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라 쓰고 친목 모임이라 읽기

by 한량

'등산'이라 쓰고 '친목 모임'이라 읽어야 할 것 같은 나의 또 다른 취미생활, 등산. 이 모임의 시작은 코로나로 온 세상이 아니, 온 세계가 시끄럽던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 온 그 해,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 마스크를 써야 집 밖에 나갈 수 있었고, 학교와 학원의 온라인 수업과 회사의 재택근무가 필수가 되었다.

초기에는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동나는 일도 빈번했고, 배달 앱은 급속도로 매출이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 해서 몇 명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 식당과 카페도 일찍 문을 닫았다.

나도 장 보러 가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핑계로 신나게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온라인 쇼핑도 그전보다 몇 배로 더 했던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 이사해서 애들 친구 엄마들과도 친해지고 동네 지리도 익히려던 나의 야무진 꿈은 초반부터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집에 있는 것도 나름대로 좋아하지만,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활력이 생기는 나에게는 이 시기가 우리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갑갑했다.


때마침 이사하기 전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들이 한 분은 우리 집 근처, 한 분은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로 이사를 왔다.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온 S는 우리 아들의 유치원 친구 엄마다. 애들 덕분에 알게 되었지만, 말도 잘 통하고 성격도 잘 맞는 편이다.

다른 한 분인 J는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 독서 모임에서 만난 분이다. 사실 처음에는 너무 진지하고 학구적이어서 나랑 코드가 안 맞을 것 같았는데(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언니 미안~),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자체가 공통점인 데다가 매사 열심히여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하고, 코로나 때문에 각자의 동네에서 새 출발(?) 하기도 어렵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주 연락하게 되었다. 급기야 집에만 있지 말고 운동이라도 하자며 등산 모임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말은 등산 모임이지만 실상 우리 집 앞 대모산에 주로 가는데, 정상까지 갈 때도 있지만 둘레길로 슬슬 걸을 때도 많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모산은 데크길이 정말 잘 깔려 있다. 초입에 엘리베이터도 있고, 밤에는 조명도 잘 되어 있어서 사시사철 마음만 먹으면 정말 걷기 좋다.

높이가 300m가 채 안 되는 낮은 산이어서 등산다운 등산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가소롭겠지만, 나에게는 정상까지 40분 정도면 도착하는 대모산이 딱이다. 한두 번 청계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만 해도 살짝 가팔라서, 역시 나에게는 오르기도 부담 없고 걷기도 수월한 대모산이 최고다.


S랑 J와 함께 산에 오르면서 애들 얘기, 남편 얘기, 요즘 사는 얘기를 주섬주섬 꺼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닿아 있곤 한다. 정상에서 한눈에 보이는 동네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도 맞지만, 답답했던 마음을 토로하고 나서 오는 청량감도 있다.

이 맛에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등산을 꾸역꾸역 하고 있나 보다. 어릴 때는 내가 하도 산에 가는 걸 싫어해서 아빠가 무등을 태워 다녔다. 나는 생수 한 병 달랑 들고도 헉헉 대며 올라가는데, 지금 생각하니 진심으로 아빠한테 죄송하다. 역시 자식은 짐인가 보다(그나마 때때로면 다행인 거겠지?).


예전에 어디선가 '아이 친구의 엄마들은 한편으로는, 나도 잊어버린 내 아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글귀를 읽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 적이 있었는데, 나의 등산 메이트들이 딱 그런 존재인 것 같다.

딸애가 요즘 너무 무기력하다고 내가 흉이라도 볼라치면, 두 분 중 한 분이 예전에 우리 딸이 참 똘망똘망했었다며 한 마디 해 준다.

그러면 나는 또 잊고 있던 해묵은 기억을 떠올리고 '그래, 그럴 때가 있었지.' 하면서 은근슬쩍 마음이 풀어진다. 이렇게 내 마음이 흙빛이 되려는 찰나에 한 번씩 정화해 주니 내가 등산 모임을 좋아할 수밖에…….


코로나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등 떠밀어 준 우리의 등산 모임도 벌써 6년 차가 되었다. 원래는 주 1회 모이기로 했지만, 비 오면 빼먹고 덥거나 추우면 건너뛰고 애들 방학에는 우리도 자체 방학이라 산에 간 햇수가 6년이라는 시간에 비례하지만은 않는다.

그래도 스멀스멀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도 대모산을 벗어나 설악산도 가고 한라산도 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 한라산 백록담에서 등산화 모아 모아 사진 찍는 그날까지 우리의 등산 모임은 계속된다. 쭉~~

수요일 연재