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 2달 차] 시련

백수로서의 해외살이

by 셜린

캐나다에서 지낸 지도 벌써 2개월이다. 꽤나 익숙해진 캐나다에서의 삶. 딱히 새로워진 것은 없지만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심경 변화일 것이다.



집주인과 같은 장소에서 지내는 게 불편해지던 차, 계약만료일은 서서히 다가왔다. 차라리 계약이 2개월이라 다행이었다. 한 편으론 이사에 대한 걱정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인지라 뷰잉 한다는 이유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좋은 것 같았다. 그만큼 집에 있는 게 편치는 않았다. 주인이 말도 없이 데리고 오던 방문자들 때문에 내 요리를 못해서 오후 3시까지 밥을 굶는다거나, 갑자기 데려온 주인의 아들 때문에 위 속옷을 입어야 하는 거에 대한 걱정도 짜증이 났지만, 곧 떠날 내가 괜히 뭐라 했다가 보증금 안 줄까 봐 말 못 하는 상황도 답답했다. 그래서 늘 되뇌었다. 조금만 참자. 곧 나는 떠날 수 있어.


뷰잉

새 집 보는 일이 고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뷰잉을 2번만 하고 집을 골랐다. 물론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싼 집을 골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8월은 1달만 머무니까. 구직을 하든 안 하든 그전에 아낄 수 있는 대로 아끼고 싶었다. 그리고 빨리 집을 고른 덕에 더 이상 뷰잉을 하러 다니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살고 있는 집과도 가까워서 이사도 수월하고 택시비도 저렴했다. 마침 Lfyt가 이사하는 걸 아는지 미리 10% 할인 쿠폰도 넣어줬다.


구직

7월엔 한 달 내내 인터뷰가 없었다. 그래서 내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 갔고 내가 이렇게 인터뷰 하나 못 받을 만큼 실력이 형편없는가도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아마 이 부분은 주변에서 으쌰으쌰 해주지 않았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주변에서도 구직이 어려워 서버나 바리스타 일부터 시작한다는데 나는 또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도 못했다. 컴포트존에서 벗어나겠다고 힘겹게 왔지만 또 다른 컴포트존에 있는 내 모습은 아닌 지 돌이켜보기도 했다. 자신감이 줄어들 때쯤 베프로부터 들었던 말은 특히나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답변이라 더 도움이 되었는데, 그 답변은 즉슨, 캐나다 회사의 니즈와 나의 니즈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강조한 나의 강점은 2D와 3D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인데 지금까지 그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는 곳을 거의 보지 못했던 건 사실이다. 아예 3D 모션 그래픽이거나 2D 그래픽 디자인 일이거나. 물론 내가 분명 엄청난 퀄리티를 가졌으면 분명 기회는 계속 올 수도 있었을 걸 안다. 어쨌든 내 실력이 평균이라고 쳤을 때 각 분야의 최고 디자이너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나마 내가 부합하다고 생각했던 국내기업 해외지사에서는 작년에 테스트를 본 뒤 떨어졌으니, 그 이후로는 정말 내가 딱 원하던 곳을 본 적이 없다. 이곳 사람들은 모든 것이 인맥이기에 쉽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사실 실력을 계속 갈고닦긴 해야 하긴 하니까. 포트폴리오를 엎기 위해 무언가 할 수도 없었던 건 내가 가진 무기는 아이패드와 폰뿐이었기 때문. 그래도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남들처럼 일단 아무 일이나 먼저 시작하지 않았던 그 선택 역시 내가 한 선택일 테니, 후회하지 않아야겠다 싶었다. 그래도 매일같이 공고 보는 건 멈추지 않았다.


사람

그래도 밋업을 종종 나갔다. 자기애를 주제로 그리는 그림 밋업부터 디자이너 모임 밋업까지. 크나큰 수확은 없어도 사람들과 만나는 거에 대한 불안함도 줄어들었고, 막상 부딪히니 영어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다인종이 사는 도시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캐나다 구직은 다 인맥이라기에 더 사람들을 만나는 게 합리적이다 생각했지만, 또 너무 그런 목적으로만 사람들을 보고 싶지도 않았기에 적당한 거리는 유지했다. 디자인 모임 밋업에 갔을 땐 서로 링크드인 프로필을 팔로우하는 게 기본이었는데 이것 역시 신선한 문화였다.


변수

7월에 일어난 일 중 가장 화나거나 슬펐던 것은 새 집 뷰잉 하러 갔던 첫날에 애플펜슬을 잃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집에 피곤하게 왔고 가방에서 애플펜슬 커버를 보았는데 다음날 보니 없어진 것이다. 그 펜슬을 덮기 위해 케이스 + 커버까지 씌워놔서 어딘가에 자석처럼 붙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캐나다 가서 새 폰 사야지 했던 꿈에 가까워지지는 못하더라도 멀어지지는 말아야 했는데, 오히려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리고나 있으니 너무 마음 아팠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으로 눈물이 났던 밤도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가 불쌍해 보였던 7월이었다.


밴쿠버

밴쿠버라 하면 나는 아직도 모든 곳을 들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 밴쿠버가 주는 바이브는 알 것 같다. 자연 + 도시, 그야말로 여름에 어디 다니기에는 최고였던 것 같다. 더운 날도 있지만 해가 지거나 실내인 어딘가로 들어가면 괜찮았다. 차 타고 멀리 가지 않는 이상 사실 갔던 곳만 계속 들르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여행이 아닌 구직을 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집에 갈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게 1달의 시간을 더 주려한다. 사실 그 이상 머물 방법도 있겠지만, 3개월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무래도 잡마켓이 얼은 이 어려운 시기에 2개월만 있다 가는 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래도 애플 펜슬을 제외하고서는 무난한 한 달을 지낸 내 자신에게 격려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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