사랑에 빠져 본질을 추구해야 하는 삶이 참된 삶이다.
요즘처럼 똑똑한 사람이 많은 때가 있었는가? 모두 학벌이 뛰어나고 자기 계발에 열심인 적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자기만의 루틴과 자기만의 삶의 형태가 확고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
그런데 과연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삶의 완성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서를 많이 한 다독(多讀)가 가 진정으로 다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앎과 실천이 하나가 되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앎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혼과 출산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결혼한 부부를 상담하거나, 다이어트를 성공하지 못한 의사 선생님이 다이어트 전문의사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사랑도 마찬가지이며 모든 관계가 이렇다고 여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으나 진정한 자유란 진리와 함께 실천과 경험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사랑하는 척, 아는 척, 있는 척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것에 지금도 감쪽같이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사랑해보고 싶다. 사랑이 빠진 삶 말고 사랑에 빠진 삶을 살아보고 싶다.
논어 옹야편(雍也篇)에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자왈,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이빈빈, 연후군자)
“바탕이 형식을 압도하면 거칠고(질이 문을 누르면 촌스럽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겉치레가 질박함을 누르면) 겉만 번드르르 하다. 형식과 바탕이 서로 잘 어울려야 비로소 군자다우니라.”라는 공자의 말씀이 나온다.
군자의 배움의 자세는 바로 '문질빈빈(文質彬彬)'이다. 문화적인 꾸밈과 소박한 바탕이 서로 잘 어울려야 빛나는 법이다. 알맹이가 없는 사랑도, 본질도 모르고 하는 학문수양도 모두 헛된 것이다.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명칭아래 본질은 쏙 빼고 겉으로만 내 인생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내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하루하루가 소중합니다.
사는 이야기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글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